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중국의 6% vs 한국의 2%

2019-10-15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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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고속 성장, 한국의 저속 성장 마지노선 빠르게 무너져 내려 -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지난 2010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0.4%로 피크를 찍었다. 당시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글로벌 경제가 꽁꽁 얼어붙던 시절에 중국의 승승장구는 놀랄만한 현상이었다.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이자 특급 소방수 역할을 하면서 모든 나라들이 중국만 쳐다보게 만들었다. 중국에 대한 의존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11년 9.3%로 떨어지더니 2012년에는 8% 선이 무너지면서 7% 대(7.7%)로 하락했다. ‘바오빠(保八)’, 즉 고도경제성장의 마지노선인 8%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속절없이 무너졌다. 30년간 9% 이상 지속되던 고속성장이 마침내 막을 내린 것이다. 중국은 이를 경제 침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중국판 뉴노멀인 ‘신창타이(新常態)’시대로 노선을 수정하면서 경제의 질적 고도화 수순에 돌입한다.

본격적인 중고속 경제성장의 도래를 인정했다. 수출로만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시인하고 성장의 축을 바깥에서 안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온중구진(穩重求進)’이라고 안정된 가운데서 발전을 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내수와 민생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시기가 이 때 부터이다. 자연스럽게 2015년에는 6%대 성장으로 진입하면서 올 들어서는 6% 대 초반으로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다. 이제 ‘바오류(保六)’시대도 서서히 막을 내릴 조짐을 보인다. 8% 대 못지않게 6% 대 성장은 중국 경제에 미치는 상징적 의미가 나름대로 크다. 비록 끝자락이긴 하지만 고속성장의 흐름이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 때문일 것으로 해석된다. 내년에는 5% 대 성장률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지배적이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중국 경제의 상황은 꽤 심각하다. 외부에 비쳐지고 있는 것보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훨씬 미묘하다. 복합불황의 그림자가 짙다. 제조업의 과잉설비, 기업부채 급증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공급과 수요가 동시에 위축되면서 20년 만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특히 트럼프라는 복병을 만나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와해될 조짐까지 보인다. 과거와 달리 많은 나라들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까지 나타나고 있다. 중국에 있는 공장을 바깥으로 빼고 수출도 중국 이외의 다른 시장으로 다변화를 시도 중이다. 홍콩 시위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민영 기업의 활기도 예전과 다르게 식고 있는 분위기다.

중국보다 한국이 더 심각, 성장 동력이 마비되는‘선진국병’에 의외로 빨리 진입

한국 경제의 현주소는 중국보다 더 침울하다. 지난 2012년 3% 대 성장률이 붕괴되면서 2014년 일시적으로 회복했으나 그 이후 계속 2% 대 중반에 머물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13일 블룸버그 통신이 국내외 41개 경제전문기관이 발표한 한국의 올 경제성장률이 1.9%에 그칠 것이라는 예측이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한국 경제의 장래를 어둡게 보고 있다는 반증으로 우려가 점점 현실화되어 가고 있다. 정부가 예상하고 있는 2.4∼2.5% 성장과는 상당한 괴리를 보인다. 2% 대와 1% 대 성장률이 경제에 미치는 심리적 영향은 그 차이가 엄청나다. 유사한 저속성장 국면이지만 1% 대 진입은 향후 경제가 더 벼랑 끝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조 증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보다 먼저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고민은 어떻게 저성장 국면을 탈출할 것인가에 있다. 추가적인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딜레마다. 경제의 체질을 바꾸거나, 아니면 경쟁국보다 더 나은 개방적 경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인다. 그러나 극히 일부 국가만 성공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시름시름 병을 앓는다.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들이 많은 유럽을 보면 그 실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장을 통합하고, 개방을 확대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브렉시트(Brexit)'라는 후유증이 생겨나면서 또 다른 곤경에 빠져들고 있다. 이웃 일본도 비슷한 경우로 20년 이상 불황의 긴 터널에 갇혀 있었다.

근자의 우리 경제의 현상을 두고 완벽하게 선진국에 진입하기도 전에 선진국병에 전염되고 있다는 평가가 자주 나온다. 제조업, 수출, 서비스업 등 공급 측면에서 더 이상 성장 잠재력을 만들어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되고 있다. 이미 장기적인 침체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나마 2% 대 성장률에서는 반전의 기회를 노려볼 수 있지만 1% 대 진입은 침체가 보다 장기화될 수 있다는 징조이다. 역전의 모멘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년간 우왕좌왕하면서 이마저 모두 놓치고 말았다. 노동시장 경직성, 규제 등 경제의 아킬레스건이 전혀 개선되지 않으면서 시장은 더 왜곡되고 있는 판이다. 다른 나라와의 경쟁을 통해서 살아가는 나라가 갈수록 경쟁에서 뒤로 밀리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중국의 6% 대 성장 붕괴와 우리의 2% 대 성장 붕괴는 경제적 파장이 다르다. 중국의 경우는 일본이나 우리가 경험했던 고속성장에서 중속성장으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장의 잠재력이나 동력이 아직 살아 있다. 외부의 압력이나 저항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힘이 축적되어 있기도 하다. 위기인 것은 맞지만 극복 가능한 수준이다. 반면 우리가 처한 입장은 중국과 현저히 차이가 난다. 내수 시장도 적고, 동력으로 버텨주던 실물경제의 주역인 제조업이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경제 주체들의 심리는 점점 더 비관적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낙관론으로 일관한다. 경제를 끌고 가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진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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