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도 배꼽 잡은 최호성, 20년째 로고 없는 ‘극한직업’

2019-02-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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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모자'로 연습라운드…스폰서 없이 20년째 자비로 장비구입

20대 골프입문해 프로까지…"'낚시꾼 스윙'은 생존 위한 것"

페블비치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낚시꾼 스윙을 선보인 최호성의 PGA 투어 데뷔전 모습. [사진=AP·연합뉴스 제공]


설 연휴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극한직업’의 반응이 뜨겁다. 불철주야 달리고 굴러도 실적은 바닥인 해체 위기의 마약반이 잠복근무로 치킨집을 인수해 위장 창업을 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영화다. 뜻밖의 절대미각을 지닌 마 형사의 숨은 재능으로 치킨집은 대박이 난다. 2시간 가까이 웃음을 담보한 ‘극한직업’이 극장가를 접수한 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꼬집어서다. 마약반 반장의 한 마디는 소상공인의 애환을 대변했다. “우린 다 목숨 걸고 해!”

‘극한직업’이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는 동안 생애 처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나선 ‘초짜 아저씨’가 세계 골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장소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페블비치의 명문인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 무대는 세계 최고의 골퍼가 모인 PGA 투어 AT&T 페블비치 프로암이었다. 프로 골퍼와 유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 대회의 슈퍼스타는 한국에서 날아온 ‘신 스틸러(Scene Stealer)’ 최호성(46)이었다.
최호성은 마치 낚시꾼이 낚시를 할 때 낚아채는 독특한 스윙 피니시 동작 때문에 ‘낚시꾼 스윙’이라는 별명을 얻고 유명세를 탔다. 미국에서는 ‘피셔맨’으로 통했다. 최호성이 한국과 일본 무대에서 정상에 오르자 세계적인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결국 최호성은 PGA 투어 무대에 스폰서 초청선수 자격으로 생애 처음으로 나섰다. 이 대회 개막 전부터 기간 내내 최호성의 일거수일투족은 화제였고, 미국 골프 전문 매체는 물론 뉴욕타임스도 최호성의 인생 스토리를 자세히 소개하며 찬사를 보냈다.

비주류의 반란이다. 사실 최호성은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선수가 아니었다. 고교 시절 참치 해체 실습을 하다 엄지손가락이 잘리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20대의 늦은 나이에 골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다 골프를 시작해 프로가 된 성공 스토리는 애잔하다. 그가 골프장에 나가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스윙을 하는 것은 쇼맨십이 아닌 ‘생존’을 위해서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이기 때문에 그냥 나의 느낌대로 스윙을 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의 얼굴이 다 다르듯 골프 스윙도 다 다르다.” 최호성은 골프 자체를 즐기고 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극한직업’인지도 모른다.
 

페블비치 코스에서 '민모자'를 쓰고 연습라운드 중인 최호성. [사진=게티이미지 클리프 호킨스 제공]


최호성은 이번 대회 연습라운드 때 로고가 없는 이른바 ‘민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대회 기간에는 페블비치 로고가 박힌 모자를 현지에서 사서 쓰고 경기에 나섰다. 메인 스폰서가 없어서다. 안타깝게도 그는 지금껏 골프를 치면서 메인 스폰서의 후원을 받아본 적이 없다. 지난해까지 ‘MEGA’라는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쓴 건 개인적인 도움을 준 지인에게 고마운 마음의 표시였고, 이번 대회에서도 초청을 해준 주최 측에 감사의 의미를 담았다. 여전히 클럽과 의류 등 정식 후원 계약을 맺지 않고 대부분 직접 사서 쓴다. 그 세월이 20년째다. 프로 골퍼인 그에게는 아직까진 허울뿐인 유명세인 셈이다.

최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성현은 필리핀 기업 솔레어 리조트 앤드 카지노와 역대 한국 골프 최고 대우로 메인 스폰서 계약을 했다. 최소 2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가운데 연간 30억원에 이른다는 소문도 나돈다. 이외에도 박성현의 몸에 붙은 후원기업 수가 10개에 달한다. 꿈의 무대를 밟은 최호성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최호성은 이번 PGA 투어 데뷔전에서 3라운드 합계 9오버파 224타로 하위권에 머물다 10일(한국시간) 컷 탈락했다. 첫 도전은 쓰라렸지만 현지의 따뜻한 환대는 달콤했다. 최호성과 함께 라운드를 돈 미국프로풋볼(NFL) 슈퍼스타 애런 로저스의 여자친구인 ‘레이싱 여제’ 데니카 패트릭으로부터 티셔츠를 선물로 받고 환하게 웃었다. 최호성이 자신의 낚시꾼 스윙 실루엣이 그려진 헤드 커버를 선물한 것에 대한 답례였다.

최호성은 뜨거운 관심과 응원에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앞으로도 PGA 투어에서 뛰고 싶다. 어떤 대회가 있는지 모르지만, 불러만 준다면 고맙게 참가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그의 ‘민모자’에 또렷한 로고가 새겨지는 그날이 올까. 세계 무대에서 숨은 재능을 뽐낸 최호성은 ‘극한직업’을 힘겹게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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