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집무실에서 만난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은 살이 쏙 빠져 있었다. 보름간 입원한 뒤 출근한 지 이틀째라고 했다. 홀쭉해진 모습이 심하게 병치레를 했다는 것을 직감하게 했다.
“이제 괜찮습니다, 술도 안 먹고 좋죠 뭐.” 웃는데 미소가 씁쓸했다. 그러나 그의 말 속에서 육체적인 병보다 지난 한 해 동안 겪었을 마음고생이 더 크게 와 닿았다.
경사노위는 노사정위원회를 대체하는 기구다.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1998년 1월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 간 협의체로 출범한 지 20년 만에 새롭게 개편된 것이다.
참여 주체도 주요 노사 단체와 정부 대표뿐 아니라 청년, 여성, 비정규직, 중소·중견기업, 소상공인 대표 등으로 대폭 확대했다.
출범식 날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참석해 노·사·정 간 사회적 대화를 주문했고, 경사노위에서 합의된 결정은 자문 차원이 아닌 의결 수준으로 삼겠다며 무게를 실어줬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불참해 출범 의미가 퇴색됐다.
민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을 지냈던 문 위원장이지만 이례적으로 민주노총에 쓴소리를 했다.
그는 “협상을 주고받으려면 당사자들이 직접 나와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상대방 의견도 청취하는 것이 필요한데 대화 자체가 안 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이견이 크고 어려움이 있겠지만 경제, 사회 여건이 달라진 만큼 용기와 책임을 갖고 대화에 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쟁점이 많지만 노사가 매번 대립·갈등만 보여서는 안 되고, 책임지고 합의도 하는 모습을 경사노위에서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문 위원장은 노사의 대립이 벼랑 끝까지 치달았을 때 직접 현장으로 가 중재에 나섰다. 특히 금호타이어·STX조선 구조조정 과정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중재자 역할을 한 점을 보람이라고 했다.
‘해외 매각 절대 반대’를 외치며 3차례나 총파업을 벌인 금호타이어 노조는 고용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지난해 4월 중국 타이어 기업인 더블스타의 매각을 받아들였다.
STX조선은 고정비용 40% 감축을 위해 노사가 총고용을 보장하되 5년 동안 6개월씩 무급 순환휴직에 합의했다.
중국 기업의 ‘먹튀’ 우려와 함께 무급 순환휴직 노동자들에게는 두려움과 동시에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당시 노조는 믿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고, 고심 끝에 문 위원장에게 SOS를 쳤다. 금호타이어·STX조선이 구조조정에 합의하기까지 문 위원장은 절실한 마음으로 노사 양측을 만나 중재를 했다.
일단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것만은 막아야 했고, 노동자들이 해고당하는 일만은 없어야 했다. 고용을 보장 받되 외국 자본을 받아들이고, 무급 순환 근무를 하기로 한 이유였다.
그는 “노사가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을 때는 대승적 차원에서 사회적 대화로 풀어야 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사 어느 한쪽에 희생과 양보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서로 고통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의 원칙을 세우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 문성현 위원장은
△1952년 경남 함양 출생 △진주고,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동양기계 노조 사무국장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공동의장 △민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 △민주노동당 대표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노동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 △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