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직거래 '核찬스' 잡는 김정은

2019-11-1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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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권의 외교·안보, 전반기 평가와 후반기 과제>

[이재호 초빙논설위원. 극동대교수 ]

[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문재인 정권의 전반기 대북정책은 여러 면에서 기대에 못 미쳤다. 대북 친화적 환경에서 작지만 알찬 성과를 기대했던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합리적 정책의 바탕인 현실주의적 사고가 안 보였고, 본래의 좋은 의도는 추진과정에서 조절능력의 결여로 의미 있는 결실에 이르지 못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과욕과 과속으로 이어지면서 정책의 부정적 부담만 크게 남겼다. 평가가 너무 박하다고 하겠지만 남은 2년 반을 위한 고언(苦言)에 다름아니다.
발상 자체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었다. 북·미관계의 진전을 통해 북핵 위기도 해소하고, 남북관계도 풀기 위해 운전자(중재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언뜻 그럴듯해 보였다. 허나 운전자가 되려면 행선지를 결정하고 승객들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없었다.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를 문 대통령의 업적으로 꼽지만, 우리에게 그 의의만큼의 소득은 없었다. 사안의 본질인 북의 비핵화에 진전은커녕 핵탄두 수만 오히려 늘었다. 핵무기는 고도화 됐고 미사일 도발은 더 잦아졌다. 9·19합의 탓에 군사주권 훼손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중재’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북·미가 직거래(直去來)할 수 있는 판만 깔아줬다. 노태우 정부 이래 역대 정권의 대북정책은 하나같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병행 발전’이란 기조 위에서 움직였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도 일부 유연성을 보여주긴 했지만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기조가 무너질 때 받을 충격을 아직은 감당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북·미가 직거래를 하면, 북한의 대남정책의 골간인 통미봉남(通美封南)을 용인하는 게 되고, 그 파장은 결국 한·미동맹과 그 실체인 주한미군에 미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북한은 시종 집요했다. 일찍이 1974년 3월 25일 최고인민회의 제5기 3차 회의에서 당시 외교부장 허담(1929∽1991년)이 “조선반도 평화협정의 당사자는 남조선이 아닌 미국”이라고 보고한 이래 북은 오매불망 미국과의 직거래만을 추구해왔다. 허담의 보고는 1972년 1월 10일 김일성이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선정전협정을 남북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던 주장마저 뒤엎는 것이었다. 북 당국자들은 그 이유에 대해 “(한국이 정전협정 당사국도 아니지만) 남북 평화협정을 하면 미군을 쫓아낼 줄 알았는데 못하더라”고 했다.

북·미 직거래로 인한 우려는 벌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이 트럼프와 독대한 뒤부터 한국을 아예 상대조차 않으려드는 것이나, 북 관계자들이 문 대통령에게 시정잡배들이나 할 막말을 해대는 것부터가 직거래 탓이다. 북·미 정상끼리 ‘러브레터’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는데 한국의 대통령까지 신경 쓸 일이 있을까. 상궤를 벗어난 언행이나 태도는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문제는 이 직거래 공간에서 앞으로 뭐가 거래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당장 주한미군의 철수나 감축 문제가 여기서 다뤄지지 말란 법이 없다.

지난달 방한한 존 햄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은 중앙일보(9월 25일)와의 회견에서 “트럼프는 북의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능력 완화도 굉장한 치적으로 생각할 것”이라면서 “가장 큰 걱정은 (비핵화에 대한) 합의 타결이 아닌, 이로 인해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많은 미국인이 미·북 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여긴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의 대표적 싱크탱크의 대표로부터 이런 얘기까지 나올 정도면 사정은 심각하다. 트럼프가 재선이라도 되면 미군철수가 곧바로 공론화될 수 있다.

그 전단계로 북·미 간 모종의 타협이 이뤄질 수도 있다. ‘시늉뿐인 비핵화’와 ‘대북제재 일부 완화’에 그냥 합의하는 것이다. 이에 반발할 수도 있는 한국엔 금강산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을 ‘보상’으로 허용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재선에 혈안이 된 트럼프와 대북 제재 완화에 목을 매는 김정은, 내년 4월 총선승리와 진보의 재집권을 바라는 문 대통령, 이 3자가 외관상 윈-윈-윈 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북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본질과는 거리가 먼 기만적 봉합이지만 트럼프와 김정은이 직거래로 그렇게 하겠다면 못할 것도 없다.

어쩌면 이 정권으로선 내심 반길지도 모른다. 문 대통령 주변 참모들의 면면을 보라. 문정인 특보를 비롯해 평소 “북의 비핵화 조치보다 대북제재 완화가 선행되거나, 최소한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온 사람들 일색이다. 이들이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일시 봉합의 편의적 타협에 끝까지 반대할까? CVID, P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되돌릴 수 없는 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목이라도 맬까? 글쎄다. 오히려 기회로 알고 편승하려들지 않을까.

이 정권 사람들은 입으로는 북의 비핵화를 주장하지만 그 절실함이 역대 정권에 미치지 못한다. ‘북이 핵무기를 동족인 우리에게 쓰겠느냐, 핵보다는 교류협력을 통해 북을 변화시키는 게 빠르고 바른 길이 아닌가,’ 하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들의 이런 사고가 북·미 직거래와의 접점을 찾게 되면 북의 완전한 비핵화는 물 건너간다. 북한은 무임승차 하듯 핵보유국으로 공인받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이에 대비해 자체 핵개발을 포함한 플랜 B를 마련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이 시나리오가 가장 두렵다.

돌이켜보면 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김정은을 끌어낸 건 ‘신의 한수’였다. 그렇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첫 단추를 끼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렇다면 주도면밀하게 그 성과를 관리하고 이어갔어야 했다. 김정은이 과도한 기대를 갖지 않도록 하고, 내가 하고 있는 중재자 역할이 북·미 간 직거래의 판을 깔아준다는 걸 의식하고 과속을 경계했어야 옳다. 과거 서독의 통일정책은 ‘작은 걸음마 정책’이었다. 김정은에게 북·미 정상회담에만 나오면 뭐든 이룰 것 같은 인상을 줬지만, 하노이 회담에서처럼 성과는 없었고, 결과는 문 대통령에 대한 김정은의 불신만 키웠다. 주변 참모들의 책임이 크다.

대통령의 담대한 평화 이니셔티브에도 불구하고 집권 전반기에 남북 간 적의(敵意)가 오히려 깊어지고, 한·미 간 불협화음이 더 커진 것은 참모들의 역량 부족, 특히 대통령에 대한 직언능력의 부재(不在)가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라고 나는 본다. 브레이크를 걸 때는 걸 줄 알아야 한다. 후반기엔 외교·안보진의 전면 교체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총괄하는 청와대 안보실의 실장과 차장이 모두 통상전문가 출신이라는 점만 해도 누가 봐도 부자연스럽다. 어느 나라 안보 책임자가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TEL)를 놓고 발사대에서 발사가 되니, 안되니, 논란에 휩싸일까. 외교부 장관은 전략핵과 전술핵을 구분할 줄 모르고, 통일부 장관은 명색이 북한 전문가라면서 지금껏 북에 쌀 한 톨 못 보내고 있다. 외교·안보팀 특유의 팀워크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화(人和)마저도 안 돼 서로 티격태격한다.

그러는 사이 47억 달러(5조1000억원)짜리 천문학적 액수의 방위비 분담금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이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인가. 분담금이 그렇게 오를 줄 몰랐나, 알았다면 이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나토(NATO)와 일본에 대해서도 올린다고? 그게 변명이 되는가. 47억 달러면 승용차 1000만대를 수출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혹여 한·미관계를 잘못 관리한 탓은 아닌가, 어쨌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함에도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없다.

진부한 얘기지만 한 나라의 국력(國力)을 구성하는 9가지 요소로 △지리적 요건 △자연자원 △공업능력 △군비 △인구 △국민성 △국민의 사기(士氣) △외교의 질(質) △정부의 질을 든 건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 한스 모겐소(1904∼1980)였다. 그는 이 중 ‘외교의 질’에 대해 “다른 국력의 요소들을 결합시켜 통일된 하나의 힘으로 만들고, 중요성과 방향을 부여하며, 실제적 힘의 입김을 불어넣어줌으로써 잠자고 있는 잠재력을 일깨워주는 것” 이라고 했다. 지금 이 정부의 외교의 질이 과연 그러한가.

문 정권 2년 반, 한때는 남-북-미 정상 간의 현란한 셔틀외교에 잠시 취하기도 했고, 감동을 받기도 했다. 전후, 70여 년, 한반도를 옥죄어온 냉전의 벽에 마침내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 화려한 ‘갈라 쇼’(gala show)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는 탓에, 일각에선 이를 한반도문제 해결의 진전으로 보기도 하지만 착각이다. 강대국 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거듭 절감했을 뿐이다. 1815년 가을, 오스트리아 빈의 쇤브론 궁전을 울렸던 “회의는 춤춘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제라도 실로 깊은 성찰과 함께 겸허하게 집권 후반기를 맞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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