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중국, 제2의 일본이 되나?

2019-03-28 08:50
  • 글자크기 설정

- 미·중 무역 전쟁이 환율 전쟁으로 치달으면 가능성 배제할 수 없어 -

김상철 전 KOTRA 베이징·상하이 관장

미·중 무역전쟁 협상의 타결 시한이 계속 늦춰지고 있다. 3월 말에서 4월 말, 다시 6월 말로 늦춰지는 판세다. 이는 뭔가 잘 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애당초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는 전망도 그리 밝지 않았다. 다만 양측 지도자들이 정치적으로 크게 흠집이 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무리될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마저 나온다. 왜 타결이 잘 되지 않을까? 표면적인 것과 달리 수면 이하로 내려갈수록 양국의 입장 차이가 현저하게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가급적 이 상황을 빨리 모면하고 싶어 한다. 미국에게 일정 부분 양보를 하더라도 서둘러 봉합하기를 희망한다. 발톱을 감추면서 ‘지구전(持久戰)’으로 들어가면 결국 시간은 중국에게 유리하다는 속셈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이번에는 중국에 속지 않는다면서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매번 말과 행동이 다른 중국에 대해 이번에는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벼른다. 협상 결과물에 대한 검증(檢證) 없이는 마무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로의 의중을 꿰뚫으면서 양측이 첨예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눈 여겨 볼 대목이 있다. 양측 협상 대표의 면면을 보면 이 회담이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를 대충 가늠케 한다. 실제로 양국 대표단이 워싱턴과 베이징을 오가면서 샅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고위급 회담에 참석하는 양측 인사가 눈길을 끈다. 중국 측은 류허(劉鶴) 부총리가 나서지만 미국 측은 로버트 하이저 USTR 대표와 스티브 므누신 재무부 장관 등 쌍두마차가 협상단을 이끈다. 미국의 저의가 엿보인다. 중국과의 무역 협상이 미국이 원하는 방향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최후의 보루로 환율 카드를 쓸 수 있다는 시그널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에 대해 시장 개방 확대와 동시에 위안화 환율을 정조준하고 있는 것이다. 환율 문제를 협상 타결 문안에 포함시킴으로써 만약 중국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더 큰 제재로 옮겨갈 수 있다는 협박이기도 하다. 이는 중국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시나리오이고, 반대로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이 중국을 손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더 늦추면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는 고사하고 글로벌 질서 유지의 구심점이 더 혼미해진다.

최대의 관심사는 미국이 중국을 제2의 일본으로 몰고 가느냐 하는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시발점은 1985년 일본과 미국·독일·프랑스·영국 재무장관 간에 체결된 플라자 합의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일본의 엔화가 2배 정도 평가가 절상됨으로써 무역수지 흑자가 급감하면서 엔고(円高) 장기 불황의 늪에 빠졌다.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잔뜩 끼인 거품에다가 산업 전반에 걸친 공급 과잉, 그리고 본격적인 고령화와 겹쳐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일본 경제가 일거에 추락하는 혹독한 시련의 출발점이 되었다. 요즘 중국 경제의 현상을 두고 1980년대의 일본과 흡사하다는 평가가 많다. 일본에서는 수년 전부터 이런 논쟁으로 뜨겁다. 실제로 중국 경제의 3대 불안 요소로 그림자금융·부동산버블·기업부채 등을 꼽는다. 벌써 고령화 시대에 진입하여 중국 경제가 성숙하기도 전에 늙어간다는 조롱마저 나온다. 중국 경제가 구조적이면서 장기적인 침체의 징조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논리에 설득력을 더해 준다.

환율 전쟁이라는 ‘불똥’에 대비, 우리도 주도면밀한 시나리오 플래닝 준비 필요

중국 정부도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미·중간의 무역협상이 자칫 ‘신(新)플라자합의’로 귀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중국의 정·관계 혹은 학계에서 일본의 경험으로부터 조언을 듣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도 포착된다. 당장은 환율 전쟁으로 치닫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에 양보할 수 있는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들을 모으고 있다. 상품과 지적재산권 부문에서 미국의 비위를 맞추어 주되 최악의 시나리오는 모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측은 최종 담판을 앞두고 ‘굿딜이 아니면 노딜’이라는 엄포로 중국 측을 최대한 압박하고 있다. 중국 쪽에 최대의 아킬레스건이 될 환율을 미끼로 통 큰 양보를 하라고 종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은 어떠한 경우에도 제2의 일본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환율에 백기를 들면 일본과 마찬가지로 20년, 30년 이상의 시련에 봉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경제가 재건(再建)의 기미를 보이지만 중국은 이마저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들린다.

중국과 무역을 두고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입장도 편치 않다. ‘트럼프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미국의 무역적자가 10년 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도 2017년 3759억 달러에서 작년에는 4192억으로 더 늘어났다. 미국 경제의 호황이 중국산을 비롯한 수입 상품 소비를 더 부추겼다. 중국산에 대한 관세 폭탄을 앞두고 일부 소비자들의 사재기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관세 정책만으로는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무역수지 적자를 단기간에 만회하고, ‘아메리카 퍼스트’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환율 카드를 조기에 꺼내들고 싶은 유혹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그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방법과 시기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뮬러 특검에서 자유로워진 트럼프 대통령이 성공적 재선 진입을 위해서는 미·중 무역전쟁의 결과가 매우 중요하다. 또 다시 빈손을 움켜질 수는 없지 않겠는가. 미·중 무역 전쟁이 환율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직시, 우리에게도 시나리오 플래닝이 필요하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