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래의 소원수리] '린치핀'과 전작권

2019-06-04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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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꼭 필요한 사람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하는 책이 있다. 미국 출신 작가 세스 고딘의 '린치핀'이다.

책의 요점은 이렇다. 이제 세상은 더 인간적이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더 성숙한 '린치핀(linchpin: 대체불가, 모방불가의 존재)'을 기대한다. 열정과 활력이 넘치며 우선순위를 조율할 줄 알고 불안에 떨지 않고 유용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린치핀'을 원한다.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린치핀'을 필요로 한다.

한국을 첫 방문한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장관 대행이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만나 한미동맹을 '린치핀'으로 표현했다. 미국은 오랫동안 일본을 '린치핀'에, 한국을 '코너스톤(Cornerstone: 주춧돌)'에 비유했다. 그러나 미국은 최근 들어 한국을 린치핀, 일본은 코너스톤으로 바꿔서 비유하고 있다.

변화의 시작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한·미 동맹은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태평양 전체 안보의 린치핀"이라고 말했다. 그해 10월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은 한술 더 떠 "한·미 동맹은 린치핀 그 이상"이라고 했다.

이유는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급변에 있다. 세스 고딘의 '린치핀' 1장 제목처럼 게임의 룰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17년 보고서에서 북한이 영변 원자로의 폐연료봉 재처리를 통해 생산한 플루토늄을 사용해 10~20개의 핵탄두를 제조한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현재 15~60개 핵탄두를 보유했으며, 2020년에는 최소 30개에서 최대 100개까지 늘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은 현재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5형과 14형을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도 러시아 '이스칸데르'급 단거리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도 갖추고 있다. 특히 이동식발사차량(TEL)을 통해 불특정 장소에서 이들 미사일을 불시에 시험 발사 하고 있다.

섀너핸 대행은 지난 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미국 동맹국 및 미국 영토, 전진 배치된 부대에 위협할 수준이 됐다"고 인정했다.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달성을 위해서는 외교적 수단이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동맹국의 지지, 특히 한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섀너핸 대행의 '린치핀' 발언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한국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대체불가의 존재',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를 이끌 '당사자'임을 스스로 증명하라는 것이다. 

세스 고딘은 '린치핀'을 통해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예술가란 화가나 시인이 아니다. 자신의 가치에 걸맞은 것을 얻고 싶어 기꺼이 '감정노동'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다.

섀너핸 대행의 '린치핀'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의 FFVD를 위해 '감정노동'의 수고스러움을 기꺼이 하라는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 이전에 '9.19남북군사합의' 이행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대체불가'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 '감정노동'의 수고스러움을 인정 받지 못하는 정경두 장관으로 인식돼 스스로의 가치에 걸맞은 것을 못 얻는 것, 다시 말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라는 뜻의 '린치핀'이 되지 않길 바란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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