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窓으로 경제보기④] 금융계와 야구계의 경북고-대구상고 갈등

2019-02-0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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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인 스포츠 칼럼니스트]



대구-경북지역 수신(受信)의 36%를 점유하고 있는 DGB 금융그룹이 지난달 29일 10개월째 공석이던 대구은행장에 김태오 DGB 금융지주회장을 겸임, 선임함에 따라 내부 갈등이 일단 봉합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은행 이사회가 김태오 회장의 취임을 놓고 무려 10개월간 갈등을 벌인 이유는, 겉으론 ‘외부출신 수장’의 선임 반대지만 실제로는 경북고와 대구상고의 파벌싸움 때문이었다.
경북고 출신인 김회장은 지난해 7월 DGB 금융지주회장 취임후 공정한 인사를 한다며 대대적인 임원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는데 공교롭게도 11명중 9명이 대구상고 출신이어서 ‘출신학교 파벌 싸움’이 내홍으로 번졌었다. 김회장이 대구은행장까지 겸임하면서 내분은 물밑으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로 남아 있다는게 중평이다.

‘경북고-대구상고’의 대립은 매우 특이해 보인다. 금융기관은 어느 지역이든 예로부터 상고 출신이 주류를 이뤄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구는 독특하다. 인문고로는 경북고가 지역에서 월등히 뛰어난 탓에 향토 금융기관인 대구은행에도 인재들이 적잖게 입행했다. 그러니 양교의 자존심싸움이 태생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경북고-대구상고의 대립은 야구에서도 일찍부터 생겼다. 대구지역의 야구 명문교는 일제강점기부터 대구상고였으나 ‘불세출의 투수’ 임신근(1949~1991)을 앞세운 경북고가 1967년부터 전국대회 우승을 휩쓸며 ‘양웅(兩雄)의 대결’이 시작됐다. 신흥 명문 경북고의 우세는 남우식, 정현발, 황규봉의 활약으로 1972년까지 이어졌으나 1973년 이후 장효조, 김시진을 앞세운 대구상고의 대반격으로 양교는 한동안 전국대회 우승을 나눠가지다 시피 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대구 지역 연고의 삼성 라이온즈는 자연스레 경북고와 대구상고 출신들로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금융기관처럼 양교가 주전 기용을 놓고 갈등을 일으키진 않았다.
삼성 라이온즈 초대 사령탑이 대구상고 출신 서영무 감독(1934~1987)이긴 했으나 실력 위주로 선수를 출전시켰기 때문이다. 감독의 능력은 팀성적과 비례하므로 우수한 선수를 제치고 고교 후배를 뽑을수는 없었다.

물론 자그마한 갈등은 있었다. 감독이 정동진, 우용득(이상 대구상고)과 서정환, 류중일(이상 경북고)로 이어지며 알게 모르게 고교 후배들을 챙겨 은연중 내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큰 문제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어서 현재까지도 양교 출신들은 정서상으로는 화합이 잘 되고 있다(현 김한수 감독은 서울 광영고 출신).

금융기관은 합병때마다 주도권 문제로 갈등-내분으로 번졌다. 신한은행은 신한은행파와 조흥은행파, 국민은행은 국민은행과 주택은행파로 갈려 어느 파가 은행장이 되느냐에 따라 임원 인사의 희비가 갈렸다. 2002년 탄생한 우리은행은 17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퇴직자 동호회 모임을 상업은행파와 한일은행파로 분리해서 운영하고 있다. 금융인들이 야구인들보다 도량이 좁다고 해야 하나?

스포츠 칼럼니스트/前 KT스포츠 커뮤니케이션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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