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레이와시대]경제 운명 가를 '세 개의 화살'

2019-04-3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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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레이와 경제 겨눈 3개의 화살...소비세 인상·아베 레임덕·완화정책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는 △재정지출 확대 △양적완화 △성장전략 등 이른바 '세 개의 화살'이 떠받치고 있다. 5월 1일 열리는 '레이와(令和)' 시대를 앞두고 아베노믹스와 일본 경제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당분간 기존 아베노믹스의 방향은 유지될 전망이지만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일본 경제사에서 '잃어버린 30년'으로 통하는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넘어 레이와 시대에 남겨진 일본 경제의 당면 과제 세 가지를 정리했다. 

◆불과 6개월 남기고 갈팡질팡...10월 소비세 인상

레이와 시대의 가장 큰 경제 화두는 오는 10월 예정돼 있는 소비세 인상이다. 2014년 기존 5%에서 8%로 인상한 뒤 5년 만에 이뤄지는 아베 총리의 숙원이다. 당초 아베 내각은 2015년 10월에 소비세율 추가 인상을 단행하기로 했다가 2017년 4월로 미뤘고 올해 10월로 한 번 더 연기했다.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세금을 올리면 내수 소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강력한 부양책으로 회복세를 띠던 일본 경제는 2014년 소비세 증세 이후 침체로 돌아섰다. 아베 내각이 포인트 환원제도, 프리미엄 상품권 등 증세에 따른 보상책을 마련한 이유다. 이번 만큼은 소비세 인상 계획에서 후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경기침체의 전철을 밟지 않는겠다는 강한 의지를 강조한 셈이다.

그러나 증세를 불과 6개월 남기고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최측근의 발언이 불을 댕겼다. 지난 18일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대행이 증세 연기 가능성을 거론한 것이다. 논란이 일자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과 아소 다로 경제 부총리 등이 증세에 문제가 없다며 곧장 진화에 나섰지만 비관론은 여전하다.

일본 유명 출판사인 고단샤 계열 경제지 현대비즈니스에 따르면 통상 증세 몇 달 전에는 소비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상대적인 절세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직 소비 확대 신호가 잡히지 않고 있다. 일본백화점협회에 따르면 3월 전국 백화점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0.1% 증가했다. 의류와 가정용품 매출이 각각 1.4%, 6.6% 감소했지만 보석과 명품시계 등 '미술·보석·귀금속' 부문의 매출이 6.7% 늘어나서다. 

문제는 그나마 이 부문도 내수보다는 관광객 등 외국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3월 한 달 동안 백화점에서 면세 수속을 통한 매출은 332억8000만 엔(약 347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14.9% 증가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증세를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다. 2017년부터 소비세 인상을 공언해온 만큼 6개월여 앞두고 증세를 연기하거나 철회하면 10월 증세를 목표로 대책을 마련하거나 기대해온 민간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국제행사도 문제다. 통상 국제행사 특수가 끝나면 경기침체가 남는다. 증세 시기를 2020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이후로 미루면 경기 침체가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 2021년까지 임기를 확정한 아베 총리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사진=AP·연합뉴스]



◆아베 레임덕 피할 수 있을까...7월 참의원 선거 

집권 자민당이 소비세 인상 여론에 예민해하는 건 7월 21일 예정돼 있는 참의원 선거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경제 선순환' 효과를 노릴 수 있어서다. 증세 이전에 소비가 확대된다는 전제 하에 경기가 서서히 풀리고 주가가 상승하면 이번 선거에서 여당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으로는 아베 내각이 5년 만에 야심차게 내놓은 소비세 인상 카드가 '순풍' 아닌 '역풍'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아베 총리 개인으로서도 참의원 선거는 정치 생명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레이와 시대로 5월의 문을 연 뒤 6월 오사카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탄탄대로가 펼쳐질 수 있다. 평화헌법 규정인 헌법 9조를 수정해, '전쟁국가'로 가는 개헌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기 좋다. 그러나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자민당은 지난 21일 치러진 오사카와 오키나와의 보궐선거에서 자민당이 전패하면서다.

2012년 말 아베 내각이 출범한 뒤 이번 선거 전까지 보궐선거는 모두 7차례 있었다. 자민당은 후보를 내지 않은 한 차례를 제외하고 모두 승리했다. 아베 총리가 '선거 우등생'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사실상 첫 보궐선거 패배로 자민당 총재이기도 한 아베 총리는 내상을 입었다. 보궐선거는 지역 민심일 뿐이라는 자위가 무의미하다는 평가다. 

연초에 불거진 통계 부정 논란은 잦아 들었지만 증세 관련 혼란을 초래한 데다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출을 두고 세계무역기구(WTO) 무역분쟁에서 하국에 역전패를 당한 것이 직격탄을 날린 것으로 보인다. 여기다 무역·외교 정책도 마이너스 행보를 보이면서 '레임덕' 우려까지 나온다.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쳤다는 것이다. 

미국 시사전문지 애틀란틱은 최근 "아베 총리는 2016년 미국 대선 직후 세계 지도자 가운데 가장 먼저 미국으로 날아가 '미일 동맹' 메시지를 강조했다"며 "북·미 정상회담이 두 차례나 개최되는 등 정세가 변화한 가운데 일본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6자 회담(북한+한국·중국·일본·러시아·미국) 당사자 중에 유일하게 북한과 대면하지 못한 국가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미·일 무역협정을 위한 협상도 참의원 선거의 평가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말께 타결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7월 선거 일정을 고려할 때 미국과의 협상에서 속도조절에 실패한다면 참의원 선거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EPA·연합뉴스]


◆닿을 수 없는 2%의 벽...방향 잃은 완화정책

아베 정권은 헤이세이 시대의 장기불황인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했다고 주장하면서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냉혹하다. 경제성장세와 임금상승세가 정체하면서 아베 총리는 '디플레이션 탈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수년째 기준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에 머무르면서 20%에 달했던 일본의 가계 저축률은 최근 몇 년간 3~4% 수준으로 곤두박칠쳤다. 일본중앙은행(BOJ)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일단 지난 24~25일 열린 헤이세이 시대 마지막 통화정책회의에서 BOJ는 레이와 시대에도 현행 대규모 완화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를 현행 -0.1%로 동결하고 10년 만기 국채금리 목표치는 0% 수준에서, 단기 금리는 마이너스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했다. 

물가가 일본은행의 발목을 잡았다. 당초 일본은행은 2013년 2년 안에 물가상승률 목표치(2%)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목표 달성에 어려움이 있다며 목표 달성 시한을 수 차례 미뤘다. 지난해 4월에는 '2019년쯤'으로 돼 있던 시한을 아예 없앴다. 올해로 6년째를 맞은 통화부양 공세가 사실상 무위에 그친 셈이다.

최근 발표된 경제·물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신선 식품을 제외한 일본의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전망치는 올해와 내년 각각 1.1%, 1.4% 수준으로 나타났다. 2021년도에도 1.6%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포워드 가이던스(향후 경제 정책 방침)에도 물가상승 압력이 최소 2020년 봄까지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리먼 쇼크 수준의 경기후퇴나 급격한 엔화 강세(엔고) 등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일본은행이 추가적인 돈풀기에 나서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은행들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 데다 고위험 대출 증가 등의 부작용 우려가 있어서다. 레이와 시대를 맞은 아베노믹스가 연착륙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일본 경제학자인 다케나카 헤이조는 일본 영자신문인 재팬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헤이세이가 급진적인 변화의 시대였던 만큼 레이와 시대의 경제가 심각한 충격을 받을 수 있다"며 "디지털 라이프 개선·도시 개발 등 지난 30년간 이뤄낸 진전을 간과하지 말되, 제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세계주의와 자유무역 개념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헤이세이 시대보다 더 광범위한 경제 개혁을 취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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