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상중(54)을 사랑하는 팬들에겐 슬픈 이야기다.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의 능글능글한 노총각부터 영화 '투사부일체'의 지질한 보스,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속 치명적인 중년남성에 이르기까지. 매 작품 다른 얼굴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배우' 김상중이, '요즘 세대'에게 잊히는 것 같은 서글픔이다.
그러나 김상중은 잊히는 것을 슬퍼하는 것보다 도전하는 쪽을 택했다. 새로운 작품과 캐릭터를 만나고 고민을 거듭해 또 다른 얼굴을 선보이는데 주력한 것이다.
'나쁜 녀석들'을 향한 김상중의 특별한 애정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드라마의 영화화부터 분량까지, 어느 것도 욕심내지 않고 오로지 작품만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은 그의 애정을 엿볼 수 있게 했으니 말이다.
지난 11일 개봉해 일주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한 '나쁜 녀석들: 더 무비'(감독 손용호)는 2014년 방영된 '나쁜 녀석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김상중, 마동석의 오리지널 캐릭터와 김아중, 장기용 등 새로운 캐릭터가 합류했다.
다음은 드라마에 이어 또 한 번 오구탁 역을 맡게 된 김상중의 일문일답이다
'나쁜 녀석들'로 안방극장과 스크린까지 잡았다. 매체를 달리해 출연하기가 부담이었을 수도 있는데
-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시나리오가 재밌었고 (오구탁 역도) 딱 제가 할 몫이 정해져 있어 좋았다. 돋보이기 위해 수정을 요구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사실 사족이다. 시나리오 속 오구탁을 표현하는 데 노력했다.
워낙 드라마가 인기였던지라 영화화가 결정됐을 때, 걱정하는 팬들도 있었다
- 그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와 영화는 '코드'가 다르다고 본다. 드라마는 (관람등급이) 19금이라서 조금 더 어둡고 잔인한 면이 있었다. 긴 호흡으로 11개의 에피소드를 풀고, 여러 가지 사건을 다루기도 했다. 반면 영화는 기획 단계부터 대중성과 유쾌함에 코드를 맞추었다. 무게감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많은 이가 편하게 다가가고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오리지널 캐릭터는 오구탁과 박웅철(마동석 분), 둘 뿐이었는데
- 이 영화는 마동석의 '나쁜 녀석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존재감, 유머 등이 영화를 이끌면 오구탁은 그 속에서 물 흐르듯 (흐름을) 따라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팬들은 오구탁의 분량이나 활약에 관해 아쉬움이 있을 거다
- 그래서 꼭 속편을 만들어야 한다. 하하하. 그런 아쉬움이 있는 분들이 속, 편하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영화를 보면 박웅철만의 포지션이 있지 않나. 그의 장점을 살려주는 게 영화의 재미를 살리는 길이었다. 그런 부분에는 이견을 달고 싶지 않다.
오구탁이 간암이라는 설정은 어떻게 받아들였나?
- 저도 맥이 빠졌다. '아, 영화가 잘 되어도 난 암으로 죽겠구나···.' 하하하. 비애감에 빠졌지만, 마지막에 간이식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던지지 않나. 속편이 제작될 수도 있다.
갑작스러운 간암 설정을 팬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 설정상 1편에서 오구탁을 움직이는 힘은 딸을 잃은 한이었다. 그게 드라마 1편과 11편까지를 관통하는 핵심이었는데 드라마가 마무리 지어지고 복잡한 과정에서 쇠퇴해 간암을 얻게 되었다는 설정인 거다. 그런데도 '나쁜 녀석들'을 모아 정의를 실현하려는 건 DNA 자체가 정의감인 듯하다.
간암 설정으로 드라마보다 영화에서는 몸이 자유롭지 못했는데
- 그래서 총을 쏜다는 설정을 하고 간 거다. '원샷 원킬'로 풀어가려고 한 거 같다. 우리나라 경찰은 총기를 발사할 수 없지 않나. 내 몸을 당하면서도 총을 함부로 쏠 수가 없다. 영화에서는 그런 제약 없이 제대로 총을 쏜다. 그에 통쾌함도 있다. 다른 배우들에게 '어렵게 액션을 하지 않으니 부럽지 않냐'고 물었는데 하나같이 '부럽지 않다'고 하더라.
반대로 액션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 왜 없겠나. 기회가 되면 보여주려고 한다. 저도 액션을 잘했었다. 과거 2~30대에는 직접 액션을 소화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쌓이다 보니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더라. 그래도 액션을 보여줄 기회가 온다면 할 수 있는 준비는 되어있다.
영화 속에는 팀 변화도 있었다. 새롭게 합류한 후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 즐거웠다. (김)아중 씨도, (장)기용이도 편하게 다가와 줬다. 저도 이제 현장에 나가면 비교적 어른에 속하는 나이다. 선배가 되면 대접을 받아야겠다는 마음보다 모범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더 크다.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분위기를 흐리면 수십 명의 스태프가 오늘 작업에 관해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모두 기분이 저하되면 안 좋지 않겠나. 그래서 더 '아재 개그'에 도전하는 거다. 웃기지 않더라도 편하게 느낄 수는 있을 테니까.
'아재개그'가 그런 마음에서 비롯되는 거였다니
- 나이를 먹으면서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제작보고회, 기자간담회도 재밌게 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계속 '아재개그'를 시도하게 된다. 허무하더라도 몇 마디 하다 보면 분위기가 쇄신되고 또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제가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며 전형화된 모습이 있는 게 사실이다. 사람들이 '무서울 거다' '딱딱할 거다' 오해하곤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이면의 모습을 이런 식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거다.
계속해서 '반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와 '아재개그'의 이미지 전에는 섹시한 이미지로도 사랑받았는데. 또 한 번 도전할 생각은?
- 있다. 영글어서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다. 하하하. 저의 가장 큰 단점은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거다. 뭘 해도 '그것이 알고 싶다'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극 속에서 상놈 분장을 해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 반감이 있다고도 들었다. 다 수용한다. 어린아이들이 저를 '그런데 말입니다'라고 부르는 걸 보면서 '아, 나를 저렇게 보는구나!' 생각한다. 심지어 배우가 아닌 줄 아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를 내려놓고 싶지 않다. 할 수 있는 만큼은 하고 싶다. 그 역시도 시청자와 소통하는 셈이니까.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도 있을 거 같다
- '나쁜 녀석들' 오구탁이 바로 그 예다. 프레임에 갇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외형부터 눈빛, 말투 등을 만들어낸 거다.
그런 노력 때문에 오구탁이라는 인물이 더 애정이 가는 걸 수도 있겠다
- '그것이 알고 싶다'에 빗댄다면 그 프로그램에서는 한 번도 속 시원한 한방을 준 적이 없다. 늘 제시하고 알려주고 여론을 통해 공론화시키는 게 제 몫이었다. 후에 범인이 잡힌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하지 못한 그 한방을 오구탁이 되어 날리는 거다. 큰 카타르시스가 있는 거다. 해결해줄 수 있다는 거. 그것도 제도권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법이 가진 모호함 때문에 해결되지 못한 걸 시원하게 해결하는데 얼마나 통쾌한지 모른다. 연기하는 저도 그렇지만 시청자분들도 답답함이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