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여전히 유지되는데도 돈이 시장에서 돌지 않는 이상 현상이 이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경제 상황에 대한 정부의 현실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는다. 물가 하락에 품목별 가격 변화를 살펴본다는 정부는 정작 '해를 가리키는데 손끝만 바라보는 격'이다.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아지고 있다.
물가 관리 정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한 관계자는 10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8월 소비자물가는 일시적으로 변동성이 확대된 것으로 급격히 둔화된 상황"이라며 "그런 요인이 사라지면 1%대로 복귀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후 품목별로 가격 변화를 면밀히 보는 중이라고만 했다.
이달 초 8월 소비자물가 발표 당시에도 기재부와 통계청은 9월부터 2~3개월 정도는 1년 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물가 흐름을 보인 뒤 연말께 0% 중후반으로 물가 상승률이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증권가 경제분석 시나리오에서도 지난해 8월 폭염에 이은 농산물 작황 부진에 따라 기저효과가 크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달 유류세 감면 일몰을 비롯해 전기료 인하 효과 소멸, 추석 연휴에 따른 계절적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물가 상승을 예고하기도 했다. 10월까지는 0% 대이지만, 11월부터 1%대로 올라설 수 있다는 긍정적 시그널도 내놨다.
이런 시각에 다수의 경제전문가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단순히 생산 또는 공급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정부는) 공급 측(생산가격)만 계속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국내에서는 공급 측보다는 수요 측을 더 걱정해야 할 판"이라며 "수요가 약해서 시장을 자극하지 못하는 것이며 크게 본다면 한국경제의 성장세가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물가 상승 압력으로 나타날 여력이 현 상황에서 굉장히 약하다"며 "완화된 통화정책을 통해서 돈도 풀리고 있지만, 현 상황에서 통화정책 역시 시장의 수요를 유도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수요를 자극할 수 있는 건설 분야 등에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규모 토목 사회간접자본(SOC)을 지양하고 주택 공급 시장도 규제하다 보니 투자 활력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직접적인 고용 여력을 키울뿐더러 시장에 유통되는 자본이 늘어날 수 있도록 관련 투자가 원활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게 경기를 위축시키고 소비시장을 역행하게 만든 것으로 분석한다.
일각에선 내년 정부 예산안이 수요를 자극할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역대 규모의 슈퍼 예산인 513조원가량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것에 비해 경제 회복에 대한 희망을 담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예산안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홀대받던 사회간접자본(SOC) 분야는 이제야 올해보다 12.9%가 늘어난 22조3000억원 규모로 배정됐다. 이 분야의 예산 증액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실제로 경기 부양과 고용 창출에 얼마나 기여할지에 대해서는 업계 역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일변도 속에서 그동안 정부가 놓친 분야를 뒤늦게 보강한다는 시각은 포착된다. 그만큼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결국은 물가라는 게 수요 측 경기에 의존하는 것이고 중장기적인 통화정책도 살펴보면서 큰 틀에서 물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며 "지난해는 물가보다는 금융시장 안정을 보면서 금리를 올리는 등 정책을 펼친 측면이 있고, 이제부터는 물가 안정에 초점을 맞출 뿐만 아니라 경기가 되살아날 수 있는 방향으로 마중물을 잘 부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