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체로키는 프리미엄 SUV라는 개념을 새롭게 정립했다. 전 세계 누적 판매량 600만대 이상을 기록 중인 지프의 주력 모델이기도 하다. 리미티드-X 3.6은 2019년형 그랜드 체로키를 기본으로, 강인한 디자인을 더한 한정판 상품이다.
전면은 지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7개의 직사각형으로 이뤄진 그릴이 강인함을 뿜어냈다. 1대3 정도의 앞 유리 크기와 전면 차체의 비율은 바라보는 이를 위축시킬 정도였다. 측면은 부드러운 곡선과 날카로운 직선을 적절하게 배합해 큰 덩치임에도 날렵함을 느낄 수 있었다.
후면은 전면과 측면에 비해 도회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다양함을 강조한 장점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평이해 보였다. 전체적 균형감을 잃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실내 디자인은 단순함과 간결함으로 힘을 표현했다. 외관과 통일감을 맞추기 위해서다. 시트와 운전대 커버 등 내장은 검은색의 가죽 느낌 소재를 적용해 더 큰 중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일부를 티타늄 재질로 마무리해 시원함도 엿볼 수 있었다. 수동식 잠금장치는 지프만의 색깔을 이어가려는 흔적 중 하나다.
도로로 나오자 높은 운전석으로 인해 지프의 장점이 확실히 느껴졌다. 내려다보는 듯한 시야각은 운전자에게 자신감을 줬고, 주변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채택한 줄 알았던 큰 사이드 미러는 더 많은 차선을 보여줘 기능성도 충분했다.
강인함이란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은 외관만이 아니었다. 내실도 훌륭했다. 8단 자동변속기를 지원하는 V6 가솔린 엔진이 장착됐고 최고 출력 286ps/6350rpm, 최대 토크 35.4kg∙m/4000 rpm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에서 충북 청주국제공항을 오가는 왕복 300㎞의 시승코스에서는 흔들림 없는 안정감을 제공했다. 도심에서도 고급 SUV 못지않은 편안함을 줬다. 방지턱에서도 큰 흔들림 없이 오프로드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지프의 특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시속 100~110㎞의 빠른 속도로 달렸던 고속도로에서도 승용차처럼 도로와 밀착한 듯했다. 추월선을 달릴 때 대형 버스들이 옆으로 지나갔지만 이로 인한 미동 역시 느낄 수 없었다. 준중형 SUV 등을 운전할 때면 옆으로 대형차가 지나칠 때마다 차체가 흔들려 사고의 위협이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안정감이 들었다.
외부 소음에도 간섭받지 않았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소음측정기'로 측정한 결과, 도심(60㎞/h 기준)에서 60~65dB 정도였으며 고속도로(110㎞/h)에서도 비슷한 수준을 나타냈다. 이는 일반적인 대화를 나눌 때 나오는 정도의 소리다.
고급 세단 정도는 아니었지만 승차감도 합격점이었다. 특히 오프로드 차는 '2열에 타는 게 아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무색하게 2열도 여느 승용차 못지않았다. 2열도 좌석을 최대 60°까지 기울일 수 있어 장거리 운행이었지만 피로도가 적었다.
단점을 꼽자면 덩치가 있는 만큼 연비가 낮다는 것이다. 전체 시승코스에서 70%가량을 고속도로에서 달렸지만 연비는 6.7㎞/ℓ 정도였다. 공식 표준연비인 7.9㎞/ℓ보다 적었다. 또한 '키'가 크다 보니 80㎞/h 이상에서 운전대를 틀 때 미세한 차체 흔들림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미티드-X 3.6은 현대판 적토마로 평가할 만했다. 후한서 유언원술여포열전(劉焉袁術呂布列傳)에 기록된 '여포는 언제나 적토라고 하는 좋은 말을 탔는데 능히 성을 질주하고 웅덩이를 뛰어 넘었다'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주요 장점인 오프로드 기능 자체가 국내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는 점이다. 국내 개통도로(2017년 기준) 10만1869㎞ 가운데 무려 92.8%가 포장도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마니아들에게 리미티드-X 3.6을 적극 추천한다. 적토마가 여포와 관우라는 당대의 장수를 만나 전장에서 이름을 높일 수 있었던 것처럼, 리미티드-X 3.6도 그들과 만나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가격은 6290만원(부가세 포함)이다. 다만 적토마를 갖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 리미티드-X 3.6은 국내에 20대만 수입됐고, 이미 17대가 팔려 나간 상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