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들보다 더 멀리까지 보았다면, 그 이유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이 1676년 로버트 훅에게 보낸 편지에 씌어있던 문장이다. 뉴턴과 훅은 당대의 과학자로 서로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던 사이다. 하지만 질투나 경쟁심 같은 것이 개입되면서 서로에 대한 적개심도 커졌다. 편지에 나온 '거인들의 어깨'는 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플라톤이나 코페르니쿠스 같은 대학자의 어깨를 가리키는 것으로, '너'한테서 도움받은 건 별로 없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혹자는 훅의 키가 작았던지라, '거인의 어깨'라는 표현으로 그를 조롱했다는 주장도 있다.
'거인의 어깨'란 말은 뉴턴이 창안한 것은 아니고, 고대 신화 속에 등장하는 거인과 난쟁이 스토리에서 나왔다. 거인은 눈이 멀어서 스스로는 갈 길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장대처럼 키만 크면 뭘하나. 아무리 높은 곳에 눈이 달려 있어도 보지 못하면, 저 멀리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답답했던 거인은 아주 눈이 밝은 난쟁이를 자신의 어깨에 올려주고, 그 보이는 것을 말해달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거인은 눈을 달게 되었지만, 난쟁이는 자신이 볼 수 없었던 먼 곳을 보면서 세상에 대한 생각을 넓힐 수 있게 된다. 뉴턴은 자신을 '난쟁이'로 표현하며 겸손한 태도를 보인 것이지만, 사실 거인은 자신이 없으면 그 먼 곳을 보지 못하니, 자신이 그들보다 더 위대하다는 자부심을 내비친 것이기도 했다.
움베르토 에코는 '거인과 난쟁이'스토리가 6세기경 프리스키아누스의 저서에 등장하고 있다고 말하고, '거인의 어깨'에 주목한 것은 12세기 샤르트르 학파의 베르나르라고 주장한다. 베르나르가 저 말을 쓴 것은, 고대의 철학자를 달달 외는 방식의 공부는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였다. 그들에게서 받은 영감을 우리 식대로 새롭게 확장하여 후대인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고대인들은 '거인들'이고 우리는 난쟁이지만, 우리가 거인의 어깨 위에서 발견한 것들은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움'이며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지니고 누리는 가치라는 점이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탐구하고 철학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은, 시대의 소명이며 후대를 위한 사명이라고 베르나르는 말한다.
'거인의 어깨'는, 인간이 기록을 통해 역사적으로 누적되는 긴 경험을 활용함으로써, 수명이 제약해온 한계를 초월하는 비밀을 우화적으로 밝혀준다. 신은 인간에게 문명을 밝힐 재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그 재능이 이룬 것을 축적할 수 있는 축복은 해주지 않았는지 모른다. 재능이 수명에 의해 영원한 되돌이표로 제한되도록 해놓은 것이다. 인간은 평생 쌓았던 지적 경험들이 죽음과 함께 완전 소멸되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고 그것을 볼 수 있는 난쟁이를 어깨 위에 올렸다. '역사'라는 지혜의 거인 위에 눈을 달아 더 진전된 내용들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이 기록문명이다. 문자의 기억이 바로 난쟁이의 눈이다. 역사가 인간을 여기까지 오게 했다는 통찰을 담고 있는 의미심장한 표현이 바로 '거인의 어깨'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