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북·미회담이 결렬된 이유는 간단하다. 양측이 서로 적게 주고 많이 받으려 했기 때문이다. 북은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제재의 실질적 해제를 원했고, 미국은 제재 완화의 대가로 숨겨진 핵시설의 공개·해체까지 요구해 간극이 너무 컸던 탓이다. 따지고 보면 어떤 협상에서든 늘 있는 일이다. 좌든 우든 낙담할 것도 없고 안도할 것도 없다. 중요한 건 협상의 동력을 살려나가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북·미 대화의 공백이 오래가서는 안 된다”며 “우리가 중재안을 마련하기 전에 급선무는 북·미가 대화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미대화의 동력을 이어가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진단은 이미 차고 넘친다. 필요한 건 처방이다. 문 대통령은 NSC회의에서 북·미대화 지원책으로 “속도감 있는 남북경협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 취지와 선의는 이해하나 지금 상황에서 과연 최선책인지는 의문이다. 제재 문제로 회담이 깨진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남북경협이라니, 누군들 수긍하겠는가. 이건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조금 천천히 분위기를 다스려가면서 대응할 수는 없는 일인가. 자꾸 한국정부가 어깃장을 놓는 것처럼 비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북·미 간 중재와 경협을 위해서라는 청와대 안보실 개편도 꼭 지금 해야 하나.
제재 시비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유해송환뿐이다. 인도적 지원은 다 괜찮다고 할지 모르나 상대가 북한이라면 ‘인도적 지원’과 ‘비인도적 지원’ 간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언제든 군사적으로 전용(轉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엔 아직도 5천여구의 미 발굴 미군 유해가 남아있다. 하노이에서의 안 좋은 기억일랑 잠시 접고 북·미가 유해송환부터 재개한다면 분위기 반전에 도움도 되고, 한·미 간 불화 우려도 가실 터이다. ‘인도적 사업’이라고 주장하면서 금강산관광 재개 여부를 타진할 게 아니라, 트럼프에게 “미군 유해송환 회담부터 다시 해보시죠”라고 권할 수 있어야 한다. 왜 한 박자 쉬어가는 지혜도 여유도 없는가.
하노이에서 확인된 건 양측 간 입장 차이가 너무 크다는 거였다. 김정은은 달랑 ‘영변’ 하나를 들고 또 한번 트럼프의 충동구매를 기대했으나 이번엔 먹히지 않았다. 먹히기는커녕 트럼프는 은닉시설까지 꺼내들고 북을 압박했다. 제강소로 유명한 평양 인근의 강선, 우라늄 광산과 농축시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평북 박천과 황해도 평산까지 들이민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이 놀라는 것 같았다고 트럼프는 밝혔다.
이런 차이가 쉽게 좁혀지긴 어렵다. 지금은 큰 것보다는 작은 걸 통해서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생각해보라. 미국이 북의 은닉 핵시설까지 다 까버렸는데 이제 와서 없던 걸로 덮을 수 있겠는가. 사실상 ‘판을 깨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는데 언제까지 기대성 사고(wishful thinking)에 매달려 ‘중재’만 되뇔 셈인가.
북측의 형편도 고려해야 한다. 하노이회담을 통해 우리는 김정은이 들고 나온 안(案)이 북 내부에서 치열한 논의 끝에 나온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싱가포르 1차 회담 이후 8개월 동안 미측과 끊임없이 밀고 당기기를 한 것은 그만큼 내부적으로 의견 조정이 쉽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는 이용호 외무상이 하노이 심야 기자회견에서 자신들의 안이 “현재의 신뢰 수준에서 내놓을 수 있는 최대치”라고 밝힌 데서도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김정은이 선대(先代)와 같은 절대적 권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유추도 가능하다.
북은 이번에도 회담 결렬 이후의 대응책을 놓고 격렬한 내부 논쟁을 벌일 것이다. 그렇다면 북에도 시간을 줘야 한다.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7일 한 언론매체와의 대담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을 판문점에서 만나 남·북·미 3자회담을 추진하라”고 권고했지만 글쎄다. 북이 응할 여유나 있겠는가. 공산주의체제에선 국가적 큰일이 실패로 돌아가면 누군가를 반드시 희생양으로 삼는다. 김정은이 그 작업까지 마치려면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런 북에 대고 ‘중재론’을 외쳐봤자 당장 무슨 메아리가 있겠는가. 도움도 못 주면서 한·미 간에 큰 불화라도 있는 것처럼 비치게 할 뿐이다. 북·미를 도와주겠다는 중재론이 오히려 북·미를 힘들게 하는 꼴이 된다면 아이러니다.
북·미가 패를 다 깜으로써 이제 판은 커졌다. ‘운전자’ 수준의 중재론으로 해결할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중재’ ‘촉진’ 같은 감상적 언어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긴장이 고조되는 건 막아야 한다. 과거로 되돌아가면 보수 우파에게도 좋을 게 없다. 중재론이 실패하면 진보 좌파 진영이 실패를 자인할까? 어림없는 소리다. 그 책임은 평소 대화에 소극적이었던 보수 쪽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 전쟁하자는 거야? 당신은 전쟁세력인가, 평화세력인가?”하는 귀에 익숙한 그 외침이 벌써 들리는 듯하다.
북은 6일 트럼프를 “탄핵위기에 몰린 부동산 업자”라고 깎아내리는 등 비난의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복구하기 시작했다는 보도도 있다. 조짐이 좋지 않다. 미 의회에선 북의 수용소 철폐를 촉구하는 의안이 발의되고, 북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금융기관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도 거론되고 있다. 북·미 관계가 나빠질수록 이 정권 사람들은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며 고무될지도 모른다. 이성적인 판단은 아니다. 악화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있으면 붙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