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 '작은 거인' 마윈의 은퇴...남을 먼저 생각한 상생경영 실천

2019-09-0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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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 창립 20주년…55세 마윈 은퇴 선언

항저우 허름한 아파트에서 창업…오늘날 글로벌 IT공룡으로

마이뱅크, 링서우퉁, 타오바오촌 등 사업으로 '상생경영' 귀감

짝퉁기업 오명, '996근무제' 옹호에 비난도

중국 최대 갑부, 왜소한 체구 때문에 '작은 거인(小巨人)'이라 불리는 기업인.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오는 10일 공식 은퇴한다. 그날은 알리바바그룹 창립 20주년 기념일이자, 그의 55번째 생일이기도 하다. 마윈은 이미 1년 전인 2018년 9월 10일, 장융 알리바바 최고경영자(CEO)를 후계자로 지명하며 은퇴를 예고했다.

1999년 마윈이 동료 18명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20평짜리 허름한 아파트에 모여 창업한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오늘날 전 세계를 바꾼 '인터넷 공룡'으로 성장했다. 중국 최대 부호에 오른 마윈은 사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처럼 은퇴 후 자선사업에 힘쓰겠다는 말을 곧잘 했다. 이제 그는 바람대로 ‘본업’인 교사로 돌아가 남은 인생을 산다는 계획이다.

1964년생인 그는 올해로 55세. 아직 은퇴하기엔 좀 이른 나이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가 74세 고령에도 회사를 이끄는 걸 보면 더더욱 그렇다. 20년째 장기 집권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마윈에게 “젊은 나이에 왜 벌써 은퇴하냐"고 물었다. 일각에선 마윈이 중국 공산당 지도부 압박에 물러나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도 나온다.

하지만 마윈은 지난달 29일 제3회 여성창업자총회에서 은퇴 소감을 전하며 “나는 알리바바그룹 회장에서 물러나는 것이지 은퇴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알리바바는 내 꿈의 하나일 뿐이다. 나는 아직 젊다. 내가 아직 부딪혀 보지 않은 게, 해보고 싶은 게 아주 많다"고 했다. 사실상 은퇴 후 '인생 2막'을 열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돈도 백도 없던 삼수생→영어강사→사업가 변신

싸움꾼, 삼수생, 취업낙방자, 가난한 영어강사. 마윈의 인생은 알리바바를 창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실패로 얼룩진 '루저(패배자)'나 다름없었다.

1964년 9월 10일, 항저우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작고 왜소한 체구를 타고났다. 하지만 어디 가서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주먹을 휘두르며 싸움을 일삼았다. 워낙 말썽을 일으켜서 그의 부친이 아들의 초등학교를 세 번이나 옮겼을 정도다. '맹부삼천지교(孟父三遷之敎)'다.

하지만 유독 잘하는 게 있었으니 바로 영어다. 중학교 때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한 그는 매일같이 시후(西湖)에 놀러가 이곳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만 마주치면 영어로 이야기 나누는 걸 즐겼다.

나머지 과목 성적은 형편없어 두 차례 대학 입시 낙방 끝에 삼수생으로 간신히 항저우사범대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영어강사를 하면서 겸직으로 통역회사도 차렸다. 워낙 무명의 영세업체라 일감이 거의 없어 생계를 꾸리기도 어려웠다.

그러던 중 1995년 미국 출장길에 우연히 접한 인터넷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마윈이 당시 구글에 자신이 운영하는 통역회사 소개 글을 하나 올렸는데, 두 시간여 만에 미국·독일·일본 등 5곳의 기업에서 프로젝트 사업을 제안하는 이메일을 보내온 것. 마윈의 두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었다. 인터넷에선 대기업이든, 소기업이든, 누구나 평등하게 거래가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마윈은 귀국하자마자 중국기업을 위해 웹사이트를 개설해주는 '차이나옐로페이지'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중국 최초의 인터넷기업이다. 1995년,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을 세운 그해다.

하지만 인터넷 '불모지'였던 중국에서 사업은 순조롭지 않았다. 결국 그는 사업을 접고 1997년 베이징으로 '상경'했다. 당시 중앙정부 산하 대외경제무역부 소속기관에 취업해 산하 무역업체 간 인터넷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을 맡으며 전자상거래 시장의 '기회'를 발견했다.

알리바바 창업 초기인 2000년 항저우 20평짜리 아파트에서 회의하는 마윈과 그의 동료들. [사진=알리바바]

◆”세상에 할 수 없는 비즈니스는 없다” 알리바바 영토 확장

그는 1999년 중국 소상공인이 전 세계에 물건을 팔 수 있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만들겠다며 단돈 50만 위안으로 전자상거래 업체를 세웠다. 알리바바의 탄생이다.

창업 이듬해인 2000년 '닷컴 버블'이 닥치며 자금난도 겪었다. 하지만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의 만남은 알리바바를 위기에서 구했다. 마윈의 잠재력을 알아본 그가 대화를 나눈 지 6분 만에 알리바바에 2000만 달러 투자를 결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알리바바의 B2B(기업 간) 전자상거래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2000년 7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커버스토리엔 '중국의 인터넷 선구자'라는 소개와 함께 마윈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찬 표정으로 '파이팅'하는 사진이 실렸다. 포브스는 "5피트의 작은 키에 100파운드 남짓 체중의 빼빼 마른 왜소한 체구, 광대뼈가 움푹 파인 얼굴, 헝클어진 머리로 익살스런 미소를 지었다"고 묘사했다.

2000년 7월 포브스 커버스토리에 실린 마윈 알리바바 그룹 회장. 

“세상에 할 수 없는 비즈니스는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마윈은 2003년 개인 간 거래, 즉 C2C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타오바오를 설립했다. 당시 이베이가 90% 장악한 중국 C2C 전자상거래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이베이의 수수료 유료화에 대항해 무료화로 맞받아친 타오바오는 이베이의 신용카드 결제시스템 페이팔을 '중국화'시킨 현금 충전 방식의 알리페이도 개발했다. 타오바오 공세에 밀린 이베이는 결국 2007년 중국에서 철수했다.

2009년 쇼핑과 전혀 무관했던 11월 11일 '독신자의 날(광군절)'을 오늘날 하루 매출액 28조원 이상을 달성하는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만들며 중국 ‘소비 빅뱅(대폭발)’도 이뤄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그에게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중국판 창조경제’라고 높이 평가했다.

2014년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알리바바 그룹의 시가총액은 현재 4500억 달러(약 550조원)가 넘는다. 글로벌 IT공룡으로는 애플, MS,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에 이은 6위다. 지난 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 기준으로 마윈은 자산 414억 달러를 가진 중국 최고 부호다.

알리바바는 이제 전자상거래뿐만 아니라 소매유통·물류·영화·미디어·금융결제·빅데이터·클라우드까지 영토를 넓히고 있다. 무역전쟁 속에서도 알리바바는 지난 2분기 매출과 순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2%, 145% 늘며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었다.

◆"구멍가게, 농민, 소상공인과 함께···" 상생경영 실천

2018년 2월 방한한 마윈은 강연에서 "성공을 원한다면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라”며 “알리바바도 그렇게 시작해 성공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청년을, 여성을 어떻게 성공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알리바바 기업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마윈의 경영철학은 '상생'으로 압축된다. 중소기업, 농촌, 개발도상국, 청년, 여성 등 사회 소외계층과의 ‘상생’을 강조한 것이다.

알리바바가 2015년 세운 '마이뱅크(왕상은행·網商銀行)'가 대표적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첨단 IT 기술을 총동원해 그동안 은행 문턱이 높아 대출도 못 받던 소상공인 중심의 금융서비스에 집중했다. 과일 노점상, 꽃집, 포장마차 상인들도 스마트폰 터치 몇 번만으로 손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 마이뱅크는 현재 중국 전역의 1700만명 소상공인에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경제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2017년부터는 '600만개 구멍가게 살리기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대형마트 공세에 밀린 동네 구멍가게를 '티몰스토어'로 변신시키고 있는 것. 간판·인테리어를 새로 단장하는 것부터 빅데이터에 기반한 판매상품 추천, 매대 배치 컨설팅 등 맞춤형 서비스도 제공한다. 전체 매장 판매 물품의 30%는 알리바바에서 운영하는 B2B플랫폼인 '링서우퉁(零售通)'에서 납품을 받는 데, 중간 유통상을 거치지 않아 싼값에 물품 조달이 가능하다. 현재 중국 전국에 티몰스토어로 변신한 구멍가게는 모두 6000곳. 우리나라처럼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것과 비교된다.

중국의 가난한 농촌 살리기 프로젝트도 올해로 벌써 10년째 진행 중이다. 농촌에 전자상거래 인프라를 구축하고 현지 주민들이 직접 생산한 물건을 타오바오에서 판매하는, 일종의 농촌 인터넷 창업 클러스터를 만들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특히 현지 주민의 10% 이상이 타오바오에서 장사를 하고, 전자상거래 연간 거래액이 1000만 위안 이상인 마을을 '타오바오촌(村)'이라 부른다. 8월 말 기준 중국 전역엔 4310개 타오바오촌이 형성됐고, 여기서 창출되는 연간 전자상거래 매출이 7000억 위안, 일자리가 683만개다.

마윈은 2017년 '전자세계무역플랫폼(eWTP)', 일명 '인터넷 실크로드' 구상도 제창했다.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교역을 하나로 연결해 각국 중소기업들에 자유롭고 공평하고 개방된 무역의 기회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다국적기업뿐만 아니라 영세기업도 인터넷을 통해 연결돼 장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르완다 등지에선 이미 eWTP가 추진 중이다.

유엔,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등 국제기구 수장들이 직접 항저우까지 찾아와 마윈과 알리바바의 농촌 전자상거래 발전모델, 포괄적 금융, eWTP 등을 논의할 정도로 마윈의 '상생 경영'은 전 세계적으로 귀감이 되고 있다.

마윈의 상생 경영은 그의 명함에서도 잘 드러난다. 명함엔 모두 11개 직함이 쓰여져 있는데, 마윈공익기금회 설립인, 농촌교사 대변인, 대자연보호협회 글로벌이사, 유엔 청년창업 중소기업 특별고문, 유엔 세계여성포럼 연석회의 연합주석 등 자선사업과 관련된 게 8개다.

◆짝퉁과 뇌물이 판치는 기업 오명도···

하지만 마윈을 둘러싼 '흑역사'도 있다. 2011년 마윈이 알리바바그룹 이사회 승인도 없이 알리페이를 그룹에서 떼내 자기 소유의 중국 국내법인 산하에 둔 게 대표적이다. 이는 야후 등 글로벌 투자자의 분노를 샀다. 그들은 마윈이 알리페이를 '사유화'했다고 맹비난했다.

마윈은 중국에서 인터넷결제 라이선스를 신청하는 기업은 반드시 100% 중국계 자본기업이라는 법규 때문이라고 항변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기업의 윤리, 도덕성에 흠집을 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짝퉁(모조폼)' 논란으로도 수 차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특히 2015년 중국 국가공상총국은 타오바오의 짝퉁 제품 판매율이 60% 이상이라며 알리바바를 '짝퉁은 물론 뇌물이 판치는 기업'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국 역시 짝퉁 문제를 지적하며 2016년부터 3년 연속 타오바오를 '악명 높은 시장' 명단에 올렸다.

최근엔 '996 근무제' 대한 마윈의 발언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996 근무제는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것으로, 중국 IT 업계에 만연한, 정당한 보상 없는 과도한 초과근무를 일컫는 말이다.

996 근무제 논란에 마윈은 "젊었을 때 996을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느냐"며 "하루에 편안하게 8시간 일하려는 직원은 필요없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중국 누리꾼들은 "IT업계 리더로서 책임감 없는 발언을 했다",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996을 강요할지 우려스럽다"며 마윈이 '자본가의 진면목을 드러냈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마윈의 주요 어록

"누군가 당신을 미친 놈이라고 부른다면 성공이 머지않았다는 의미다."

"변화는 고통스럽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더 고통스럽다."

"내가 남보다 더 행운이 있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아마도 남들보다 의지력이 더 있었을 것이다. 가장 힘들 때 나는 남들보다 1~2초 더 견뎌낼 수 있다."

"오늘은 잔혹하고, 내일은 더 잔혹하지만 모레는 아름답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내일 저녁에 죽는 바람에 모레 아침의 태양을 보지 못 한다."

"바보는 입으로 말하고, 총명한 사람은 머리로 말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으로 말한다. 자신이 가장 총명한 사람이라고 자신하지 마라. 자신보다 더 총명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 믿는 사람이 가장 총명한 사람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말한 걸 실행에 옮기고 약속을 지키면 된다."

"창업의 길에는 열정과 집념, 겸허함이 모두 필요하다. 열정과 집념은 가속페달이고, 겸허함은 제동장치다."

 

[그래픽=김효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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