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이 대만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을 생산 거점으로 삼은 대만 기업들의 '중국산' 제품이 미국의 대중 폭탄관세 표적이 된 데다, 무역전쟁이 중국의 성장둔화를 가속화해 수요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으면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영문 주간지인 닛케이아시안리뷰(NAR)는 10~16일자 최신호 커버스토리로 세계 양강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속에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한 대만의 딱한 사정을 다뤘다.
문제는 대만의 중국산 제품들이 미국의 새 폭탄관세 표적이 됐다는 점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9월 말부터 연간 2000억 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10%의 추가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이 세율을 25%로 높이기로 한 계획은 지난 1일 미·중 정상의 휴전 합의로 유예됐지만, 90일간 벌일 무역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협상이 불발되면 관세율 인상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아직 표적에 들지 않은 나머지 중국산 제품에도 폭탄관세를 물릴 태세다.
◆대만 기업 中생산거점 이전 가속
대만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미 임금상승 등에 따른 비용 증가로 중국 생산거점 이전 논의가 분분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간 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로 저울질 속도가 빨라졌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등이 중국을 대신할 생산거점으로 떠올랐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최근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이 나라 기업들의 본국 회귀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경제적 문제로 고전한 차이 총통은 '일자리 되찾기'에 관심이 크다. 대만 정부는 생산시설을 국내로 들여오는 기업에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준다는 방침이다.
세계 최대 노트북 컴퓨터 위탁생산업체로 '애플워치'를 공급하는 콴타컴퓨터는 이미 대만 회귀를 계획 중이다. 이 회사는 최근 대만 타오위안에 있는 본사 인근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는 데 42억8000만 대만달러(약 1566억원)를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리 램 콴타컴퓨터 회장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일부 첨단제품 생산지를 (중국에서) 다시 대만으로 옮길 것"이라고 말했다.
NAR은 미·중 무역전쟁 초기에 카드를 숨긴 채 사태를 예의주시하던 대만 기업에서 이처럼 솔직한 발언이 나온 건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지적했다. 미·중 무역전쟁 우려가 커지면서 이에 대한 대만 기업들의 경계감이 노골화했다는 얘기다. 천메이링 대만 국가발전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회견에서 여러 분야의 기업 40여곳이 일부 생산시설을 중국에서 대만으로 이전할 의향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세계 최대 자전거 생산업체인 자이언트도 최근 대만 타이중으로 300~400개의 일자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 대변인은 미국 시장 수출분은 관세를 피해 대만에서 선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이언트의 중국산 전기 자전거와 일반 자전거 및 부품은 올 초부터 지난 9월 말에 걸쳐 모두 미국의 폭탄관세 부과 대상이 됐다.
대만 훙하이정밀공업(폭스콘) 다음으로 아이폰을 많이 조립하는 페가트론도 미국의 추가 관세를 피해 애플 제품 생산지를 중국에서 대만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수출 대만 기업은 수요둔화 우려
대중 수출 비중이 큰 대만 기업들은 중국의 성장둔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 중국의 성장둔화는 곧 수요 부진을 의미한다.
이미 나온 통계가 우려를 뒷받침한다. 지난 1~10월 대만의 대중 공작기계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전체 증가폭 27%에 한참 못 미친다. 중국의 제조업 투자 증가세가 부쩍 약해졌다는 말이다.
반면 올해 같은 기간 대만의 대미 공작기계 수출액은 32.6% 증가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제조업 부활정책이 성과를 낸 셈이다. 다만 대만 공작기계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3%로 중국(32%)의 절반도 안 된다.
CC 왕 대만 기계산업협회 회장은 기업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역 긴장을 주시하고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을 위한 경쟁력을 높이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NAR은 대만 기업들이 무역전쟁을 피해 중국에서 벗어나려면 확실한 보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차이 정부의 유인책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될 수 있겠지만, 공급망을 동남아시아나 인도 등지로 옮기는 건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중국에 비해 교통 기반시설 등이 열악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중국에 남기도 곤란한 상황이다. 대만 기업들이 처음 진출했을 때의 중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이 중국에서는 임금이 급격히 오르고 정치적 압력은 더 거세졌다. 중국은 대만의 경제·외교적 고립을 추구하고 있다. 더불어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에서 '전략적 경쟁자'로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대만이 미국 등과 양자·다자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살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러려면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개방 반대 등 오랫동안 고수한 무역쟁점에 대한 입장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