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의 '통미봉남((通美封南)'①]4월 김정은 '오지랖 발언'을 다시 읽어봐야 하는 까닭

2019-06-2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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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13일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은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처음으로 북미협상 문제에 대해 입을 뗐다.


"일방적으로 자기의 요구만을 들이먹이려고 하는 미국식 대화법에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고 흥미도 없다"면서도 "나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처럼 적대적이지 않다. 생각나면 아무 때든 서로 안부를 묻는 편지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대화의 끈을 흘려놓았다.

그 뒤에 남한을 겨냥해 나온 말이 충격적이었다. "외세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모든 것을 남북관계 개선에 복종시켜야 한다"고 전제한 그는, "특히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다. 북미협상의 중재자와 촉진자 역할을 자임해온 문재인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듯한 말이었다.


졸지에 '오지랖 넓은 대통령'으로 조롱을 당한 문재인대통령은 이틀 뒤인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굳이 오지랖 발언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점잖게 입장을 밝힌다. "우리가 한반도 운명의 주인으로서 우리가 해야할 일과 할 수 있는 역할에 맞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주도해왔다"고 오지랖이 넓은 게 아니라 우리가 해야할 일과 역할에 맞게 주도했다고 반론을 폈다.


미국 눈치를 보지 말고 남북교류에 나서달라는 김정은의 강력한 주문은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연이은 남북정상회담으로 상호 신뢰를 쌓아온 흐름으로 보면 '오지랖 발언'의 수위는 뒤통수를 맞는 듯한 쇼크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문대통령이 워싱턴까지 달려가 트럼프를 만나 '180초 짜리 회담'을 한 직후가 아닌가. 북미대화의 접점을 어떻게든 찾아내기 위해 '굿이너프딜'이란 새로운 용어까지 개발해 중재를 했다가 단호히 퇴짜 맞은 일을 생각한다면, 김위원장의 발언은 차갑고 가혹한 것이었다.

발언 수위 뿐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의 복안(腹案)의 일단이 드러났다는 점에서도 충격적이었다. 그가 겨냥한 것은 미국과의 핵딜을 통해 북한의 활로를 모색하는 일이며, 남한은 오직 그 일을 위해 '활용'할 보조재일 뿐이라는 관점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비핵화와 한반도 분단 극복은 양자가 다른 문제라는 인식이 그 속에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해 북한의 생각이 어디쯤부터 동상이몽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각성'케 해주는 말이, 김정은 위원장의 저 발언이었다. 그래서 몹시 중요한 말이었다. 왜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 미국과 직접 통하면서 남한은 접근을 봉쇄함) 전략을 쓰려하는지 최소한 그 수(手)라도 읽어야 했다.

작년 2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미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에는 분명히 문재인 정부의 공로가 있지만, 미국과의 '채널' 개설 이후 북한은 싱가포르회담과 하노이회담을 거치면서 남북한이란 단위로 미국과 협상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키워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의 긴급한 목표는 한반도 평화체제가 아니라, 북한의 자력갱생과 국제적 무대에서의 국가위상 정상화였기 때문이다. 남한은 다만 '관계 주선자'였을 뿐이라고 판단한다. 이후 남쪽과 섞이지 않고 단독으로 미국과 담판을 벌이는 것의 '실리(實利)'를 저울질하기 시작했다는 '사인'이 김정은의 오지랖 발언 속에 들어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김정은 발언을, 중국 마오쩌둥의 '담담타타(談談打打)' 정도의 전술적 공세로 양해하고 넘어간 듯 했다. 그러나, 그건 그렇게 꺼질 불이 아니었다. (2편으로 계속)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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