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법에 따라 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려면 찬성표가 하원 정족수(650석)의 3분의 2인 434표를 넘어야 한다. B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10일(현지시간) 조기 총선 동의안에 대한 찬성표가 293표에 불과해 법안이 부결됐다. 46명이 반대했고 나머지는 기권했다.
영국 의회가 조기 총선을 거부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존슨 총리는 지난 4일에도 조기 총선 카드를 꺼냈다. 영국 하원이 EU(탈퇴)법을 통과시킨 데 대한 대응 조치였다. 브렉시트(영국의 EU 이탈)를 3개월 추가 연기하는 것이 이 법안의 골자다.
존슨 총리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다. 그간 노딜 브렉시트(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이탈하는 것)를 불사하겠다고 주장해왔던 탓이다. 10월 15일 조기 총선에서 과반수를 확보, 브렉시트 연기 법안을 저지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닷새 동안 조기 총선 동의안이 두 번이나 거부당하면서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이에 따라 존슨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줄어들게 됐다. 당론을 어긴 의원 21명을 제명한 데다 브렉시트 부담에 따른 자진 탈당이 잇따르면서 집권 여당인 보수당의 하원 의석수는 288석으로 줄었다. 존슨 총리에 대한 범야권의 비난 수위도 강경하다. 경제 악영향 우려에도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날 조기 총선 동의안 표결을 끝으로 의회가 10월 14일까지 5주간 정회하는 것도 문제다. 브렉시트 시한(10월 31일)을 고려하면 개회 이후 시간이 불과 2주 남짓밖에 없다. 10월 14일 의회가 개회하면 총리 불신임안을 제출할 가능성도 있지만 브렉시트 시한을 며칠 앞두고 있는 만큼 정치적 무리수가 될 수 있다. 브렉시트 불확실성이 큰 이유다.
의회 기능을 멈춘 주범은 존슨 총리다. 사실상 의회 개원을 의미하는 '여왕 연설'을 일방적으로 10월 14일로 못박았다. 의원들의 입을 막겠다는 의도였다. 노딜 브렉시트를 불사하더라도 10월 31일 EU를 이탈하겠다는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외려 브렉시트 해법을 복잡하게 하면서 제 발목을 잡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