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째 성장이 정체된 데다, 삼성그룹 오너 일가인 이서현 전 사장까지 일선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그룹내 입지마저 흔들리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하 삼성패션) 측은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기업 매각설 역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삼성패션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셋째 자녀인 이서현 전 사장의 경영 데뷔 무대였다. 미국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한 그녀는 의욕적으로 경영에 참여했다.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 2010년 제일모직 패션사업총괄 부사장에 올라 SPA브랜드 ‘에잇세컨즈’를 론칭했다. 에잇세컨즈 덕에 2013년 12월 2일 경영기획담당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삼성패션 경영기획담당 사장과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 사장을 겸직하다가, 2015년 12월 1일 삼성물산 패션부문장 사장을 맡아 패션부문 사업을 총괄하게 됐다.
그러나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인 그는 사장 취임 3년 만에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사장 부임 이듬해인 2016년 이 전 사장의 남편인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당시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곤욕을 치른 것도 한몫을 했다. 추후 그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재판에 증인으로 여러 차례 소환되면서 삼성패션과 이서현 전 사장 또한 이미지 타격을 입었다. 김 사장은 제일기획에서 손을 떼고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로 적을 옮겼다. 이 전 사장 또한 지난해 남편을 따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부부가 모두 삼성그룹 경영에서 사실상 배제된 것이다.
이 전 사장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은 삼성패션의 부진한 실적이 주원인이 됐다. 28일 금융감독원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물산 패션부문 매출은 2015년 1조7382억원, 2016년 1조8430억원, 2017년 1조7495억원, 지난해 1조7594억원을 기록했다. 이 전 사장이 떠난 후인 올 1분기 4766억만원으로 간신히 흑자전환 했지만 전년동기(4778억만원) 대비 매출은 더 떨어졌다.
삼성패션이 정체기를 보내는 동안 주요 패션 대기업 상장사는 사업 다각화로 호실적을 이뤘다. ‘휠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잇달아 경신, 매출 4조원을 넘길 기세다. LF, 신세계인터내셔날, 한섬 등은 라이프스타일·화장품 영역까지 확장하며 뚜렷한 매출 신장세를 기록했다.
반면 삼성패션은 외형 확장이 요원하다. 사업확장은커녕 이 전 사장의 퇴진으로 삼성패션의 그룹 내 입지는 눈에 띄게 쪼그라들었다. 삼성물산에서 패션부문 수장 직급은 기존 사장에서 부사장으로 강등됐다. 기존 직책을 없애고, 임원 규모도 줄어들었다. 일례로 남성복 1·2사업부는 남성복사업부로 통합됐고, 브랜드 책임자 등 상당수 임원이 옷을 벗었다.
수익성 악화는 브랜드 철수로 이어졌다. 올 들어 30년간 운영했던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빨질레리’의 국내 라이선스 사업을 접었다. 5년 전 YG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론칭했던 브랜드 ‘노나곤’ 사업도 중단했다. 지난해 중국시장 공략에 나섰던 ‘에잇세컨즈’의 현지 매장도 철수했다.
이는 삼성물산 내 건설부문이 영업본부를 신설하고 상사부문이 자원·생활팀을 사업부로 격상되는 것과 대조되는 상황이다. 삼성물산의 사업부분별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 상사와 건설이 각각 42.9%, 40.9% 차지한 반면 패션은 6%에 불과했다.
삼성패션이 그룹의 모태라는 상징성에도 불구, 실적 부진이 계속되면 외부 매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그룹은 앞서 화학과 방산 사업부문을 한화그룹에 일괄 매각한 바 있다.
삼성 패션 관계자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삼성그룹의 모태 기업이며 아이덴티티이기 때문에 절대 매각할 일이 없다”면서 “매각을 진행한다는 건 돌아가신 이병철 선대회장이 무덤에서 일어날 일”이라고 강하게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