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선의 검보 이야기⑩·끝] 중국 문화산업 정책과 검보의 현대적 변용

검보(臉譜)는 중국 경극에 등장하는 배우의 얼굴 분장 중 하나로 크게 소면(素面) 분장과 도면(塗面) 분장으로 나뉜다.

소면 분장은 주로 남자 주인공인 생(生)역과 여자 주인공인 단(旦)역에 사용되며, 얼굴에 살색과 분홍색 분을 먼저 살짝 바르고 검은색으로 눈과 눈썹을 그리는 분장법이다.

도면 분장은 주로 호걸이나 악당인 정(淨)역과 어릿광대인 축(丑)역에 사용되며, 극 중 역할에 따라 색과 도안을 그려 넣는 색채 화장을 말한다.

검보는 바로 모든 정역과 축역의 도면 분장에 대한 통칭이다. 검보라는 명칭은 대략 청나라 시대 말엽에 생겨났으며, 본격적으로 문헌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중화민국 초기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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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검보는 일반대중들에게 경극 얼굴 분장의 대명사로 널리 인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공연예술을 대표하는 시각 이미지로 자리를 잡았다.

해당 지역의 문화적 축적물인 검보를 통해 중국의 문화적 코드와 패러다임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중국 관광지나 유적지를 다니다 보면, 최근까지도 입구 근처 상점이나 노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기념품 중 하나가 전통적인 검보 관련 공예품이나 검보첩이다. 백화점이나 공예품전시관의 공예품 역시 검보나 검보와 관련된 작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검보 공예품과 완구 산업은 중국산업정보(中國産業信息) 사이트에서 2012년에서 2024년까지의 중국 검보 업종 시장 조사, 기업 운영상황, 수요 예측, 투자전략 및 추세, 정부 정책 및 지원, 전망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담긴 보고서가 유료로 제공되고 있다. 검보 산업 관련 분석 보고서는 즈옌쯔쉰그룹(智硏咨詢集團)에서 제작한 것으로, 책정된 가격이 책자 한 건당 무려 8000위안(약 136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검보는 전통 공예품뿐 아니라 현대의 건물, 조형물, 생활용품, 인테리어, 공산품, 기구, 문화상품, 교육, 홍보 등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이나 아이템으로 끊임없이 개발되고 활용되고 있다. 이 외에 중국 국내외 예술 분야에서도 특색 있게 변용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장식 벽화, 검보 디자인 자동차, '중국 검보 그리기' 활동, 남극 중산역. [사진=바이두, 연합뉴스]

중국 시안(西安)에 2006년 산시관광그룹(陝西旅遊集團)이 기획했고 리한중(李捍忠) 감독이 총감독을 맡아 화칭츠(華淸池)를 무대로 하고 리산(驪山)을 배경으로 연출한 실경(實景) 야외 역사 가무극 ‘장한가(長恨歌)’의 인기가 지금까지 여전하다. 이 공연은 2007년 4월 7일 첫 무대를 시작으로 2018년까지 13년 동안 공연 횟수가 총 3000회 이상, 공연마다 1750개 객석이 거의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서안을 찾는 사람들에게 ‘낮에는 병마용, 밤에는 장한가 공연’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와 완성도 높은 구성으로 시안은 물론 중국의 영향력 있는 문화상품이 됐다.

‘장한가’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장편 서사시 ‘장한가’를 바탕으로 한, 당 현종과 양귀비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내용으로 하는 공연이다. 이 극에 사용된 여러 공연기법 가운데 중국 전통 공연기법인 변검이 현대의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됐다.

변검은 당 현종이 나랏일을 뒷전으로 내팽개치고 양귀비와의 사랑놀이에 여념이 없는 장면에 등장한다. 이 공연에서는 현종의 마음 상태를 레이저로 수많은 검보 이미지를 표현하며 무대배경인 리산의 밤하늘을 가득 메워 장관을 이룬다. 바로 전통적인 의미전달을 새로운 현대식 표현방식으로 재생산한 것이다.

검보는 이런 대규모 중국 공연뿐 아니라, 중국 내외의 다양한 공연과 전시에서도 응용되고 있다. 프랑스의 얼굴 행위예술가 생트 오를랑(Saint Orlan) 역시 중국 변검 공연에서 영감을 얻어 베이징 오페라 가면 시리즈(Self-Hybridization with Pekin Opera Mask series, 2014)를 전시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시안 장한가 공연(위), 오를랑의 '베이징 오페라 가면 시리즈'. [사진=바이두]

해외 기업에서도 검보는 중국 소비자들에게 맞춘 마케팅에 응용되고 있다. 일례로 한국에서는 중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한국 상품인 마스크팩에 중국인 소비자를 타깃으로 해서 검보로 디자인했다. 또한, 미국의 유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웹사이트 페이스북은 중국어 상호이름을 페이스북이란 단어를 중국인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담을 수 있는 단어인 롄푸(臉譜)로 등록한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한국 기업의 검보 마스크팩(위), 페이스북 중문 이미지. [사진=바이두]

위와 같은 일련의 현상은 비단 검보 자체의 예술성과 대중성에서 기인한 것일 뿐 아니라, 중국 정부의 문화정책과도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시진핑 정부 들어 국가 이미지 제고와 소프트파워 강화를 위해 문화정책과 문화산업육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특히 전통문화와 같은 ‘중국 특색’을 지닌 문화콘텐츠를 대내외적으로 다음과 같은 목표를 두고 활용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중국 전통문화를 내세운 중국의 꿈(中國夢), 우수한 중화전통 문화(中華優秀傳統文化), 중화민족의 대부흥(中華民族的偉大復興) 등의 기치 아래 현 정부의 체제 강화와 민족 통합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중국 정부가 전통문화를 중국의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발전시켜 국가 이미지를 문화강대국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동시에 이를 수출해서 문화산업을 통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전통문화와 관련 산업에 국가 차원의 다양한 지원과 정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향후 전통문화 관련 문화콘텐츠는 과학 기술의 혁신과 인터넷 등을 통한 다양한 분야 간의 융합과 접목이 촉진되고 심화할 것이다.

아울러 세계 전파를 위해 신기술 새로운 플랫폼과 신형 문화 사업 구축으로 중화 문화 영향력은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

검보와 관련된 문화콘텐츠와 산업 역시 중국 정부의 문화 정책의 일환 속에서 시공간과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형태로 계승되고 확산할 것으로 예상한다.

 

[정유선 상명대 교육대학원 중국어교육전공 교수(베이징사범대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