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이해하기 힘든 국감 증인 채택

2019-10-22 20:54
  • 글자크기 설정

[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올해 대한민국 국회는 낯부끄러운 일이 많았다. 협치와 관용은 사치스러운 기대였다. 사사건건 대립하고 충돌했다. 야당은 툭하면 장외로 겉돌았고, 여당은 이런 야당을 백안시했다. 몇 가지만 추려보자. 추경예산안 처리를 놓고 무려 100여일을 허비했다. 또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선 볼썽사나운 몸싸움을 벌였다. 우려했던 대로 국정감사는 조국 감사로 분탕질됐다. 국민은 안중에 없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진영논리만 득세했다. 급기야 국론 분열과 사실상 국정 마비상태를 불렀다. 한심한 국회요, 부끄러운 정치다.

국정감사 전까지 본회의는 딱 사흘 열렸다. 이러니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도는 땅바닥이다. 세계가치조사(2010~2014)에 따르면 국회 신뢰도는 다른 기관과 비교해 가장 낮다. 25% 수준이다. <시사IN>에서 조사한 신뢰도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국회가 받은 점수는 10점 만점에 2.9점. 조사를 실시한 이래 가장 낮다. 0~4점은 ‘불신’, 5점은 ‘보통’, 6~10점은 ‘신뢰’ 구간이다. 국민들이 얼마나 국회를 불신하는지 반증하는 지표다. 정치권에 죽비가 되어야 마땅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는듯하다.

낯 뜨거운 국정감사는 올해도 어김없었다. 국정감사를 빙자해 기업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게 대표적이다. 사적 이익을 챙기고 악성 민원인 편을 드는 창구로 이용된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자유한국당 이명수 의원과 민주평화당 조배숙 의원 사례다. 둘 다 대기업 총수를 겨눴다. 이 의원은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조 의원은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무리한데다 상식에 어긋난다는 반대가 있었지만 오불관언이었다. 대기업 총수를 상대로 한 망신주기 국감을 자제하자는 민주당 당론과는 대비된다.

먼저 조배숙 의원부터 짚어보자. 21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감장에 이중근 회장을 세웠다. 무주리조트 임차인들이 부영으로부터 갑질 피해를 당했다는 이유다. 회사 측은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고 한다. 민원인 3명 중 1명은 임차인이 아니며, 다른 1명은 임대료와 보증금을 납부하지 않아 명도 됐다는 것이다. 부영그룹은 “이들은 사익을 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오히려 회사에 오랫동안 압력을 행사해 왔다”면서 “국감장이 일방적인 민원 해결 수단으로 이용되는 현실은 유감이다”고 했다.

부영그룹과 임차인들은 민사, 형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회장은 이날 “사법부, 공정거래위원회, 권익위원회 등 국가기관을 통해 약자는 보호받도록 돼있다”며 “사법부 판단을 기다리자”고 했다. 이에 대해 조 의원은 “임차인들이 연매출 2조원인 기업을 어떻게 대항하겠느냐”며 불신감을 드러냈다. 조 의원은 검사와 판사를 지낸 법조인 출신이다. 이를 두고 자기모순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회장은 “국정감사장에 불려온 것으로 알았는데 기업 지도해주는 자리다. 고맙다”고 답변했다. 

현재로서는 누구 말이 맞는지 단언하기 어렵다. 회사 갑질인지, 아니면 임차인들이 허위 주장을 했는지 조만간 가려질 것이다. 경제적 약자에 대해 정치권 관심은 합당한 책무다. 문제는 불합리한 증인채택이다. 부영그룹은 세 가지 불출석 사유를 댔다. 우선 관련된 민원은 재판 진행 중이다. 또 이중근 회장도 다른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독립된 무주리조트 대표이사가 있다. 그럼에도 그룹 총수를 출석시킨 것은 압력행사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조 의원이 선한 의도로 증인을 채택했더라도 의혹을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명수 의원 사례는 한층 노골적이다. 이 의원은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을 증인 채택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뒤늦게 철회했다. 이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이 의원은 국정감사 증인 소환을 거론하며 “지인과 3억원 정도에 합의하라”고 협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지난 4월 면담 자리에서 이 의원이 ‘H사 전모씨에게 3억원을 주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여러 차례 롯데푸드에 전화해 “시간을 끌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국감 전에 합의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지난달 23일에는 “‘합의가 안 되면 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신청할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다”고 덧붙였다.

H사는 이 의원 지역구에 있다. 이 의원은 회장 증인 채택과 연계하며 지속적으로 롯데를 압박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 의원은 “특정 액수를 애기한 적은 없다. 지역구 의원으로서 갑질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고 해명했다. 최근 검찰은 한국당 김성태 의원을 뇌물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2012년 당시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이석채 KT회장을 막아준 대가로 딸을 특혜 입사시킨 혐의다. 검찰은 증인 채택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국정감사는 행정부 통제 기능 중 가장 실효적인 제도다. 국민 알권리 충족과 야당이 정부를 견제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나아가 을(乙) 위치에 있는 약자를 살피는 자리다.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은 갑질 때문에 피눈물 흘리는 약자들의 한숨이 깊은 게 현실이다. 대기업 갑질 피해를 근절하려는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덧붙여 증인 채택이 잘못된 압박수단으로 이용되어서도 안 된다. 국감다운 국감, 그래서 국회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은 없는 것인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