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가 넘치는 세상이다. 개인이 본질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덴마크 출신 3인조 작가그룹 ‘수퍼플렉스(SUPERFLEX)’는 작품들을 통해 관객들이 찬찬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함께 하자’고 외친다.
‘수퍼플렉스’는 1993년 야콥 펭거,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 라스무스 닐슨 3인이 결성한 작가그룹이다. 이들은 현대사회 속 작가 역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문하며 그동안 글로벌 세계와 권력 시스템 본질을 비판적 시각에서 고찰해왔다.
이번 전시에는 ‘수퍼플렉스’의 고민들이 잘 드러난다. 갤러리 한쪽 벽면을 장식하는 ‘Bankrupt Banks’는 2008 년 세계 금융 위기 당시 파산을 선언하고 여타 금융 및 정부 기관에 인수된 은행들의 로고를 회화의 형태로 번안한 작업이다. ‘희망적’이라는 가면을 벗은 로고들은 더 이상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편 그 반대쪽 벽면에는 2008년 7월14일 얼라이언스 앤드 레스터(Alliance and Leicester)가 산탄데르 은행(Grupo Santander)에 인수되었다는 사실을 시작으로, 세계 금융권의 구조조정에 대한 전체적인 연대기가 기다란 검정색 패널 위에 정리되어 있다. 현재는 사라진 한국의 토마토저축은행, 대전상호저축은행, 전주저축은행도 있다.
야콥 펭거는 “작품을 만들면서 파산한 은행이 정말 많다는 것에 놀랐다. 파산한 은행은 더 큰 은행에 인수된다. 이후 흥망성쇠를 겪는다”고 설명했다. 검정색 패널을 가득 채운 은행의 이름들이 현실을 돌아보게 했다.
또 다른 작업인 ‘Connect With Me’는 동시대 가장 논쟁적인 화폐종류인 비트코인의 급격한 가치 변동을 보여준다. (현재까지의) 최고가가 기록된 18개월의 기간을 포착해 그 사이 급변하는 비트코인의 가치를 그래프의 형태로 시각화한 조각 작품이다.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은 “인간은 상대를 몰라도 내러티브(Narrative)를 공유한다. 경제를 공유하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수퍼플렉스’가 함께 공유하고 싶은 주제는 다양하다. ‘수퍼플렉스’는 갤러리 입구에 설치한 ‘Après Vous, Le Déluge’ 조각작품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해 경고한다. 벽면에 새겨 넣은 세 개의 푸른 유리조각은 2015년 파리 기후변화 협약에서 정리한 예상치에 근거하여 향후 기후변화에 따라 상승할 해수면의 높이를 가리킨다.
‘수퍼플렉스’는 전시 안내문을 통해 “땅 위에서는 파괴적인 경제 위기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의 꿈의 총체는 꾸준히 덩치가 커진다. 지구에서의 우리의 현존은 돌이킬 수 없는 급진적 변화의 길목에 들어섰다. 개인의 더 나은 미래가 모두의 재앙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고 경고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수퍼플렉스’는 협업과 공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맥주를 만드는 법을 공개한 ‘Free Beer’는 그들이 현실에서 만들고 있는 ‘작은 변화’다.
Free는 무료가 아닌 자유를 의미한다. 누구든 레시피를 따르거나 변형해 자신만의 ‘Free Beer'를 만들어 마실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매실향이 인상적이었던 ’Free Beer Version 7.0'은 현실의 갈증을 잠시 잊게 해줬다.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