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장관의 사퇴는 우리 사회에 ‘진영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던졌다. 어떤 의견도, 주장도 진영(陣營)이라는 블랙홀 앞에선 무력했다.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본래의 명분 같은 건 사라지고 오직 내 편, 네 편만 남았다. 등식(等式) 정치의 일상화다. ‘우리가 조국이다’ 라는 구호가 한 예다. 조국 지지자라고 다 같을 수는 없다. 지지하는 이유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조국’이라는 건, 어느 TV광고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마라’는 거다. 조국은 무조건 옳고, 그를 지지하는 우리도 무조건 옳다는 거다. 반대 측도 마찬가지다. ‘조국 OUT’은 절대 옳다. 모든 게 진영 안에서는 용서되고 합리화된다.
이성적인 사회는 선별력(selectivity)이 작동하는 사회다. 세상엔 흑과 백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 사이에 다양한 흑색과 백색이 무수히 존재한다. 흑과 백만 있는 사회는 토론의 여지도, 숙고의 여지도 없는 반민주적 사회다. 포용, 이해, 공감, 배려는 없고 오직 배제(排除)만이 있을 뿐이다. 배제의 끝은 강제와 폭력이다. 한국사회는 지금 그런 방향으로 내몰리고 있다.
‘진영’이 명분(구체적이고 차별화된 명분)을 삼켜버리기 시작한 건 이명박 정부의 광우병 사태였다고 나는 본다. 그때의 군중이 대통령의 레이저 광선 눈빛과 블랙리스트로 상징되는 박근혜 정부의 불통(不通) 앞에서 탄핵 촛불민중으로 발전했고, 문재인 정권에서 진영의 한 축으로 틀을 지었다. 진영이라는 블랙홀에 빠지면 누구도 빠져나가기 어렵다. TV 방송 앵커가 뉴스 시간에 일제(日製) 볼펜을 잠깐 손에 쥐었다고 친일파가 되는 그런 세상이 온다.
문 대통령은 서초동과 광화문 집회를 보고 “국론분열이 아니다”고 했다. 일리가 없지는 않다. 예컨대 분양가상한제를 놓고 찬반이 갈린다고 해서 국론분열일까. ‘분열’의 외피를 쓰고 있을 뿐 실체는 ‘국론경합’이다. 내 편의 주장이 관철되기를 바라는 격렬한 싸움이다. 그렇다면 초동 대처를 잘 했어야 했다. 심판관으로서 공정하고, 인사권자로서 조국과 윤석열의 충돌을 예견했어야 했다. 대통령은 두 집회를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직접민주주의 보완”이라고 했다. 광장정치를 부추기는 듯한 발언이었다. 오판과 리더십의 부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독선과 오만으로 조국 장관의 호위무사를 자처했다. ‘정의로운 전쟁’을 표방했으나 그 진의를 다수 국민이 믿었는지는 의문이다. ‘국론경합’을 진영 대결로 몰아가고, 선악(善惡) 대결로 치장함으로써 정치적 이득(공천)이나 챙기려는 행태로 비치기도 했다. 국민이 조국에 등을 돌린 것은 위선 때문인데 민주당 역시 그런 위선에 동참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사태 초기 임명 강행을 고집했던 쪽은 당(黨)으로 알려져 있다. 조국이 지난달 8일 민주당 법사위 의원들에게 “(청문회 등에서) 저를 성원 지지해주셨던 분들의 마음을 잊지 않으며 살겠다”는 내용의 감사 문자를 보냈을 때만 해도 청와대 기류는 ‘임명 포기’로 필자는 알고 있다. 그게 하룻밤 사이에 바뀌었다. 누가 대통령의 마음을 돌리게 했는지 밝혀야 한다. 그게 이해찬 대표든, 이인영 원내대표든, 나라를, 대통령을 이렇게 힘들게 만든 책임을 져야 한다(설마 이들을 그대로 두고 내년 총선을 치를 생각은 아니겠지).
한국당도 진영 공고화의 책임을 면키 어렵다. 한국당은 서초동 집회(조국수호)에 맞서 처음부터 광화문 집회를 사실상 주도했다. 한국당이 진영화의 위험을 의식하고 당원들에게 개별 참석을 지시한 건 두 번째 집회부터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은 종교단체와 박근혜 탄핵 반대세력에 큰 빚을 졌다. 이 빚을 어떻게 갚을 건가. 보수 재건의 구심점을 자처하는 황교안 대표로서는 무거운 짐이 아닐 수 없다. 이들 세력과 손을 잡고 유승민 측과의 통합이 가능할까. ‘조국 대전’으로 한국당의 지지율은 한때 34.4%(리얼미터 7~8일, 10~11일)까지 올라 민주당을 오차범위 내인 0.9%포인트까지 추격했다. 일간 기준으로 처음 역전(한국 34.7%, 민주 33.0%)하기도 했다. 이 지지율이 과연 지속될까. 나는 회의적이다. 급속히 빠질 것이다.
조국사태의 원인을 성찰하려면 책 몇 권으로도 부족할 터다. 검찰개혁이 도화선이 되긴 했지만 우리 사회의 모든 병리적인 것들이 다 작용했다. 이념과 계급 갈등, 정치체제의 비효율과 무능, 리더십의 부재, 정의와 공정으로 포장된 질시(嫉視), 지식인들의 위선, 오늘에 소환된 사색당파, 파당적 언론의 민낯, 가짜뉴스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이 모든 부조리한 것들이 결국 진영으로 고착화되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지역감정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반세기가 넘도록 갈라지고 찢긴 채 살았다. 이제는 진영인가.
이제라도 보수와 진보가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의 공간, 성취의 공간, 가치의 공간, 미래의 공간을 넓혀가야 한다. 전국체전 100주년 개회식(4일)에서 문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역대 정권의 성취를 인정하고, 그 위에서 화해와 통합을 모색하는 쪽으로 국가의 진로를 틀어야 한다. 대통령은 작년 9월 19일 평양 5·1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에게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강인합니다. 평화를 사랑합니다.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 북녘동포에 바친 그 절절한 민족애(民族愛)의 헌사를 우리 국민도 듣고 싶다. 부디 조국사태가 전화위복, 새로운 화해와 희망의 시대로 가는 열차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