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우리 수출만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출 강국인 중국, 독일, 일본, 대만 등 이들의 수출도 동반 하락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서 경기 순환적 현상이라고 단순하게만 평가하는 것은 너무 안일한 접근 방법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수급 조정으로 하반기부터 반도체 가격이 회복되고, 국제유가가 오름세로 돌아서면 수출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발상이 그렇다.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안정적인 수출 기반이 유지되지 못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수출이 잘 될 때도 시중에 돈이 잘 돌지 않고, 일자리도 과거와 같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왜 그럴까? 전통 주력 제조업 혹은 일부 대기업의 수출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신(新)산업 혹은 기업이 참여하는 수출 인프라가 만들어지지 못하면 수출에 대한 회의론과 불안감이 사라질 수 없다. 따라서 수출을 유지하면서 한편으로 늘려가기 위한 주력산업과 신산업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는 지혜가 시급하다.
벌써부터 정부에서는 통해 범정부·민관합동 수출 총력지원체계를 가동하면서 이 달 중에 수출활력제고 방안을 내놓겠다고 한다. 수출이 부진하면 의례히 내놓는 단골 메뉴처럼 되어있기도 하다. 이를 위해 별도의 예산을 투입할 것이 분명하다. 수출지원기관들은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할 것이다. 그러나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밀어붙인다고 해서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릴만한 아이디어나 사업거리가 갑자기 나올 리 만무하다. 또 과거 흘러간 레퍼토리나 돌리면서 재탕 혹은 삼탕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반짝 쇼를 해서라도 성과가 나면 다행이지만 생색이나 내고 호들갑만 떨다가 용두사미로 끝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혹시나 또 우리끼리 특정 시장에서 한국 상품 단독 전시회를 한다거나, 해외 바이어를 국내로 초청하여 수출상담회를 한답시고 예산을 대거 투입하는 것은 가장 근절해야 할 처방들이다. 그런 행사에 참가하는 국내기업이나 해외 바이어들로 수출을 늘릴 수 있다고 판단하는 그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생색내기, 전시행정, 반짝 쇼 등 구태에서 이제는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이미 1년 여 전부터 우리 수출에 이런 시기가 올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놓고 있었다는 점이다. 미래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컨틴전시 플랜’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나마 수출이 잘 되던 시절에 이런 플랜이 가동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어공(정당이나 선거캠프에서 일하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은 탁상공론에 사로잡혀 있고, 늘공(늘 공무원)은 어공 눈치 보기에 바쁜 현실이다. 이제 사람까지 바깥으로 내몰려는 어공의 무책임한 발언과 ‘한국판 CES' 급조를 보면서 한숨마저 나온다. 우울한 소식은 계속 들려온다. GM에 이어 르노삼성도 한국에 신차 물량을 배정하지 않고, LCD TV는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주고 있다. 마침내 한국의 자동차 생산량에 멕시코에도 뒤져 졸지에 두 단계 떨어진 7위로 내려앉았다. 이 와중에 지난 1월 25일 자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반사이익을 가장 크게 챙길 수 있는 나라로 한국을 지목했다. 관세 폭탄으로 미국 시장에서 중국산 가격이 올라가면 경쟁 제품인 한국산이 이득을 볼 것이라는 견해다. 새겨들을만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