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희 유허지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에 있다. 유허지는 선현의 자취가 있는 곳을 후세에 알리거나, 그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한 지역을 말한다.
손병희(1861~1922)는 동학(東學)·천도교(天道敎)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다. 또한 혁명가이기도 했다.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 대표로 1919년 3·1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894년 동학혁명이 발발하자 충청도와 경상도에서 10만의 민중을 이끌고 관군과 싸우는 등 동학혁명을 주도하기도 했다.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은 현대 민주주의 기본 이념인 ‘인간의 존엄성’과도 일맥상통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 교조인 예수의 가르침과도 비슷하다.
기독교의 경전인 신약성경 마태복음 25장 40절에는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쓰여 있다. 이 말에 따르면 사회적 약자 등에게 한 것이 기독교에서 섬기는 신인 ‘하나님’에게 한 것이 된다.
천도교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교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의 광복과 시대와 종교를 초월한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평등·인내천 사상의 실현을 위해 평생 노력했기 때문에 손병희는 민족대표 33인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청원군은 손병희 유허지에 의암영당과 의암기념관을 개관했다. 의암영당은 손병희 사당이다. 손병희 유허지는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 추석에는 휴관한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다.
◆손병희의 인내천 사상, 시대와 종교 초월한 보편적 가치 인정받아
의암기념관은 손병희의 업적을 기리고 유품을 전시하기 위해 1997년 건립했다. 전시실은 3실로 구분해 제1실은 청주시의 항일운동과 인물에 대한 자료를 전시했다. 제2실은 천도교중앙총부에서 기증한 손병희의 유품 100여점을 전시했다. 제3실은 영상실이다.
손병희의 유품은 서울 우이동에 있는 봉황각(鳳凰閣)에서 보관해오던 것이다. 봉황각은 손병희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내세우고 일제에 뺏긴 국권을 찾기 위해 천도교 지도자를 훈련시킬 목적으로 1912년 세운 건물이다.
의암영당은 손병희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하기 위해 1994년 건립했다. 평면구조는 영당과 내삼문, 외삼문, 동·서재로 이뤄졌다.
영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반, 겹처마 및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내삼문은 솟을대문 형태로 중앙의 지붕은 한 단 높게 처리했다.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동·서재는 모두 정면 3칸, 측면 1칸반으로 된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앞뜰의 좌우에 배치됐다.
영당의 둘레에는 돌담장이 설치돼 있다. 영당에 봉안된 영정은 한국화가 김성태가 그렸다. 편액은 송해석이 썼다.
손병희 생가와 의암기념관에서 평등이나 인내천 의미나 소중함, 가치 등을 다시금 깨닫는다면 손병희의 생애나 3·1운동 같은 역사 지식보다 훨씬 소중한 것을 얻을 것이다.
청주시 흥덕구에 있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16호인 충렬사(忠烈祠)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의 위패가 있는 사당이다. 1595년(선조 28년)에 묘소를 동래에서 이곳으로 이장하고 1610년(광해군 2년)에 사당을 창건했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重修)했다.
송상현의 호는 천곡(泉谷), 시호는 충렬이다. 1576년(선조 9년)에 문과 급제 후 1591년(선조 24년) 동래부사가 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동래성에 육박하자 군사를 이끌고 항전하다 왜병에게 살해됐다. 충렬사 뒷산에는 송상현의 묘소와 1659년(현종 원년)에 세운 신도비가 있고, 사당 입구에 1595년에 건립한 충신문이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80년에 중수한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간 마루방에 3개의 분합문(分閤門, 마루나 방 앞에 설치해 접어 열 수 있게 만든 큰 문)을 달고 앞퇴를 두었으며, 마당 앞에 삼문을 세우고 주위에는 석축담장을 쌓아 보호하고 있다.
청주시에선 송상현의 애국충절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1년에 인근 부지를 확장·정비해 전시관 등을 신축하고 주변을 공원화해 시민들이 역사와 함께 호흡하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월요일은 휴관한다.
청주백제유물전시관은 청주신봉동백제고분군을 중심으로 인근의 송절동·봉명동·명암동·가경동 유적과 청원의 송대리·주성리 유적을 포함한 청주의 초기 역사와 관련된 여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고분 축조 과정과 기마·보병·농민상, 정북동토성 축조 과정, 신봉동 집터 모습 등 재현된 실물을 통해 당시 역사를 좀 더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터치스크린, 매직비전, 영상관을 통해 다양한 시청각적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청주신봉동백제고분군에선 1982년부터 지금까지 6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3기의 석실분과 300여기의 토광묘, 목관묘가 다양한 부장품과 함께 발견됐다. 청주신봉동백제고분군은 백제권역 최대의 무덤 밀집지역으로 1987년 사적 제319호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역사·문화 관광하기 좋은 민족정기의 터전
부장품으로는 많은 토기와 철기, 장신구가 출토됐다. 당시 백제의 대외관계와 지방통치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다.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과, 추석 등에는 휴관한다.
청주시 오근장동의 미호천변에 있는 정북동토성은 사적 제415호다. 청주시 북쪽 미호천 연안에 펼쳐진 평야의 중심에 위치한 토성이다. 커다란 제방처럼 보이는 이 성은 서울 풍납토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성이다.
정북동토성은 형체를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토성이다. 둘레가 650여m에 이르는 정사각형 형태의 성이다. 동서남북으로 문터가 남아 있다. 남문과 북문은 성벽을 어긋나게 쌓았다. 이것은 적이 성으로 곧바로 들어올 수 없도록 만든 옹성의 초기 형태다. 토성의 구조나 출토 유물 등으로 미루어 3세기 초기 토성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상당산성은 청주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멀리서 봐도 상당산이 머리에 띠를 두른 듯 성벽이 또렷하게 보인다. 상당산 능선 따라 이어진 성벽은 둘레가 4.2km, 높이가 4∼5m다.
임진왜란 때 일부 고쳤고 지난 1716년(숙종 42년)에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석성을 쌓았다. 성 안에는 5개의 연못과 3개의 사찰, 관청 건물, 창고 등이 있었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공남문(남문)과 미호문(서문), 진동문(동문) 3개의 문과 2개의 암문, 치성 3곳과 수구 3개소가 있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에는 청남대가 있다. 청남대는 1980년대 전두환 대통령을 시작으로 역대 대통령들의 휴가와 정국구상의 무대가 됐다. 수려한 경관과 맑은 공기를 자랑한다.
2003년 일반인들에게 열린 청남대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고 그 속에 역대 대통령들의 숨은 이야기가 남아있다.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문의문화재단지는 청주시내 유형·무형의 문화재 등를 수집·전시해 인류문명의 발달과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사라지고 있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재현하고 조상의 삶과 얼을 되살리고 배우기 위한 역사의 산교육장이다.
총 4만여평의 대지 위에 민가 5동, 관아 건물 1동, 성곽 및 성문 1개소, 유물전시관 1개소와 5000평의 주차장이 조성됐다.
미국의 샤스터, 영국의 나포리나스와 함께 세계 3대 광천수로 인정받은 초정약수는 지하 100m의 석회암층에서 솟아오르는 매콤하고 차가운 천연탄산수다.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에서 이 천연탄산수가 발견된 것은 600여년 전이라고 하는데 '동국여지승람'이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대왕이 이 곳에서 117일을 머물면서 눈병을 고쳤다는 기록이 있다.
청주시 서원구, 흥덕구, 상당구 등에는 맛집들이 많다. 버섯전골, 삼겹살, 시래기해장국, 도토리묵밥, 올갱이국이 청주시의 향토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