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오염퇴치·지속발전 좇아 '수소의 길' 접어든 중국

2019-03-2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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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에너지 산업 육성, 정부 업무보고 첫 명기

경제 체질개선 일환, 세계 최대시장 부상할 듯

지방정부도 속속 참여, 과당 경쟁 부작용 우려

[그래픽=이재호 기자]

올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개막한 지난 5일 베이징은 미세먼지 자욱한 스모그로 뒤덮였다.

이틀 전인 3일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개막일도 마찬가지였다. 두 날 모두 공기 질 지수(AQI)는 '상당한 오염' 수준이었다.

양회(전인대·정협) 개막에 맞춰 베이징 인근 공장들의 가동을 중단시켜 인위적으로 공기 질을 개선하는 이른바 '양회 블루'는 없었다.

경기 침체 국면에 대응하기 위해 오염물질 감축 규제를 완화한 게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더이상 눈 가리고 아웅 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인대 개막식에 참석한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푸른 하늘 지키기 전쟁(藍天保衛戰)'을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초미세먼지 등의 감축 목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대기오염 완화를 위한 지루한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 드러난 대목이다.

전인대가 폐막한 지난 15일 중국 국무원은 리커창 총리가 발표한 정부 업무보고 내용 중 83군데를 수정한 최종본을 발표했다.

최종본에 새로 포함된 내용 중 '수소에너지 설비 및 충전소 건설 추진'이 눈에 띈다. 정부 업무보고에 수소에너지 관련 문구가 삽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소에너지는 원료가 무궁무진한 데다 오염물질 배출이 없어 '궁극의 연료'로 불린다. 오염 퇴치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중국이 범정부 차원의 수소에너지 산업 육성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수소를 포함한 신재생에너지 자원은 중국이 새로운 경제 구호로 내세운 '질적 발전'의 실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양적 발전'을 이룬 중국은 경제성장률 하락세가 시작되자 경제체질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굴뚝산업으로 불리는 전통적 제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정보기술(IT) 등 첨단산업을 키우는 게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원의 상당 부분을 화석연료 대신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작업도 이뤄진다.

중국의 공룡 국유기업인 국가에너지투자그룹의 링원(凌文) 총경리는 "에너지 체제 전환이 국제적 추세가 된 만큼 수소에너지 발전은 중국이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강조했다.

오염 퇴치와 지속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는 중국이 수소에너지의 길로 들어섰다.

◆수소에너지 성장 원년, 수소차가 핵심

수소에너지 산업 육성 방침이 처음 정부 업무보고에 포함됐지만 수년 전부터 각 부처별로 관련 계획이 수립돼 왔다.

이에 중국은 올해를 수소에너지 산업 발전의 원년으로 삼고 기존 계획들을 한데 묶어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을 만드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간융(干勇) 중국공정원 부원장은 "정부 업무보고가 수정된 것은 중국 정부가 수소에너지 활용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는 의미"라면서도 "미시적으로 보면 아직 구체적인 계획 수립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7월까지 중국 내 수소 충전소는 41곳에 불과하고 실제로 운영되는 곳은 14개"라며 "중국의 수소에너지 산업이 좋은 출발을 했지만 아직 높은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덧붙였다.

수소에너지가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는 영역은 자동차 산업이다. 이미 수소 연료전지를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수소전기차 상용화가 시작됐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리커창 총리는 훗카이도의 도요타 공장에서 본 수소차 미라이(MIRAI)에 큰 관심을 드러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소차로 3~4분 정도 충전하면 650㎞ 이상 주행할 수 있다.

중국은 전기차에 이어 수소차 분야에서도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중국에서 수소에너지 및 수소차 육성책이 처음 나온 것은 2014년이다.

2015년에는 수소차에 대한 보조금 지원 방안이 발표됐고, 산업 고도화 전략인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에도 '수소차 발전 지원'이 명기됐다.

지난해에는 수소차의 경우 승용차 20만 위안, 소형 버스 30만 위안, 중대형 버스 50만 위안 규모의 보조금 지급안이 확정됐다.

특히 가장 핵심적인 정책은 국무원이 수립한 '13·5 국가 과학기술 혁신 계획'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20년에 수소차 1만대와 충전소 100개를 보급하고 2030년까지 수소차 200만대, 충전소 1000개 달성이 목표로 제시됐다.

이럴 경우 관련 산업 규모는 2020년 3000억 위안(약 50조5000억원)에서 2030년 1조 위안(약 168조3000억원) 수준으로 커진다.

◆지방정부도 줄줄이 참여, 과열경쟁 우려

중국이 수소에너지 육성 전략을 정부 업무보고에 포함시킨 것에 발맞춰 광둥성 등 지방정부 10곳도 비슷한 정책을 발표했다.

상하이와 저장성, 장쑤성 등 이른바 '창장 삼각주' 지역은 올해 수소에너지 관련 기업 68개를 설립하고 역내에 563대의 수소차를 운용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현재 8개인 수소 충전소도 내년까지 50개로 늘릴 예정이다.

베이징과 허베이성, 랴오닝성 등은 수소 연료전지 산업 발전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방침이다.

이미 수소에너지 산업 지원책을 시행 중인 곳도 있다. 저장성 타이저우시는 2016년부터 수소에너지 타운 조성에 160억 위안을 투입했다.

후베이성 우한시는 지난해 '수소 산업 발전계획 방안'을 통해 2020년까지 수소차 3000대, 2025년까지 1만~3만대 운용 청사진을 발표했다.

상하이는 2025년까지 수소에너지 관련 산업 규모를 3000억 위안(약 50조5000억원)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전기차 시장이 형성될 때와 마찬가지로 보조금 지원에도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수소 연료전지를 탑재한 승용차의 경우 베이징·광저우·선전·항저우·우한 등은 보조금 한도 최대치인 20만 위안을 지원한다.

특히 베이징과 광저우, 선전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원금을 각각 받을 수 있어 최대 40만 위안까지 지급받게 된다. 중대형 버스나 화물차는 최대 100만 위안을 받는다. 원화로 1억6000만원이 넘는 액수다.

충전소 설립에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광둥성 포산시는 충전소 1곳당 최대 500만 위안(약 8억4000만원)을 지원한다.

이 때문에 지방정부 간의 과당 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업성을 면밀히 따지지 않고 과도한 투자에 나설 경우 지방정부 부채 증가, 정경유착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형 국가 행사를 개최하며 전시용으로 건설한 수소 충전소가 비싼 유지비 때문에 철거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충전소 착공 후 5년이 지나도록 완공되지 않은 사례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에 산재한 정책을 통합하고 인·허가 프로세스를 정비하는 등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게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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