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태국의 유력지 방콕포스트는 'EU 자유무역협정으로 베트남이 태국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태국 정부가 빨리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베트남에 산업경쟁력이 뒤처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신문은 베트남이 삼성전자와 같은 거대 제조기업들을 유치해 각 산업분야가 유기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반면 태국은 첨단기술 산업 유치 실적이 미미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태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관련분야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태국 유력지인 네이션스(The Nations)도 베트남이 낮은 임금과 양질의 인력을 자랑하고 있다며, 태국은 인재육성과 기술혁신을 통해 상품가치를 더하고 경쟁력을 유지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태국, 인도차이나 ‘중심국’··· 경제지표 수치, 인프라 등 베트남의 2배
경쟁국과 상이한 고용비율··· 제조업 16%로 낮고, 관광업 14%로 높아
태국은 오랜 기간 인도차이나 반도 한가운데서 역내 정치·경제의 중심적인 위치를 점해왔다. 20세기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에도 인도차이나 국가에서 유일하게 식민 지배를 피했으며, 잘 보존된 유산은 태국인의 자부심으로 왕정제가 존속하는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다.
김승주 세계한인무역협회(OKTA) 태국지회 부회장은 “지난 20세기 인도차이나의 주인은 태국이었다”며 “일부에서 그런(베트남이 태국을 넘어설 것) 의견이 있지만 태국이 쉽게 인도차이나의 주도권을 빼앗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태국은 경제 관련 대부분의 주요 지표에서 수치로 베트남을 압도한다. 국내총생산(GDP), 국민총생산(GNP), 1인당 GDP, 무역교역량 등을 살펴보아도 적어도 두 배 이상의 우세를 점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7년 기준 GDP는 태국이 4552억2092만 달러(약 518조9518억원), 베트남은 2238억6399만 달러를 기록했다. 국민의 실생활 수준을 반영하는 1인당 GDP 대비 구매력평가지수(PPP)는 태국이 1만7892달러, 베트남은 6775달러로 거의 3배가량 차이가 난다.
김 부회장은 “태국과 베트남을 모두 방문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지할 것”이라며 “기본적인 수치 외에도 풍경으로만 바라보는 도시 인프라(기반시설) 등에서 태국과 베트남은 아직 비교하기가 힘든 수준”이라고 말했다.
OKTA에 따르면 태국의 산업구조 비율은 2017년 기준 56%가 3차산업, 36%가 2차산업, 8%는 1차산업이다. 이 중 산업종사자의 노동인구는 1차산업 31.8%, 2차산업 16.7%, 3차산업 51.5%로 서비스업과 농어업의 비중이 높았다. 특히 관광분야는 전체 고용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의 경우 재계를 이끄는 최대기업 PTT그룹을 중심으로 SCG라는 세계적인 시멘트 생산업체가 있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석유화학을 대대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이 분야의 생산 활동이 활발하다.
하지만 이 같은 산업의 쏠림구조는 태국 경제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기도 한다. PTT그룹은 태국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지만 에너지 기업의 특성상 석유화학분야에만 역량이 집중돼 있다. 여기에 CP그룹, 센트럴그룹 등 주요 화교계 기업들이 제조업 진출을 기피하면서 주력 계열사가 부동산, 금융, 유통 등 주로 내수시장에 의존한다. 사실상 외자기업을 제외하고는 제조 분야가 전무한 상황이다.
GDP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것도 단점 중 하나다. 관광업은 경기변동에 취약해 경제기초체력 측면에서는 상당한 불안요인이다. 실제 2012년 세계 경기가 냉각되면서 태국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태국은 '중진국 함정'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나라다. 1980년대만 해도 인도차이나 반도를 포함한 다른 아세안 국가에서도 태국에 필적할 만한 국가는 없었다. 그러나 최근 태국이 마이너스와 저성장을 반복하면서 이젠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에 추격당하고 있는 모습이다. GDP 격차가 1000억 달러 내외로 좁혀졌다.
현지 산업계의 한 전문가는 “이는 태국의 정치상황과도 맞물려 있다”며 “고속성장을 거듭하려면 기본적으로 정치가 안정화돼야 하지만 푸미폰 국왕 재임시절 쿠데타가 19차례 일어났을 정도로 정정이 불안했다. 정치권력과 대기업들의 유착관계가 심한 것도 문제”라고 설명했다.
국민들의 낙천적인 성향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 전문가는 “불교를 기본 생활철학으로 삼아 논쟁이나 싸움을 피하고 시간을 다투지 않는 점,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지만 또 주요 사안은 집단적으로 처리하기를 원하는 점, 과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의식이 아직 살아있는 문화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CPTPP 등 다자간 FTA 등으로 무역활성화 추진
日 FDI, 베트남으로 선회 ‘주목’··· 정부정책 일관성도 한몫
베트남은 지속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역내 주요국으로 급부상 중이지만 아직까지 태국은 물론 필리핀보다도 경제 규모가 작다.
다만 베트남은 외국인직접투자(FDI)에 힘입어 경쟁국들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지난 수년간 주변 아세안 국가들보다 월등히 많은 FDI를 유치했다. 심지어 태국도 베트남에 생산기지 건설을 추진하며 베트남을 향한 FDI에 힘을 실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일본의 FDI다. 그간 베트남의 FDI 분야에서 한국이 수년간 1위를 차지했지만 지난해부터 다시 일본이 1위로 올라섰다. 한국의 투자액이 대폭 줄었다기보다는 일본의 투자액이 늘어나고 있는 탓이다.
일본 영자지 재팬타임스가 지난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은 아세안 국가 중 베트남을 가장 선호하는 투자처로 꼽았다. 응답기업 938개 중 83.8%가 베트남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아세안 최대 투자국인 일본의 FDI가 늘고 있다는 건 베트남 경제에 큰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태국도 경제를 키우는 데 일본의 투자가 큰 힘이 됐다. 태국의 제조업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일본이다. 태국은 일본 자동차업계의 투자 덕분에 10대 자동차 생산국으로 부상했다. 일본의 FDI가 태국에서 베트남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면 파급력이 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곳곳에서 내는 미래 보고서도 성장 잠재력이 큰 나라로 베트남을 지목하고 있다. 국제 회계컨설팅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지난해 낸 '세계경제 2050'에 따르면 베트남은 빠르면 2035년쯤 GDP가 태국을 추월할 전망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현재 기준으로 양국의 경제력을 비교하면 태국의 완승이지만 미래 가능성에서는 베트남에 무게를 두고 있다.
현지의 한 전문가는 “탄탄한 재정, 일관적인 정책, 수직적인 의사결정구조, 정치수도와 경제수도의 분리 등이 태국과 차별화된 베트남의 경쟁력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생산공장이 한번 자리를 잡으면 철수는 없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수치 외에 종합적인 역량도 베트남의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언뜻 보기에 양국이 비슷한 문화와 경제적 유사성을 지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불교(태국)와 유교(베트남)를 바탕으로 하는 국민성, 내륙(태국)과 해안(베트남) 중심의 입지 등이 양국의 차별성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사업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베트남이 내실 있는 국가라는 것을 알게 된다"며 "베트남이 작년과 같은 성장세만 유지한다면 수년 안에 일부 경제지표에서 태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석운 베트남경제연구소 소장은 "현재 베트남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남부 경공업, 북부 첨단산업 중심전략이 지금까지는 잘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며 "이를 위해 베트남은 '사회경제개발계획 2016~2020'에 언급된 정책의 일관성과 관련 인프라의 지속적인 개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