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미·중 무역전쟁 리스크가 한층 더 커지며 가뜩이나 성장 둔화에 직면한 중국은 더 큰 경기 하방 압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적 경기부양과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 게 중국 지도부의 최대 과제가 된 셈이다. 이번주 열리는 중앙경제공작회의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 대규모 경기부양 'No'···단계적 경기부양 예상
딩솽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중화권 수석경제학자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은 부채 감축(디레버리징) 등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2008년과 같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쓸 가능성은 비교적 적다고도 전했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 당시 4조 위안(약 653조원)의 유동성을 푸는 방식의 경기부양에 나섰다.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2008년까지만 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150%에 불과했던 중국의 총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260%까지 치솟았다. 중국이 지난해부터 ‘부채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디레버리징에 속도를 낸 이유다.
딩 수석경제학자는 "현재 중국으로선 국내 경제상황과 미·중 무역협상 진행을 보면서 어떻게 경제 성장을 떠받칠지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돈줄을 푸는 방식보다는 적극적인 재정 확장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게 감세 정책이다.
황즈룽 쑤닝금융연구소 연구원은 내년 중국이 1조6400억 위안의 대규모 감세를 시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올 한해 1조3000억 위안 감세규모에서 더 늘어날 것이다. 황 연구원은 중국 지도부가 3년 내 5조 위안 감세 목표 등을 설정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셰야쉬안 초상증권 연구원은 중국 지도부가 실질적인 경제 흐름에 따라 경기부양 카드를 점진적으로 꺼내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방'에 모든 걸 쏟아부어 경기를 부양하는 건 지방정부, 기업부채 급증 등과 같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셰 연구원은 중국이 경기 하방 압력을 막기 위해 올 하반기부터 은행 지급준비율(지준율) 인하, 인프라 투자 확대, 위안화 환율 절하 등과 같은 전통적 경기안정 수단 카드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경제 흐름에 따라 주요 정책금리 인하, 부동산 시장 규제 완화, 자동차 구매세 인하 등의 추가 조치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저조한 경제지표에···경기 부양에 좀 더 '적극' 나서는 中
올 들어 디레버리징으로 가뜩이나 경기 하방 압력에 직면한 중국 경제는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며 성장 둔화 속도는 예상 밖으로 가팔라졌다. 중국의 올 3분기 경제성장률은 6.5%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분기(6.4%) 이후 최저치까지 하락했다.
중국은 올 들어 네 차례 지준율 인하, 지방정부 채권 발행 독려를 통한 인프라 투자 확대, 소비부양책, 대규모 감세 등을 통해 경기 하방 압력을 해소하는데 힘써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눈에 띄는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 달 중국 소비·생산·수출 지표는 예상 밖으로 저조했다. 중국 11월 소매판매 증가율은 8.1%로, 지난 2013년 5월 이후 15년래 최저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산업생산 증가율도 5.4%로, 3년래 최저치였다. 무역전쟁 역풍 속에서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왔던 중국 수출도 11월엔 5.4% 증가하는데 그쳤다. 특히 중소 민영기업들이 경기 둔화 직격탄을 입었다.
이에 중국은 이달 들어 좀 더 적극적으로 경기 부양에 나서는 모습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벌써부터 '돈 풀기'에 나섰다. 인민은행은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나흘에 걸쳐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시중에 모두 5500억 위안 유동성을 순공급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 금리 인상 발표 몇 시간 전인 지난 19일 밤엔 중소 민영기업을 위한 '맞춤형 유동성지원창구(TMLF)'도 개설한다고 발표했다. 중소기업에 낮은 이자로 장기 대출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시장은 사실상 중소기업을 위한 '맞춤형 금리 인하'라고 평가했다.
이강(易綱) 인민은행 총재도 이미 앞서 "중국 경제 주기가 하향이므로 약간 느슨한 통화 여건이 필요하다"며 통화 완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그는 "통화 정책이 너무 느슨해서도 안 된다”며 “금리가 너무 낮으면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대내외 균형을 잘 맞춰 통화정책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동안 부채 리스크 우려로 중단됐던 지방정부 인프라 투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거시경제 정책을 담당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는 지난 19일 상하이 도시철도 건설에 향후 5년간 2983억 위안, 우릿돈으로 49조원을 투자하는 사업을 승인했다. 발개위는 지난 11월 한달에만 1000억 위안이 넘는 지방정부 인프라 투자 검토보고서를 통과시켰다.
2년간 이어졌던 '철벽'같은 중국 부동산 시장 규제에도 '틈'이 생긴 모습이다. 지난 18일 중국 산둥성 허쩌시가 주택거래 제한령을 전격 해제한 것. 중국 전국적으로 부동산 규제 고삐를 푼 도시가 2년 만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중국의 강력한 부동산 시장 규제책이 경기 하방 압력 속에 서서히 완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 중앙경제공작회의에 쏠리는 눈
무역전쟁 등으로 내년 더 큰 경기 하방 압력에 직면할 중국 지도부로선 경제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운영해야할지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단기적 경기부양과 지속가능한 성장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이에 따라 이번주 열릴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중국 지도부가 어떤 경제정책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중앙경제공작회의는 중국 최고지도부가 한 자리에 모여 내년 거시경제 방향을 결정하는 회의다. 여기서 논의된 정책들은 내년 3월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 격)에서 확정된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앞서 중앙경제공작회의 예비회의 격으로 알려진 13일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온중구진(穩中求進·안정 속 발전)의 흐름을 유지해 나가면서 고도의 질적발전과 공급측 구조개혁, 그리고 시장 개혁개방을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금융리스크 해소 ▲빈곤퇴치 ▲환경보호라는 3대 과제 수행을 계속해서 이어감과 동시에 취업·금융·대외무역·외자·투자·시장전망 등 여섯 가지를 '안정(穩)'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중국 내수시장을 강력하게 키워서 외부충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글로벌 경제산업 체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중국 지도부는 내년 경제성장률 목표치도 낮춰 잡을 예정이다. '안정'과 '질적 성장'을 위해 어느 정도 성장률 둔화는 용인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21세기경제보도 등 중국 경제전문 매체들은 앞서 전문가 분석을 바탕으로 내년 성장률 목표치가 6%, 혹은 6~6.5% 구간으로 설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올해 목표치인 6.5% 안팎에서 최대 0.5%P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