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 여행지-겨울]경북 봉화 만산고택,망국의 한 깃든 140년 된 한옥에서 보내는 겨울밤

2018-12-0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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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문신 강용이 1878년 지어, 2013년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 제279호로 지정

-흥선대원군·영친왕·오세창 친필 현판,객실수 8실, 수용인원 45명 숙식 가능

-최고 품질의 자연산 송이 산나물 풍성

만산고택 전경[사진=경상북도 봉화군청 제공]

최근 몇년 동안 한국의 관광산업은 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배치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 등으로 위기를 겪었다. 한국의 관광산업이 이렇게 국제정세나 대외관계에 영향을 심하게 받는 것은 '국내 우수 관광자원 개발'·'홍보' 부족 등으로 탄탄한 관광 수요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본보는 4계절(봄, 여름, 가을, 겨울)에 맞춰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명 해외 여행지 못지않은 보고 싶은 좋은 국내 여행지를 소개하는 '잘가 여행지' 시리즈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경북 봉화군 봉화공용버스정류장에서 춘양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해 10여분 정도 걸으면 만산고택(晩山古宅)이 나온다. 봉화공용버스정류장에서 춘양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 중 직행버스는 하루에 9회 정도 운행하고 약 20분이면 춘양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완행버스는 20회 정도 운행하고 약 30분이면 도착한다.

만산고택은 조선 말 통정대부 정삼품 당상관을 역임한 만산(晩山) 강용(姜鎔)이 고종 15년(1878년)에 3여 년의 역사 끝에 완공한 고택이다. 2013년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 제279호로 지정됐다. 전체 규모는 대지 3306㎡, 88칸이다.
 

오른쪽에서 본 만산고택 칠류헌 모습.[사진=경상북도 봉화군청 제공]

‘만산’은 흥선 대원군(이하응)이 작호했다. 흥선대원군은 작호 후 친히 편액(扁額, 종이, 비단, 널빤지 따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을 내려보냈는데 사랑채의 전면에는 晩山(만산)이라 쓴 흥선대원군의 친필편액이 걸려 있다.

만산고택은 크게 일곱 동으로 구분된다.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남쪽의 낮은 산을 등지고 동향(東向)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만산고택 서실에 ‘翰墨淸緣’이라고 쓰여 있는 현판이 걸려있다. [사진=경상북도 봉화군청 제공]

11칸 규모의 긴 행랑채 사이로 난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사랑채와 안채가 연결된 口자 형태의 본채를 마주하게 된다. 사랑마당 왼쪽에는 방 두 칸으로 된 ‘우진각 지붕’(네 면에 모두 지붕면이 있고 용마루와 추녀마루로 구성된 지붕. 전후 지붕면은 사다리꼴이고 양측 지붕면은 삼각형이다)의 아담한 서실이 있다. 요즈음 말로 바꾸면 ‘공부방’과 비슷하다.

이 서실 건물에 ‘한묵청연(翰墨淸緣)’이라고 쓰여 있는 현판(懸板, 글자나 그림을 새겨 문 위나 벽에 다는 널조각)이 있다. ‘종이나 책은 먹과 깨끗한 연분이 있다’는 말로 학문에 정진하라는 의미가 담긴 이 현판은 영친왕(이 은)이 8세에 쓴 것이다.

◆사랑채 전면에 흥선대원군의 친필편액 걸려 있어

사랑마당 오른쪽에는 조선시대 사대부집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팔각지붕의 날아갈 듯 아름다운 건물 칠류헌(七柳軒)이 있다. 칠류헌은 강용이 모든 관직을 버리고 낙향해 지은 별당이다. ‘七’이란 ‘월·화·수·목·금·토·일’의 순환을 의미하는 숫자로서 천지운세가 순환하듯이 조선왕조의 국운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에서 ‘七’이란 글자를 따온 것이다.
 

정면에서 본 만산고택 정문인 솟을대문.[사진=경상북도 봉화군청 제공]

가운데 버들(柳)은 도연명과 관련이 있다. 강용은 도연명을 좋아했다. 도연명은 본인 집 주위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자호하기를 ‘오류거사’라고 했다. 도연명의 ‘오류(五柳)’에서 ‘二柳’를 더해 강용은 일곱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이 집의 이름을 ‘칠류헌’으로 지었다. ‘칠류헌’ 용도는 손님이 오면 접대하는 장소다.

‘칠류헌’이란 현판 글씨는 위창 오세창의 친필 편액이다. 오세창은 조선 말의 서예가이자 언론인, 독립운동가다.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 하나다.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7칸, 전체 21칸 규모로 대부분 주택이 사랑채를 남향으로 하는 데 비해 만산고택은 사랑채가 동쪽으로 향하고 안방이 남향이다. 그 결과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북쪽으로 났는데 이로 인한 찬바람의 통행을 막기 위해 중문이 안마당과 연결될 때 한번 꺾여 들어가 시각과 찬 공기를 차단한다.

사랑채는 대청, 사랑방, 마루방, 골방 등으로 이뤄져 있다. 앞쪽에는 툇마루를 뒀다. 마루방 뒤로는 중방이 안채 부엌과 연결되고 골방은 사랑채에서 안채로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중문을 지나 꺾어 들어서면 사랑채 뒤편에 안채가 있다. 안채는 안방, 상방, 마루방, 광 등으로 이뤄져 있다. 서실은 앞면 2칸·옆면 1칸 크기로 온돌방과 마루방으로 구성돼 있다. 별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광, 2칸 온돌방, 2칸 대청으로 구성됐다. 방 뒤로는 골방을 뒀다.
 

만산고택 칠류헌 별당에 위창 오세창의 친필 편액이 걸려 있다.[사진=경상북도 봉화군청 제공]

안채는 사랑채 뒤편과 이어져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다. 안대청 왼쪽에는 안방이 세로로 길게 남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른쪽에는 윗방과 꾸밈마루방 2개가 앞뒤로 있다. 안방 앞쪽으로는 부엌과 중간방이 왼쪽 날개 모양으로 연결돼 있다. 안채의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 꾸밈마루방 앞쪽으로 3칸의 창고가 오른쪽 날개모양으로 연결돼 있다.

만산고택은 100% 금강송으로 지어졌다. 1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금강송의 역할이 컸다.

금강송은 소나무의 일종이다. 재질이 단단하고 야물다고 금강송, 목재의 심부가 사람의 장처럼 붉다고 황장목, 목재의 색깔이 붉다고 홍송, 선비처럼 자태가 고고하다고 선비목, 내륙지방에서 많이 자란다고 해서 육송, 바닷가에서 자란다고 해송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만산고택의 목재인 금강송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신라가 망하자 신라인들이 대거 일본으로 갔다. 이들에 의해서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명품인 일본 국보 1호, ‘목조 반가사유상’ 이 만들어졌다. 이때 사용된 나무가 바로 금강송이다. 금강송으로 만들어진 ‘목조 반가사유상’은 현재 일본 교토, 광륭사(廣隆寺)에 보존돼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대표적인 석학 ‘앙드레 말로’와 ‘칼 야스퍼스’는 이 ‘목조 반가사유상’에 대해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조형물”이라며 “지구가 만약 멸망할 때, 지구상에서 한 가지만 가지고 탈출할 수 있다면 기꺼이 ‘목조 반가사유상’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만산고택에는 망국(亡國)의 한도 스며 있다. 강용은 아버지 강하규, 어머니 안동 권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1846년) 을사늑약(1905년) 이후 벼슬을 버리고 춘양에서 망국고신의 ‘한(恨)’을 달래며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국운회복을 기원하면서 칠류헌을 짓고 망미대(望美臺)를 쌓아 아침저녁으로 그곳에 올라 북향 사배를 하면서 ‘망미대’ 시를 읊었다.

후일 위당 정인보가 강용의 묘갈을 지을 때 “‘망미대’ 시를 읽고 차마 애통처완해서 읽어 내려 갈 수가 없다”고 말했을 만큼 이 시는 망국의 애통한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객실수 8실, 수용인원 45명, 입실시간 오후 2시, 퇴실시간 오전 11시

만산고택에는 후원에 야생화 단지가 있고 잘 다듬어진 돌담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돌담을 천천히 걸으며 보는 것도 좋은 체험이 될 것이다.

만산고택을 중심으로 10리 안에 안온히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정자가 10여 개에 이른다. 1636년 병자호란 이후 대명절의를 지키며 태백산 아래로 찾아든 태백오현(太白五賢, 정민공 강 흡, 개절공 홍우정, 각금당 심장세, 포옹 정 양, 손우당 홍 석)이 춘양면 학산리에 와선정(臥仙亭)을 짓고 교류했다.
 

만산고택 앞마당 모습.[사진=경상북도 봉화군청 제공]

태백오현의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중복(中伏)날 모여 선조들의 학문과 교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세의(世誼)를 돈독히 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와선정 이외에도 진주 강씨들의 정자 태고정, 백산정, 송서정, 안동 권씨 정자 한수정, 초연대, 산천재, 진성 이씨 정자 창애정, 두릉정, 창랑정 등이 있다.

만산고택이 있는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지역은 ‘정감록’에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로 기록돼 있을 뿐 아니라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가거지(可居地)로 기록돼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

백두산에서 발원한 백두대간(白頭大幹)이 한반도를 줄기차게 휘몰아 돌다가 바로 이곳 십승지의 한 곳인 춘양지역에 와서 지리산 천왕봉 쪽으로 우회전한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갈라지는 태백과 소백의 양백지간(兩白之間)이 되는 곳이 바로 봉화 춘양 지역이다.

1000m 이상의 백두대간 고봉만 10개가 넘는 봉화 춘양 지역은 밤과 낮의 기온 차가 많이 나는 산간 지역이다. 그래서 이곳의 과일들은 당도가 높다. 이곳의 산들은 대부분 흙으로 된 산들이다. 이러한 자연조건 때문에 이곳 춘양 지역의 소나무는 자람이 더디고 목질이 단단하며, 나이테가 무척 조밀하다. 목재로서는 최고의 재질을 갖추게 되는 것.

이러한 조건 때문에 이 지역에선 최고 품질의 자연산 송이가 생산된다. 큰 일교차, 좋은 소나무 등 송이가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덕에 맛과 성분에 있어 세계 어느 곳의 송이도 따라올 수 없는 봉화 송이가 만들어진다.

태백과 소백 양백지간의 금강송 밑에서 자라는 곰취, 나물취, 곤들레, 참취, 개미취, 더덕, 잔데 등의 산나물은 사시사철 산골밥상이 풍성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만산고택에선 칠유헌에서만 객실에서 취사할 수 있다. 취사도 솥에서 밥을 짓는 것은 불가능하고 전기밥솥으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다. 난방도 온돌 난방이 아닌 보일러 난방이다. 공용 샤워실도 있다. 화재 예방 등을 위해 만산고택에서도 완전한 고택 체험을 제공하기 어려운 것이다.

만선고택에서는 주변 음식점들을 배려해 손님들에게 음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만산고택 측에선 주변 맛집을 안내하고 있다. 객실수는 8실이고 수용인원은 45명이다. 입실시간은 오후 2시이고 퇴실시간은 오전 11시다.

만산고택에는 강용의 5대손인 강백기(73) 씨와 부인 류옥영(66) 씨가 40여 년째 거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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