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오 칼럼]누구를 위한 로또아파트 인가?

2019-05-01 13:21
  • 글자크기 설정

[윤재오 부국장]


“요즘 부동산시장을 보면 문재인 정부의 주택정책 목표가 무엇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무주택자를 위한 청약제도 개편이라더니 현금부자들의 로또아파트 잔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매매시장에서는 대출규제 때문에 집을 사고 팔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정부규제로 건설경기만 더 나빠졌어요.”

며칠 전 만난 건설업계 후배의 하소연이다. 9·13대책과 후속조치가 나왔을 때만 해도 정부의 집값 안정 의지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특히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방침은 국민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 규제조치에 대한 정당성을 충분히 뒷받침했다. 그러나 8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보면 규제의 목적과 취지가 무색할 만큼 곳곳에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부작용은 로또아파트와 무순위 청약에서 나타난 ‘현금부자들만의 리그’다.

서울 강남과 수도권 인기지역인 북위례, 과천 등에서 3.3㎡당 수백만원씩 싼 로또아파트 분양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평일에도 모델하우스에 청약인파가 몰려 길게 줄을 섰는데, 최근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주말에만 북적거릴 뿐 평일은 의외로 한산하다. 이런 모습을 보고 ‘강남 로또아파트’ 청약열기가 식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서민들의 청약 열기만 꺾였다. 과거엔 서민들이 비싼 로또아파트 당첨을 꿈꾸며 모델하우스에 길게 줄섰지만, 지금은 대출규제 때문에 로또아파트는 꿈도 꿀수 없는 ‘그림의 떡’이 되어버렸다. 줄을 설 수가 없게 된 셈이다. 특히 강남의 분양가 9억원 이상 아파트는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가 없어서 서민들은 당첨되더라도 계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렇게 발생된 미계약분은 무순위 청약을 받아 당첨자에게 공급한다. 그런데 최근 실시된 인기지역 사전 무순위 청약에 다주택자와 1주택자가 대거 몰렸다.
원래 무순위 청약은 청약과정을 투명하게 만들려고 도입됐다. 과거엔 미계약분이 발생하면 건설사들이 선착순이나 인터넷 추첨으로 분양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과열양상과 투명성 논란이 벌어지자 대책으로 나온 게 무순위 청약이다.

무순위 청약은 금융결제원 사이트를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확실히 투명해졌다.
그러나 이 제도가 대출규제와 맞물리면서 서민 중산층이 포기한 미계약분을 다주택 현금부자들이 대놓고 투명(?)하게 ‘줍줍’할 수 있게 허용하는 제도가 돼버렸다. 건설사들이 마음대로 미계약분을 처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한 무순위 청약 제도가 도입 취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제도가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아파트 청약통장은 무주택자들의 꿈을 담고 있다. 허름한 빌라 반지하에서 전세나 월세를 살면서도 청약통장을 보면 ‘언젠가 버젓한 우리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다’는 꿈을 키울 수 있었다. 분양가 규제로 당첨자에게 과도한 이익이 돌아가는 로또아파트가 나와도 청약시장이 ‘계층 사다리’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감안해 용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민들의 손발을 묶어놓고 현금부자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다면 '로또아파트'를 만드는 분양가 규제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

매매시장도 마찬가지다. 서울아파트값이 24주 연속 하락했지만 실제 하락폭은 그리 크지 않다, 그동안 하락폭을 모두 합쳐도 2%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년 넘게 집을 맘대로 살 수도 팔 수도 없을 만큼 규제로 묶어 국민들을 불편하게 한 대가 치고는 너무 미약한 수준이다. 이 정도라면 서울집값이 몇주만 반등해도 하락폭은 모두 사라져버릴 정도다. 그렇다 보니 집값 안정이라는 숫자놀음에 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주택공시가격을 현실화해 보유세를 강화하고 청약시장을 개편하는 등 부동산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지금의 주택시장 안정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거래에 숨통을 틔우고 시장이 제 기능을 하는 가운데 집값이 하락해야 주택시장이 안정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9·13대책이 발표된 이후 8개월이나 지났다. 이제 국민들이 규제에 대해 피로를 느낀다. 대출규제를 풀어주고 거래세를 낮춰야 한다. 최소한 무주택자나 1주택자(입주 또는 구입 후 기존주택 처분)에 대해서는 규제를 확실히 풀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대출규제를 풀어줘서 주택시장이 다시 불안정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후배 기자는 이 물음에 이렇게 반문했다. “대책요? 그건 정부가 찾아야지요. 보완대책을 미리 마련해야죠. 국민들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주거안정 대책을 마련하는 게 정부의 역할 아닌가요?”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