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은 지난달 3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미·중 무역전쟁과 세계 경제둔화 등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 7개월 만이었다. 그러나 제롬 파월 의장은 이번 금리인하를 "중간 주기 조정"으로 규정하고 완연한 완화 기조로 돌아서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장기 금리인하 주기의 시작이 아니다"라고 못 박으면서 추가 금리인하에 명확한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다른 연준 정책위원들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트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6일(현지시간) 연설에서 연준의 다음 행보를 결정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FOMC 위원 중 가장 먼저 금리인하를 요구했다. 연준에서 통화완화를 선호하는 비둘기파 대표주자다. 불러드는 연내 1차례 이상 금리를 내릴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면서도, 결정을 내리기 전에 지난번 금리인하가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지켜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 역시 이날 연준의 추가 행보를 묻는 질문에 "경제지표와 근거를 확인하기 전에 다음 행보를 결정하는 건 정말 어렵다. 지표가 나오기 전에 결정을 미리 해 놓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지표 확인이 먼저라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9월 1일부터 중국산 수입품 연간 3000억 달러어치에 물리겠다고 예고한 10%의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연준이 다음달 FOMC에서 추가 금리인하를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 애널리스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계획대로 관세를 밀어붙이면 연준의 공격적인 대응이 정당화할 것이다. 연말까지 금리가 0.75%포인트 더 낮아질 수도 있다"고 봤다.
시장 역시 9월 금리인하 기대를 놓지 않고 있다. CME그룹 페드(Fed)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9월 FOMC에서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100% 확신하고 있다. 0.25%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을 76.5%로, 0.50%포인트 인하할 가능성을 23.5%로 각각 반영 중이다.
연준에 공격적인 통화부양책을 요구해온 백악관은 금리인하 압박을 이어갔다. 대중 추가 관세에 동의한 유일한 백악관 참모로 알려진 피터 나바로 백악관 제조·무역정책국장은 6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국 기준금리를 다른 나라와 비슷하게 맞추기 위해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최소 0.75~1%포인트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시기와 수치를 제시한 나바로 국장의 이날 발언은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싫어줬다. 시장에서는 미·중 무역전쟁이 단기에 수습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자 백악관이 연준에 의지해 중국과의 장기전에 대비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 경우 위험한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무역전쟁으로 인한 경기둔화를 우려해 연준이 금리를 인하하면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갈등 수위를 높이고, 이게 다시 연준에 추가 금리인하 압박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다. 데이비드 켈리 JP모건 투자전략가는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연준의 금리인하를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대한 허가로 인식해 미·중 갈등의 수위를 높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크리스티나 후퍼 인베스코 수석 전략가는 "시장에 서로 상충하는 두 가지 힘이 작용하고 있다. 금리인하는 위험자산을 뒷받침하고 시장을 안정시키지만 무역전쟁은 시장 변동성을 높이고 투자자들을 안전자산으로 유도한다"면서 "앞으로도 이런 줄다리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