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위워크’ 나올까...흔들리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2019-10-1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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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전펀드 투자 후 상장한 6개사 중 2곳만 주가 올라

거액 쏟아부운 '차세대 알리바바' 위워크 상장 실패

1호보다 83억 달러 늘린 2호 자금 조달 난항

2000년 IT버블과 유사... "비전펀드 2호 이미 죽었다"

“그를 형용하는 수많은 단어가 있지만, ‘당황스러운’ 이라는 말이 그중 하나가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미국 경제지 포춘이 7일(현지시간)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닛케이비즈니스 인터뷰 내용을 보도하면서 손 회장에 대해 한 말이다. 세계 최대 기술투자펀드인 '비전펀드’의 부실한 투자 실적과 관련해 “당황스럽다”는 입장을 밝힌 손 회장의 발언을 비꼰 것이다.

'IT업계 워런 버핏’이 되겠다던 손 회장의 꿈이 최근 휘청거리고 있다. 비전펀드가 투자한 기업들이 줄줄이 손실을 내면서다. 게다가 거액을 투자한 위워크가 상장에 실패하면서 비전펀드 2호를 위한 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비전펀드가 ‘제2의 IT버블’ 선봉에 섰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사진=소프트뱅크 제공]

◆100조원 규모의 ‘비전펀드’ 출범하자마자 ‘승승장구’

2016년 소프트뱅크그룹이 기술투자펀드인 비전펀드 조성 계획을 알리자마자, 펀드 자금 출자에 유수의 기업들이 뛰어들었다. 애플·퀄컴·오라클 등 글로벌 IT 업체들뿐 아니라 아랍에미리트(UAE)와 카타르 국부펀드도 투자에 나서면서 1000억 달러(약 111조7700억원)에 이르는 목표 조달 금액을 단숨에 달성했다. 1000억 달러는 당시 미국 전체 벤처 기업이 2년 반 동안 투자 받은 금액과 맞먹는 규모였다.

비전펀드가 이토록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은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손 회장에 대한 믿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2000년 중국 인터넷 기업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알리바바에 2000만 달러를 투자해 초기 투자금의 6000배를 벌어들였다. 야후의 초기 투자자로 참여해 야후 재팬을 별도 설립했는데, 야후 재팬의 기업 가치는 현재 미국 본사 규모를 웃돈다. 이런 그가 IT업계 워런 버핏이 되겠다며 설립한 비전펀드에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공식 출범에 성공한 비전펀드는 이후 세계 스타트업들에 대한 과감한 투자 행보를 이어갔다. 미국 차량공유서비스업체 우버와 중국 경쟁사인 디디추싱은 물론 플립카트, 슬랙, 엔디비아, 우리 기업인 쿠팡 등이 비전펀드 투자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비전펀드의 활약으로 소프트뱅크는 투자회사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지난해 4~12월 결산에서 영업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61.8% 증가한 1조8590억엔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는데, 비전펀드의 운용 수익이 영업이익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등 실적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손 회장에게 투자시장에서의 실패란 없어 보였다.
 

위워크 로고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우버·슬랙 주가 폭락하고 위워크 상장 실패...비전펀드 위기론 부상

그러나 올 들어 비전펀드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기 시작됐다. 투자한 글로벌 기업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다. 우버의 경우 지난 6월 나스닥 시장 상장 이후 8일 기준 주가가 30.37달러로 상장 당시 공모가인 45달러에서 약 27% 빠졌다. 사무용 메신저 업체인 슬랙 역시 최초 공모가보다 주가가 32%가량 하락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비전펀드의 투자를 받은 뒤 상장한 6개사 중 현재 기업공개(IPO) 때보다 주가가 오른 곳은 의료기기 회사 ‘가던트 헬스’, 바이오기업 ‘10x 지노믹스’ 등 2곳에 불과하다.

여기에 ‘위워크 사태’까지 맞물렸다. 위워크는 손 회장이 한때 ‘차세대 알리바바’로 부르며 사업성을 높게 평가한 회사지만 상장을 앞두고 무너졌다. 지난 8월 IPO 관련 서류를 공개하면서 회사의 수익성과 기업가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영향이다. 비전펀드는 여러 차례 투자를 이어가며 위워크 기업가치를 올 초 470억 달러 수준으로 띄웠지만 상장을 앞두고 실시된 증권사들의 기업가치 평가에서 150억 달러에도 못 미칠 것이란 결과가 나왔다. 결국 위워크는 상장을 포기했고 애덤 노이만은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모건스탠리는 비전펀드가 올해 3분기 약 3676억엔(약 4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버, 슬랙, 위워크 투자 손실액 5800억엔이 반영된 결과다.

비전펀드의 부실한 투자 실적으로 소프트뱅크의 주가는 최근 2개월 새 약 30% 하락했다. ‘비전펀드 2호’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만하다. 비전펀드 2호 규모는 1호보다 83억 달러 이상 늘어난 1080억 달러다. 소프트뱅크는 올여름 비전펀드 2호 설립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 펀드를 통해 세계 각국 인공지능(AI) 혁신 기업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최근 비전펀드 2호는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초 애플, 마이크로스프트(MS) 등 글로벌 IT 기업이 출자자로 참여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으나, 주요 출자자들이 아직 정식 투자 서명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소프트뱅크 내부에서는 비전펀드 2호 출자를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손 회장의 의지가 확고하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수월하게 투자를 받았던 1호 때와 달리 2호는 목표한 1080억 달러를 크게 밑돌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기업가치 인위로 높이는 투자방식 도마에...제2의 IT버블 우려도

전문가들은 비전펀드의 거품이 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비전펀드가 투자한 기업들의 가치가 높아진 것은 그 기업 능력에 따른 가치가 아닌 비전펀드의 대규모 투자라는 후광이 만들어낸 ‘거품’ 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비전펀드는 당장의 수익 창출 역량이 아닌 미래를 본다는 이유로, 투자 기업에 인위적으로 높은 기업가치를 매겨왔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최근 비전펀드의 투자를 받은 기업을 조사한 결과, 평가 금액이 투자 때와 비교해 약 2.9배가 높아졌다고 한다. 특히 미국 배달 플랫폼 업체 도어데시는 비전펀드의 3차례 투자 이후 가치가 19배나 높아졌다. 비전펀드가 투자 때마다 회사의 가치를 높인 것이다.

문제는 천정부지로 높아진 기업의 가치가 상장 후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방법으로 가치가 470억 달러에 이른 위워크는 아예 상장 문턱도 넘지 못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이 같은 현상이 2000년 IT 버블 때와 유사하다고 지적하면서 비전펀드발 IT 버블 붕괴 가능성을 우려했다.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마케팅 교수인 스콧 갤러웨이는 비전펀드의 이 같은 투자 방식을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비전펀드를 둘러싼 소프트뱅크의 어떤 논의도 ‘과대 광고’일 뿐”이라면서 “비전펀드 2호는 이미 죽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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