◆세계 추세 거스른 亞 MBA 붐··· 지원자 쇄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1일 글로벌 MBA 시장에서 아시아가 나머지 지역을 앞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시아에서는 세계적인 추세와 반대로 MBA 지원자 증가세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미국 경영대학원 입학위원회(GMAC)는 최근 낸 보고서에서 올해 6~8월 40개국 336개 경영전문대학원의 1145개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자(2019~2020학년도) 현황을 분석했다. 전체 지원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1% 줄었지만, 아시아지역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전 세계에서 압도적인 증가세를 뽐냈다.
전체 프로그램 가운데 절반이 넘는 52%가 올해 지원자 감소를 겪었지만, 아시아지역 MBA 프로그램 중에 지원자가 준 경우는 45%에 그쳤다. 나머지는 늘거나(49%) 지난해 수준을 유지(6%)했다. 전체 조사 대상 가운데 지원자가 늘어난 프로그램은 41%, 현상을 유지한 경우는 7%였다.
FT는 아시아지역 MBA에 지원자가 몰리는 건 이곳에 진출한 수많은 다국적기업과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를 비롯한 현지 기술기업들이 인재를 찾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주목할 건 현지인들의 수요가 아시아 MBA 붐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이 지역 MBA 프로그램 지원자 가운데 55%가 현지인이었고, 이들을 비롯한 아시아지역 내 수요가 90%에 달했다.
산지트 초플라 GMAC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정학적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 탓에 아시아 학생들이 세계 최대 MBA 시장인 미국을 꺼리게 됐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반이민·반무역 정책에 대한 반작용으로 중국 교육당국은 '미국 유학 경계령'을 발동하기도 했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 우려로 미국에서는 중국인 유학생이 급감했다. 트럼프의 일방주의 정책에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민족주의 성향이 짙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초플라 사장은 이런 흐름이 미국 MBA 시장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걱정했다. 당장 올해 미국 MBA에 지원한 외국인 학생수는 14% 가까이 줄었다. 전체 지원자 수는 5년 연속 감소했다. 초플라 사장은 MBA 과정에서 중시하는 리더십과 전략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다양한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 MBA가) 18세기로 회귀하고 있다"며 "당시 리더들은 자기가 처한 상황밖에 몰랐다"고 꼬집었다. 미국 MBA 과정이 '우물 안 개구리'만 배출하게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아시아 MBA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싱가포르의 MBA 입학 컨설팅업체인 MBA링크는 원래 미국과 유럽의 MBA 과정을 밟으려는 아시아 학생들을 고객으로 삼아 출범했지만, 최근에는 반대로 아시아 MBA 진학을 원하는 미국과 유럽 학생들의 상담 수요가 폭주하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지역 MBA는 여성 비중도 압도적이다. 중국의 경우 GMAC 조사 대상에서 73%가 올해 지원자 중 여성이 남성보다 많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전체 MBA 과정의 올해 지원자 중 여성 비중은 51%였다. 미국에서는 여성 지원자가 더 많았던 과정이 31%에 그쳤고, 전체 지원자 가운데 여성은 39%에 불과했다.
물론 아시아지역 MBA는 아직 세계적인 인지도가 낮은 게 사실이다. FT가 올해 낸 글로벌 MBA 순위(1~100위)에 든 학교가 15곳에 불과할 정도다.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아시아캠퍼스(싱가포르)가 본교와 함께 가장 높은 3위에 올랐고, 중국유럽국제비즈니스스쿨(CEIBS)이 5위를 차지했다. 싱가포르 국립대 비즈니스스쿨(17위), 홍콩과기대(HKUST) 비즈니스스쿨(18위)이 뒤따라 20위권에 들었다. 한국에서는 성균관대 경영대학원인 SKK GSB가 42위로 유일하게 순위권에 들었다.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과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고, 유럽에서는 인시아드 다음으로 영국의 런던비즈니스스쿨이 6위로 순위가 가장 높았다.
FT는 아시아 학생들 가운데 상위권 MBA 진학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현재로서는 미국이나 유럽행을 택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다만 아시아지역 상위 MBA의 역사를 보면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다고 봤다. 대개 미국이나 유럽의 명문 MBA보다 역사가 훨씬 짧다는 이유에서다. 그만큼 단기간에 급성장했다는 의미다. 한 예로 HKUST는 1991년에 설립됐고, 인시아드는 1957년에 문을 열었다. 격차가 34년이나 된다.
교육 컨설팅업체 캐링턴크리스프의 앤드루 크리스프 공동 설립자는 "하버드대도 설립 30년 만에 HKUST만큼 강력한 국제적인 지지는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FT는 아시아에 한창인 MBA 붐이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지원자가 워낙 많다 보니 합격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GMAC 조사에서 아시아지역 MBA의 올해 평균 합격률은 48%로 미국의 71%를 한참 밑돌았다.
"아시아의 미래는 바로 지금이다(Asia's future is now)."
맥킨지는 지난 7월 이 같은 제목으로 낸 보고서에서 "지금은 '아시아의 세기'"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서구 전문가와 언론들은 엄청난 미래 잠재력을 놓고 아시아의 부상을 이야기해 왔지만, 아시아의 미래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당도했다고 설명했다. 이제부터는 아시아가 얼마나 빨리 떠오를지가 아니라, 어떻게 세상을 주도할지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맥킨지는 아시아가 지난 30년 동안 무역·자본·인재·혁신의 국제적인 흐름에 동참해 성장했다면, 앞으로는 이런 흐름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아시아가 2040년이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전체 소비의 40%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맥킨지는 세계 경제의 무게중심이 아시아로 확실히 옮겨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2000년만 해도 아시아의 세계 경제 기여도는 3분의1에도 못 미쳤다.
맥킨지 보고서에서 아시아 MBA 붐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이 지역 토종기업들의 부상이다. 한 예로 지난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꼽은 글로벌500기업 리스트에는 아시아 기업이 절반에 가까운 210곳에 달했다. 맥킨지가 자체 선별한 전 세계 5000대 기업 가운데 아시아 기업은 1997년 36%에서 2017년 43%로 늘었다. 중국 기업 비중이 두드러지게 높아졌지만 인도의 성장세도 만만치 않았다. 더욱이 베트남, 필리핀, 카자흐스탄, 방글라데시에 이르기까지 리스트에 든 국가도 더 다양해졌다. 맥킨지는 아시아 기업들이 산업, 자동차뿐 아니라 기술, 금융, 물류 등 다른 여러 부문에서도 글로벌시장의 리더가 됐다고 평가했다.
캐링턴크리스프의 크리스프 공동 설립자는 MBA 진학을 생각하는 이들이 학교를 선택할 때 감안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결국 미래 고용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경제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지만, 중국의 성장세는 여전히 선진국보다 훨씬 빠르다"며 "기회도 그만큼 더 빨리 커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프는 유럽과 미국 학생들도 이런 기회를 갈망하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2004년 싱가포르에서 만난 한 독일 학생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싱가포르에서 공부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미래는 곧 아시아이기 때문"이라며 "싱가포르는 공부하기 안전한 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