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독서]바보가 돈을 지니면 그냥 '돈 많은 바보'일뿐?

2019-05-20 10:27
  • 글자크기 설정
[빈섬 이상국의 '낱말인문학'] 
 
주디스 오를로프(UCLA교수)는 '돈의 마음'이란 묘한 표현을 쓴다. 돈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 돈은 인간을, '지닌 만큼' 가치있게 하는가. 이 질문은 정밀하지 못할지 모른다. 돈은 인간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가. 돈은 인간을 얼마나 가치있게 하는가. 이렇게 질문하는 의미는, 돈이 지닌 일반의 관념과 환상이 시작되는 일정한 비례관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분은 정신의학 임상교수다. 스스로 어린 시절부터 돈이 부족한 환경을 겪지 않고 자라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결핍을 겪지 못했기에 그의 말은 신뢰할 수 없는 지식일 뿐일까. 그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그의 경험을 참고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양한 환자들을 통해 얻어낸 통찰을 빌리는 일이다. '돈의 마음'은 무엇인가.

돈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다. 이것을 부정하거나 경시하면 위선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돈이 행복이라는 신념에 대해 완강하다. 그는 임상연구를 통해, 돈이 행복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행복을 보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작은 기쁨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돈은 기본적인 삶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안정감을 가져오는 힘이 있다. 돈은 시간과 기회를 준다. 여가와 휴식을 즐길 수 있으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확장하는데 도움을 준다. 기부는 자아감을 높여주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돈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는 '실감나는 효용'이다. 하지만 돈은 거의 언제나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환상과 욕망으로 자아를 고통스럽게 한다.

돈이 결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미신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돈이 당신을 더 중요하고 자격있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다. 실제로 돈을 많이 가지면 그런 기분이 들 수도 있다. 돈이 많은 이가 중요해지는 것은, 사람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이며 그 이상을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돈은 사람을 무례하게 하고 남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만든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워렌 버핏은 이런 말을 했다. "돈은 사람의 특성을 증폭시킬 뿐이다. 돈이 없을 때 바보였다면 돈이 생겨도 그냥 돈 많은 큰 바보일 뿐이다."

둘째는 친구나 사랑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가 만난 환자들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부유한 짝을 만나고 싶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돈의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환상에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바로 그 욕망이 결혼 생활 내내 크고작은 문제를 야기한다는 사실을 그는 찾아냈다. 돈의 마음은 지속적으로 사랑을 방해하며 관계의 안정감을 흔든다는 것이다. 또 모든 관계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금전적으로 신세를 지고 있으면, 돈은 정직함이나 조건없는 사랑에 방해가 된다. 돈을 잃으면 관계가 파탄 나기 훨씬 쉽다.

셋째, 돈이 정신적인 구원을 해줄 수 있다는 미신이다. 돈은 자존감을 만들어내지 않으며, 외로움과 상실감, 혹은 영적인 결핍감을 대체할 수 없다. 그것을 대신하려 돈을 함부로 쓰는 몸부림이 있을 뿐이다. 돈은 외형적 풍요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 풍요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균형감과 섬세함까지 갖추게 하지는 못한다. 그런 것들은 결핍에 의해 길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돈은 열등감을 해소하지도, 사람을 착하게 바꿔놓지도,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지도 못한다. 천국에서 신혼휴가를 보내는 커플이 계속 싸우기만 하는 까닭은, 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가진 돈과 시간과 동행을 누릴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너무 상식적인 얘기라, 코웃음을 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상식적이지만 대부분 믿지 않는 훈계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돈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 지금의 돈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것, 돈이 나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고 나의 가치가 돈보다 더 크다는 그의 생각을 경청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무심코 집어든 책이 마음을 새롭게 한다. 

▶ 내려놓기의 즐거움(주디스 오를로프, 처음북스, 2014)

                               이상국 논설실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