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문재인 대통령의 희망대로 연말이든 연초든 성사될 공산이 크다고 본다. 그는 북한의 최고 통치권자가 된 이후 ‘위험을 감수하는(risk-taking)'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투자자에 비유하면 ‘High risk, High return(고위험 고수익)'을 즐기는 타입이다.
긍정적, 부정적 의미에서 모두 그렇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집권 후 4차례 핵실험을 했고 미국을 자극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핵무력이 완성됐다고 판단한 시점부터는 미국, 한국 등 적대 국가와 과거 아버지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과감한 태도로 협상에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에서 꽃다발을 들고 환호하는 시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서울에서는 환영 군중 동원이 불가능하다. 반면에 보수단체 회원들은 김 위원장의 동선(動線)에서 그를 비난하고 모욕하는 퍼포먼스와 시위를 할 것이다. 북에서 김 위원장은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 존엄’이다. 김 위원장이 남에 와서 이런 수모를 받는 것은 북에서의 최고 존엄의 아우라에 손상을 입힐 수도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런 정도의 리스크는 각오하고 올 것이다. 얼마 전 북한을 다녀온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의 길거리에 김 위원장을 환영하는 인파가 나오지도 않을 것이고 때로는 반대 데모대가 길거리에 나오리라는 것을 북한의 핵심인사들이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평양에서 한 것 같은 카 퍼레이드만 안 한다면 경호 과정에서 돌발사태가 생기기 어렵고 격렬한 데모를 걱정할 이유도 없다.
그는 서울 방문을 통해 국제사회에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주면서 미국을 압박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은 수행원이나 북한 인민에게 ‘적지(敵地)에서도 끄떡 않는 용감한 지도자’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보좌진 중 한 사람은 “북에서는 주로 나이 든 원로들이 김 위원장의 방남을 반대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남쪽에 다녀간 동생 김여정과 김영철의 의견도 들어봤을 것이다. 김 위원장으로선 피붙이인 김여정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을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방남한다면 그 시기는 언제가 될 것인가.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을 내년 1, 2월경 하는 것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방남 시기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전이라고 봐야 한다. 김 위원장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온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도 듣고 싶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가는 공군1호기 안에서 산적한 경제 현안에 관한 질문은 받지 않고 남·북·미 관계와 김 위원장의 서울방문을 중심으로 답변했다. 보수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위해 온갖 공을 들이는 문 대통령에 대해 ‘방남 구걸’이라는 비난을 한다. 북이 3차에 걸친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지 않는 마당에 4차 정상회담과 서울 답방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의 보좌진 중 한 사람은 “보수정권 9년 동안 남북관계는 경색되고 북의 핵무기만 늘어났다. 자기들은 한 게 뭐 있는가. 어떻게든 김 위원장을 설득하고 남북화해 무드를 조성해 비핵화 프로세스에 진입시키려는 노력을 두고 방남 구걸 운운하는 것은 온당한 시각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경호 때문에 깜짝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어찌됐든 그는 아버지가 못 갔던 길을 더듬어 찾아가고 있다. 비핵화와 제재 헤제를 둘러싼 북·미 협상이 경색 국면에 접어들면서 김 위원장의 비핵화 진의(眞意)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그가 이제 와서 다른 선택을 하기도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김일성대학을 나온 북한문제 전문가는 “드론을 비롯한 첨단 신무기의 존재 앞에서 김 위원장이 핵만 가지고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북한 경제발전이라는 큰 꿈을 갖고 있지만 제재 해제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핵화와 제재 해제의 교환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고 지금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가 트럼프를 두 번째 만나기에 앞서 서울에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듣고 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