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월급 준다는 시간강사법은 조삼모사 아닌가, 시간강사법의 취지는 알겠지만 3년을 보장받은 강사는 이후에 더 치열한 경쟁에 몰릴 것이다”
“시간강사보다 대학원생이 더 지원을 많이 받으면서 모럴해저드가 일어나는데 이런 부분도 들여다봐 달라”
17일 오후 5시, 서울 신촌 박스퀘어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참여하는 학문후속세대 간담회가 열렸다. 이번 간담회는 그간 신진연구인력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온 유 부총리가 적극 요청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은 간담회에서 이은선 대학학사제도과 서기관의 사회로 대학과 연구 현장에서 겪고 있는 애로사항을 공유하고, 유 부총리에게 대학원생과 신진 연구자들이 바라는 희망사항과 개선 방안을 건의하는 등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다.
유은혜 부총리는 인사말에서 “BK21플러스 사업 등의 전문가와는 만나도 정작 사업에 직접 참가하는 학생들을 만나보지 못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서 이 자리를 마련했다”며 “여러가지 현장의 어려움을 교육부가 어떻게 정책으로 소통할지 충분히 의견들을 달라”고 요청했다.
김동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연구원은 유행을 타는 단기 연구 지원제도를 비판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라 해서 연구비가 부처별로 많이 나오는데 3년 전에 3D프린팅도 오바마,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이후 연구비가 증가했다”며 “연구는 유행을 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대안으로 리먼 사태 해결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리먼 사태가 발생하자 심리학자, 통계학자, 물리학자가 모여 원인을 분석했듯이 장기 정책은 전문가 집단에서 제시한 방향으로 추진하면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석환 성균관대 바이러스 연구원는 대학원생의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기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일반적인 시간대에 일을 하는 노동자와는 다르게 연구진행상황에 따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도 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을 전공하는 이영창 충남대 연구자는 시간강사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고등교육법이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개정안을 보니 선정된 시간강사는 3년 보장 이후가 없다”며 “이후 신규진입하는 강사들과 또다시 경쟁하면 똑같은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랜 기간 연구자로 지낸 이들도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한다는 경험도 공유됐다. 김희진 강원대 동물환경과학과 연구원은 “bk21플러스 학위 받고 사회에 나왔지만, 취업 문턱이 너무 높다”고 현실의 팍팍함을 말했다.
조민수 포항공대 연구원 역시 “갓 시작한 학문후속세대가 산업체와 연계를 갖기는 힘든데, 이런 부분들 정부, 교육부가 나서서 체계적인 연결 기회를 마련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최성경 조선대 디자인학과 교양교수는 “최근 대학원생이 더 줄어들고 있는데 열심히 한 학생에게 더 지원 많이 가는 게 맞다고 본다”며 “석사 졸업 후 취업과 진학을 놓고 고민하다 박사를 포기하는 학생이 많은데 석사졸업생들이 진학할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경훈 전북대 중어중문학과 BK사업단 연구교수도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지원이 적다고 지적했다. 그는 “취업 대신 연구자를 택했는데 사회는 학생으로만 봐서 장학금 지급도 야박한 편”이라며 “바뀐 시간강사법도 조삼모사(朝三暮四)처럼 같은 금액을 방학을 포함해서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원생의 모럴해저드를 우려하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김준수 건국대 생명공학과 학생연구원은 “전국 모든 대학원생의 최저임금 보장하자고 하면 도덕적 해이가 벌어진다”며 “최소한의 경쟁을 해서라도 대학원생을 고용하고 받아들이는 데 부담이 없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신진연구자들 사이에 이견이 제기되는 모습도 포착됐다. 류성식 고려대 화학과 석박통합과정생은 대학생에게 필요한 지원을 직접 대학원생에게 해 주면 책임연구자의 입장에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이에 김동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연구원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며 “석박사생은 교수의 지도하에서 배워야 하는데 혼자 연구를 하면 오히려 연구 질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교육부나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은 생각도 못했다는 황선훈 서울시립대 법학연구소 연구원은 “학술연구교수로 3년간 1억2000만원을 받는데, 연간 인건비 3300만원, 활동비 600만원, 학교에 100만원을 낸다”며 “사실상 한 달에 210만원을 받는다”고 솔직히 밝혀 연구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어 그는 학문후속세대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신진학자들은 연구용역과 강의로 수입을 보탤 수 있는데 연구과제에 참여 못하게 돼 인건비를 못 받고 강의도 6시수로 고정돼 있다”며 “취지는 맞지만 합당한 수준으로 인건비를 상향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연구용역을 하는데 제한을 풀어달라”고 구체적인 제안을 했다.
김경민 부경대 석사과정생은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놔 연구자들의 공감을 샀다. 그는 “세 번에 걸쳐 말레이시아, 미국, 유럽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하며 많이 배웠는데 좀 더 지원해주면 좋겠다”며 “공부에 재미를 붙였서 박사를 하고 싶은데 분위기가 외국에서 해야 알아준다고 해서 외국 박사학위도 지원이 있는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호철 한양대 컴퓨터소프트웨어학과 박사과정생 역시 “현재 박사과정 4년차인데 BK21사업이 4년까지밖에 지원이 안 된다”며 “5~6년차까지 확대해주면 더 깊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수경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연구원은 실제로 ‘홀로서기’ 할 수 없는 지원제도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는 “학문후속세대 사업으로 1년 포닥 중인데 창의과제에 선정돼 3년간 수명연장을 연장받았다”며 “인건비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연간 5000만원에서 30% 빼고, 그것의 최대 50%를 받으면 월 100만원 수준인데, 이런 상황에서 제 연구실을 꾸리고 연구그룹 만들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2시간 여의 토론이 이어지고 유은혜 부총리가 어렵게 입을 뗐다. 유 부총리는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이런 지속가능하지도 지속가능하다는 확약도 없는 지원을 받고도 본인의 연구에 대한 열정과 학문에 대한 책임감으로 연구하는 분들을 보니 감사하면서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가장 기초 기본이 되는 것에서도 사회적 보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후속사업 관련해 좀 더 디테일한 방법으로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야겠다는 생각”이라며 “이공계의 경우 과기부나 산업부에서 R&D 지원이 아무래도 인문사회분야보다는 좀 더 있으니 정부차원에서는 중복지원 되지 않고 골고루 혜택이 가도록 살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간강사 문제에 대해서 유 부총리는 평생교육 시스템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지역 주민들이 인문학 분야에 수요가 많으니 평생학습을 통한 교육기회에 인문학 분야 강사를 연계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등학생들 고교학점제 진행하는데 인문사회 분야 강의를 강사들과 연계하는 등 지역단위로 고등학교나 평생교육기관을 통해서 기회를 넓히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유 부총리는 “단번에 다 해소가 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최대한 현장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귀 기울이고 BK21 후속사업이 변화할 수 있도록 디테일하게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승복 대학학술정책관은 세부적인 방안에 대해 첨언했다. 학술연구교수 지원금을 4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기간은 5년으로 늘리고, 인문사회부분 실적도 논문으로 제약하지 않고 저작, 포트폴리오 등도 추가를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문상연 대학학사제도과장도 20주년을 맞은 BK21사업에 연구장학금과 국제화지원을 충분히 더 지원해 더욱 발전시켜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