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에게 "北 돕더라도 전쟁 사과 받아야" 말한 김성택은 누구

2019-06-0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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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 이상국의 '편집의눈'] 제64회 현충일을 이틀 앞둔 4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6.25 전몰장병(戰歿將兵)의 아들인 김성택씨가 문대통령을 향해 "대북 지원을 하더라도 북한의 사과는 받아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최근 소원해진 대북 관계 복원을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정부로서는 난감한 질문이었을지 모른다.

# 북한 돕더라도, 전쟁 일으킨 북한 사과는 받아내야

이날 김씨는 "평화도 중요하지만 나는 전사자의 아들이다"라고 말하면서, "전쟁을 일으킨 북한이 사과해야 매듭이 지어질 것이며 북한을 도와주더라도 사과는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주장에 대해 문대통령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날 청와대는 오찬 관련 브리핑을 했지만 '북한 사과' 관련한 김씨의 발언은 언급하지 않았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이 이 내용을 보도한 뒤인 5일 미디어오늘은 이 사실을 재확인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의 확인 질의에 "김성택씨가 실제 그런 발언을 했는데, 맥락을 말씀드리면 정부가 평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아버지가 6.25에서 전사했기 때문에 북한에 명확한 사과를 받아야 하지 않겠나 얘기를 하며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브리핑에서 '사과' 발언이 빠진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 미묘한 장면은, 6.25의 상흔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분단국가에서, 남북 평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정부와 전쟁의 후유증을 여전히 떨치지 못한 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이견의 긴장감'을 담은 풍경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청와대가 김씨의 작심 발언을 브리핑에서 제외한 것은, 북한을 의식해 '민심의 일단(一端)'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 나라에 현충일이 존재하는 것은 구국의 전쟁에 목숨과 삶을 바친 현충(顯忠, 두드러진 애국정신)을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서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적어도 청와대의 '생략' 브리핑은 이날의 취지에 걸맞지 않아 보이는 측면이 있다.
 

[고 김재권일병(뒷줄 가운데)이 입대전 숙부의 목재소에서 찍은 사진. 사진=국방부 ]



# 김성택은 누구인가 : "내게도 아버지가 있다"고 외쳤던 그 사람

강원도 강릉에 사는 김성택씨는 1950년 건설공병단으로 전투를 치르다 전사한 김재권 일병(1924~1950)의 아들이다. 경남 거제 출신의 김일병은 숙부가 목재소 부지를 군부대에 무상제공하면서 입대를 면제 받을 수 있었지만 전쟁을 겪는 조국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자진입대한다. 목재소의 목공으로 일했던 그는 공병부대에 들어갔고, 9월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따라 기동을 지원하는 공병작전에 투입된다. 10월15일 그는 가평지역 전투에서 북한군 비정규 요원의 공격을 받고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김일병의 유해는 수습되지 않았고 가족에겐 전사통지서만 전해졌다. 1950년에 결혼해 임신 중이었던 아내 전옥순씨는 쓰러져 통곡했다.

2008년 5월 가평 북면 적목리에서 김일병의 유해가 발굴됐다. 하지만 신원을 추정할 유품도 없었고 유가족의 유전자 정보도 없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2016년 김성택씨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부모 합동위패 봉안을 신청한다. 1988년에 돌아간 모친과 6.25때 전사한 부친을 현충원에 함께 모시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2017년 3월 김씨는 합동 봉안을 하면서, 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에 관한 얘기를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유전자 시료 채취를 하게 된다.

전사 당시 뱃속의 아이였던 김성택씨와 가평 적목리의 김일병의 유전자 정보가 같았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추가 검사를 통해 이들이 부자관계라는 결론을 내린다. 김씨는 당시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온몸이 저리고 가슴이 먹먹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나왔고, '내게도 아버지가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2018년 1월30일 강원도 강릉 김성택씨 자택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가 김씨(왼쪽 두번째)에게 전사자 신원확인통지서와 국방장관 위로패, 전사자 유품을 전달하고 있다. ]


# 2019년 현충일, '분단의 아들'과 '평화의 미래'가 함께 묵념하는 풍경

김성택씨가 문대통령에게 '북한이 6.25 전쟁을 일으킨 책임'에 대해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 대목은, 그 전쟁으로 숱한 고통과 절망을 겪은 유가족의 비원(悲願)을 담은 말로서 결코 가벼이 할 수 없는 역사적인 명령일지 모른다. 청와대로서도 현충일의 의미를 새기고 여전히 전쟁의 긴 그림자를 채 다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는 뜻으로 이런 자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분단의 과거는 '동족살육의 전쟁'이었고, 분단의 미래는 '평화공존과 통일'일 것이다. 그 과거와 미래 사이의 온도 차이와 내적 갈등이, 김성택씨의 저 '건너뛴 발언'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2019년 현충일은 '분단의 아들'과 '평화의 미래'가 함께 묵념하는 풍경 속에 있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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