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걸음마를 뗄 당시 뱅크샐러드가 선보인 서비스는 신용카드 추천 업무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뱅크샐러드는 신용등급 관리, 대출상품 추천은 물론 기존 금융권도 쉽게 선보이지 못한 보험상품 맞춤형 추천 업무까지, 이용자의 데이터를 활용한 금융서비스를 망라한다. 레이니스트는 올해 국내 '데이터 경제' 산업을 선도하는 핀테크 기업으로 인정받아 금융 혁신을 위해 관련 규제 적용을 유예해주는 '금융규제 샌드박스' 1호 기업에 선정됐다.
김 대표를 최근 서울 여의도 레이니스트 본사에서 만나 레이니스트가 선보인 혁신 서비스와 데이터 경제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의 금융 데이터 체계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보다 훨씬 표준화돼 있다"며 "데이터 경제, 특히 데이터 금융 시장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신(新)산업"이라고 강조했다.
◆'마이데이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그간 고객의 금융데이터는 거래하는 금융사가 독점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데이터를 다른 금융회사에도 공개해 고객이 더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해당 정보를 금융사가 독점하지 말고 풀라는 것이 마이데이터 사업의 핵심이다. 다양한 금융 데이터를 활용해 서비스 차별화에 성공한 레이니스트가 마이데이터 시범사업자에 선정된 배경이다.
그렇다면 마이데이터 사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대표는 "금융 자체가 데이터 산업"이라며 "미래에 금융산업이 더 성장하기 위해선 마이데이터가 필수"라고 설명했다.
"금융은 그 자체가 데이터 산업입니다. 대출장부든 예금장부든 성격만 다를 뿐, 장부 자체는 숫자로 저장됩니다. 100% 디지털화할 수 있는 제조산업, 즉 디지털 산업인 것이죠. 금융 데이터들을 융·복합할 때 나타나는 시너지는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고객의 신용 시스템 체계를 강화할 수 있는 점은 기본입니다. 이를테면 보험권에선 리스크를 산정하는 보험 인수율 체계가 보다 정교화되겠죠. 그러나 마이데이터에 주목해야 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국가 경제와 밀접해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금융데이터가 고객의 소비 데이터, 건강 정보, 심지어 주행습관 정보 등과 합해진다면 각종 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국가 차원에서의 집단적 리스크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데이터 융·복합이 가능해진 시대에 시민 개개인에게 얼마나 최적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가 국가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분석이다. 특히 이 중심에 금융데이터가 자리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데이터를 오픈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금융 데이터입니다. 동시에 데이터가 얼마나 표준화돼 있는지가 관건이에요. 카드사의 지출 정보를 예를 들어보죠. 카드 사용이 활발한 나라라면 카드 이용 정보만으로 시민 개개인이 일상을 어떻게 보내는지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나라가 흔치 않습니다. 일본은 현금 중심 사회이고요. 미국이나 유럽은 마이데이터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범위가 은행에 국한돼 있어요. 반면 우리나라는 은행은 물론 카드, 보험, 증권사 등 모든 금융권에 걸쳐 마이데이터 사업을 벌이고 있죠. 이는 한국의 금융 데이터가 세계에서 가장 표준화돼 있어서 가능한 겁니다."
◆미래 금융상품 엿볼 수 있는 '스위치 보험'
지난 6월 금융위원회는 레이니스트의 '스위치 보험'을 샌드박스 1호로 지정했다. 스위치 보험은 스위치를 켜고 끄듯이 고객이 보험상품에 한번만 가입하면 만기 후 별도의 절차 없이 재가입이 가능하도록 한 서비스다. 예컨대 그간 여행자보험은 여행을 떠날 때마다 가입해야 했다. 그러나 스위치 보험을 이용하면 향후 여행 가기 전 일정만 입력하면 바로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보험은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금융 상품이지만, 금융 애플리케이션(앱) 가운데 보험 관련 앱 이용률은 극히 낮습니다. 보험 상품이 워낙 어려운 탓에 한 번 가입하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관리해야 하는 관련 정보가 적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느 금융상품 못지않게 보험 유지를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가입을 주저하기도 하죠. 달리 보면, 필요한 보험이 필요한 시점에 공급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겁니다. 이 문제의식이 스위치 보험을 고안하게 된 배경이에요. 한번만 가입하면 별도로 해지할 필요 없이, 필요할 때 보험 적용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었죠. 고객은 각종 생활 리스크를 줄일 수 있어요. 이는 향후 운전자보험이나 레저보험 등에도 적용이 가능해질 겁니다."
이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는 것은 핀테크 회사와 기존 금융회사가 디지털 협업을 통해 구축한 모범 서비스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레이니스트는 보험상품을 직접 개발할 수는 없지만, 보험사와 제휴해 관련 상품에 가입시키고 스위치 보험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금융 데이터를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기존 금융권에서 개발하지 못한 새로운 서비스를 핀테크 회사에서 선보인 셈이다. 스위치 보험이 샌드박스 1호로 선정된 배경이다.
이는 향후 레이니스트가 금융권과 협업해 새로운 상품 모델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레이니스트는 카드, 예·적금, 대출 등 '스크래핑' 기술로 얻을 수 있는 고객 정보를 대부분 보유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고객의 행동 데이터와 상품 데이터를 분석하면 고객 개인마다 각기 다른 상품을 공급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뱅크샐러드는 가입자가 400만명을 넘어섰고, 평균 3일에 한번씩 사용한다. 디지털 고객 접점을 이룩한 것"이라며 "레이니스트와 금융사의 협업으로 소비자는 상품 선택권이 강화되고, 금융사 입장에서도 갈증을 지니고 있던 상품 포트폴리오 디지털화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가 만나는 장, '데이터 드리븐 플랫폼'
레이니스트를 비롯해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 카카오페이 등 최근 급성장 중인 핀테크 회사들의 공통점은 플랫폼이 기반이라는 점이다. 즉,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사용자를 모으고 서비스를 개발한다.
플랫폼 비즈니스와 마이데이터 산업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김 대표는 이렇게 만들어진 플랫폼을 '데이터 드리븐(Driven)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가 오고 가는 장이라는 의미다.
"일반적인 플랫폼은 다수의 소유자와 공급자, 즉 고객접점이 중간에서 만나 여러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에요. 이에 반해 데이터 드리븐 플랫폼은 수요자와 공급자는 물론 고객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장이기도 하죠. 이 지점에서 새로운 시너지가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금융회사의 각종 데이터를 모아서 자산관리 서비스를 내놨더니, 이 데이터를 통해 역으로 금리를 낮추고 한도를 높여주는 데이터 활용능력이 극대화됐다는 점입니다."
이는 레이니스트가 지난해 11월 선보인 '신용 올리기' 서비스에서 엿볼 수 있다. 신용 올리기는 신용점수 향상에 도움이 되는 국민연금 및 건강보험료 납부내역, 국세청 소득금액증명원 등의 서류를 신용평가 회사로 보내주는 서비스다. 뱅크샐러드는 이용자로부터 공인인증서 활용을 위탁받아 각종 서류를 신용정보 회사에 제출하고, 신용정보 회사가 이를 점수에 반영하는 식이다.
레이니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이용자 전체가 이 서비스를 통해 끌어올린 신용점수는 총 368만7192점이다. 이용자 1명당 평균 8~9점의 신용점수가 향상됐다.
김 대표는 "한국은 세계에서 금융 데이터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나라"라며 마이데이터 산업을 키울 수 있는 인프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갖춰져 있다고 줄곧 강조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산적해 있다. 마이데이터 사업 활성화를 위해선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등 이른바 '데이터경제 3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 1소위 안건에 데이터 3법이 포함됐지만, 논의되진 못했다. 지난해 11월 발의된 후 10개월째 제자리걸음이다. 김 대표는 "관련 법안이 없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 발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데이터 3법은 마이데이터의 실증화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