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책에서 책으로' (6)] 토니 주트의 저작들

2019-07-0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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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편을 비판하는 용기가 진정한 용기”

“달변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하는 눌변이 부러웠다”

 
 
 

[토니 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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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느 이슬람 나라 토후(土侯)가 아끼던 사람이 전쟁에 나가서 죽었을 때, 토후는 부족 사람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어요. ‘그랬다가는 너희들의 슬픔이 가벼워질지 모르니까, 울거나 소리를 지르지 마라!’ ….”

세월호, 대통령 탄핵 등 큰일 때마다 우리가 너무 크게 소리 내 운다는 생각이 들어서 쓴, 여러 해 전 칼럼 첫 줄이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서전(‘영혼의 자서전’)에서 인용한 것인데, 칼럼이 나간 직후 취향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고향 후배 김 박사가 “토니 주트를 읽어보세요. 재미있을 겁니다”라고 연락해왔다. 읽고 싶은 책이 없던 때라 도서관에서 주트의 <기억의 집>과 <20세기를 생각한다>를 빼들었다.

두 권 중 얇고 글자가 커서 먼저 펼친 <기억의 집> 첫 페이지를 넘긴 그날 이후, 나에게 헐리웃 배우나 팝송 가수를 연상시키던 ‘토니’라는 이름은 출중한 지식과 안목, 다채롭고 풍부한 삶의 경험을 날카롭지만 아름다운 문장으로 펼쳐 놓은 이 영국 출신 유대인 학자만 대표하게 됐다. <기억의 집>을 숨도 안 돌리고 읽어치운 나는 곧바로 <20세기를 생각한다>를 집어 들었으며, 뒤이어 <지식인의 책임>, <포스트 워>,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를 빌려와 읽어나갔다.

주트는 역사학자다. 1948년 런던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와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공부했다. 학위를 한 후에는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UC버클리, 뉴욕대학에서 가르쳤으며, 2008년 온몸의 근육이 굳는 루게릭병에 걸려 2년 뒤 예순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주트는 역사가라기보다는 한 명의 공적 지식인으로서, 헛된 이론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자기기만의 적으로서, 세계적인 사건들에 관해 독립적으로 비판한 평론가”라는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평가는 수준 높은 시사 잡지인 영국의 <프로스펙트>와 미국의 <포린 폴리시>가 2005년 그를 ‘생존 중인 세계 100대 지식인’의 한 명으로 선정함으로도 뒷받침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주트를 “나의 최애(最愛)하는 지식인”이라고 고백한 교수 등 많은 지식인과 논객들이 그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음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중의 하나일 고향 후배 김 박사는 그의 무엇을 나에게 추천했는가?

주트는 자기 책 여기저기에 “자기편을 비판하는 용기가 진정한 용기”라고 말한다. 그는 조상의 나라, 핏줄의 근원, 자기편 중의 자기편일 이스라엘을 모질게 비판해 지식인의 참 용기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입증한다.

20세기의 정치사상사이자 지성사인 <20세기를 생각한다>에서 그는 “이스라엘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홀로코스트(Holocaust,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를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의 핑계거리로 격하시킴으로써 그 의미와 유용성을 깎아내리고 그 토대를 흔들어 종국에는 파괴할 것이다. 우리가 유대인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우리들의 약점을 이용하겠다는 집요한 고집이 전부”라고 말했다.

열아홉 살 때인 1967년 6월 전쟁(제3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벌어지자 이스라엘로 날아가 참전했던 주트가 이스라엘에 대한 태도를 바꾼 것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주변 아랍인들을 무차별 살상하는 것에 분개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라는 이유로 새로운 홀로코스트를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다.

나는 주트의 이스라엘 유대인 비난을 읽으면서 “크게 소리 내 울지 마라. 슬픔이 가벼워진다”라는 카잔차키스의 금언을 “크게 소리 내 울지 마라. 가벼워진 너의 슬픔을 악용하려는 자들이 널려 있다”로 바꿔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 “악용되어 온 것이 슬픔뿐이랴, 기쁨을 악용한 자는 없었을 것이며, 다른 이의 슬픔과 기쁨을 부추기고 악용해 제 잇속을 차려온 무리가 밖에만 있고 안에는 없을 것이랴”는 생각도 하게 됐다.

혹시, 나의 이 글을 읽고 주트의 책을 읽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자서전인 <기억의 집>을 먼저 집어 들면 좋겠다고 감히 말을 해본다. 주트가 루게릭병에 걸렸을 때는 그의 명성이 정점에 달했을 때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어도 그는 그냥 죽음을 기다리지 않고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기억의 집>도 그때 쓴 것이다. 몸이 굳어가면서 움직이는 게 점점 힘들어지자 “생각으로라도 즐거움을 찾기 위해” 쓴 책이다. 구술하면 누가 받아 적거나, 녹음한 후 풀어썼다.

어릴 때부터 병에 걸릴 때까지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잊고 있었던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내 이어놓았다. 집안의 유대인 전통, 어릴 때의 런던 풍경, 6월 전쟁 참전 전후, 학문 특히 역사학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 케임브리지와 프랑스 고등사범학교에서의 공부와 생활, 결혼, 아이들 양육, 영국과 미국에서의 교수 생활, 루게릭병 발병, 죽음을 앞둔 소회가 다 들어 있다.

본인은 슬픔을 담지 않았지만 읽고 나면 슬픔과 아름다움이 배어나온다. 침대에 누워 기억을 찾아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애처롭고 뭉클하다. <기억의 집> 마지막에서 “내 이름 토니는 1942년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에서 숨진 고모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밝힐 때는 먹먹한 기분도 들었다. 큰 소리로 울부짖지 않아도 자신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를 알려줄 수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라면 차원 낮은 비교인가.

<20세기를 생각한다>도 병상에서 쓴 책이다. 그가 병에 걸린 지 1년쯤 지난 2009년 1월부터 후배 역사학자인 티모시 슈나이더가 그의 집을 여러 차례 방문해 20세기 유럽 정치에 대해 그와 대담한 것을 담았다. 읽기 쉽고 가벼운 편인 <기억의 집>을 먼저 읽은 것이 <20세기를 생각한다>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이번 <책에서 책으로>는 너무 방만하게 썼다. 주트에 대한 나의 흠모와 감동을 삭여서 내놓지 않은 탓이다. 써넣고 싶었으나 못 쓴 것도 꽤 있다. <지식인의 책임>이 나를 알베르 카뮈의 <반항인>, <전락>과 <작가일기> 등으로 인도했다는 것 등이 그런 이야기들이다. 주트는 논쟁에서 지지 않은 달변가였지만 “눌변가라는 말을 듣더라도,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았던 점을 자주 후회했다”는 이야기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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