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노동자들을 재빨리 구출하는 것이 목표다. 이 지역 국가들과의 협상 조건은 없다."
지난 2011년 리비아 내전이 발생했을 당시 베트남의 노동·사회 보장 담당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가족의 생사 여부에 마음을 졸이던 수천명의 국민들에게 안도감을 안겨준 발언이었다. 한 달 뒤 리비아 현지에 체류하던 1만명 이상의 베트남 노동자들은 안전하게 베트남에 귀환할 수 있었다. 당시 노동 분야 장관이었던 응우옌티낌응언(Nguyễn Thị Kim Ngân) 베트남 국회의장의 존재감이 베트남 국민들의 뇌리에 자리잡은 사건이었다.
응우옌티낌응언 의장의 부모는 베트남 해방운동에 깊게 관여했다. 1981년 베트남 공산당원으로 가입한 것도 어쩌면 운명적인 수순이었다. 대학에서는 재무와 주 예산 분야를 전공했고 대학원 과정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2017년 11월 20일 개교 60주년을 맞은 베트남 국립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학교가 각 분야에서 모교를 빛낸 60인 중 1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정치인으로서의 삶은 탄탄대로였다. 응우옌티낌응언 의장은 2013년 5월 국회부주석에서 정치국원으로 승진했다. 정치국원은 실질적인 최고 정책결정기관이다. 현재 베트남에 있는 정치국원은 16명뿐이다. 재무부 차관, 하이즈엉성 당서기장, 무역부 차관, 노동보훈사회부 장관, 국회 부의장 등을 역임한 응우옌티낌응언 의장은 개방적이며 대외 관계도 원만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2016년 포브스가 선정한 '베트남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뽑히기도 했다.
2016년 3월 31일 베트남 역사상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국회의장에 올랐다. 공산당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베트남에서 국회의장은 공산당 서기장, 국가주석, 총리에 이어 국가서열 4위다. 그러나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서열 2위인 국가주석을 겸임하면서 응우옌티낌응언 의장은 실제 국가서열 3위에 올라 있다.
응우옌티낌응언 의장은 문희상 국회의장의 초청에 따라 지난 4일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당초 지난 9월 방한할 예정이었으나 쩐다이꽝 당시 주석이 서거하면서 잠정 연기됐다.
응우옌티낌응언 의장은 6일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베트남은 한국을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꼽고 있으며 정치외교,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파트너”라고 말했다. 이날 문희상 의장과의 면담에서 그는 "베트남과 한국은 1992년 수교 이래 지속적으로 관계가 발전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관계가 돈독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