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쟁 하면서 읊은 시 177편, 대한민국의 코끝 시린 향기가 흐르다

2018-11-2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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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기념사업회 '피로 묵삼아 기록한 꽃송이' 오는 30일 오후5시 서울 정동서 북콘서트

반만년 길게 오는 우리 역사가
국수(國粹)를 보전코져 목숨 바리신
지사와 인인(仁人)들의 피로 묵(墨) 삼아
기록한 페지페지 꽃송이로다

                      '순국제현(殉國諸賢) 추도가' 중에서

이 시는 '독립신문'에 실렸던 추도가(추모의 노래)이다. 나라를 잃어버린 뒤로, 역사는 더욱 소중해졌다. 우리가 5천년 이상 이 나라를 보전해왔는데, 지금에 이르러 이렇게 탈이 났구나. 하지만, 뜻있는 이(知士)와 어진 사람(仁人)들이 이 나라의 순수함을 온전히 지키려고 목숨을 버렸다. 그들의 피를 먹처럼 찍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기록하였으니, 그 피를 먹고 피어난 꽃송이와 같은 시가 아니겠는가. 

독립을 위한 험한 길에 가슴에 칼을 품을수록, 심장에선 시(詩)가 피어나는 역설. 혹독한 시련과 가차없는 긴박 속에서도 슬픔은 피어나고 언어는 생기를 얻었던가. 나라를 위해 돌아간 많은 이들을 슬퍼하는 노래인 순국제현 추도가는 3-4-5조(調) 평이한 가락 속에 담겼지만, '피를 먹으로 삼아 기록한 꽃송이었다'는 바로 그 대목에서 시의 격(格)을 얻었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눈앞에 둔 2019년 11월 끝자락에, '피로 묵삼아 기록한 꽃송이'(출판사 한울)라는 제목을 지닌 시집 한 권이 탄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회장 김자동)가 제198호까지를 낸 독립신문(1919~1926)을 샅샅이 뒤져, 그곳에 실린 시들을 찾아냈다. 국한문판과 중문판은 물론이고 충칭에서 발행한 중문판 독립신문의 시들까지 '발굴'해, 시집에 담았다. 이 노래들이 흘러간 길은, 통째로 독립운동의 역사가 걸어간 길이며, 자유와 구국을 외친 뜨거운 몸짓들의 비장한 향연(饗宴)이었으니, 그 생생한 목소리를 접하는 감동이 사뭇 깊을 수 밖에 없다.

落木蕭蕭北塞寒(낙목소소북새한) 앙상한 나무 쓸쓸하고 북녘 변방은 찬데
三千怨血滿空山(삼천원혈만공산) 삼천의 원통한 피는 빈 산에 가득하다
十年有恨磨霜劍(십년유한마상검) 한 서린 십년동안 서릿발 칼을 갈았으니
仇敵未平死不還(구적미평사불환) 원수놈들을 평정 못하면 죽어도 안 돌아가리


                       「感墾北悲報(감간북비보, 간북의 슬픈 소식을 듣고 느낀 바 있어)」 중에서

식민지 압제의 참담한 전황(戰況)을 떠올리며 추운 날을 견디는 투사(鬪士)의 마음은 서릿발 칼을 갈면서도 시를 읊었다. 그 시는 스스로 결의를 돋우며 목표를 새기는 하나의 주문같은 것이었으리라. 

 

[서울역에 있는 강우규의사 동상.]



爲國捐軀(위국연구)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다
成仁取義(성인취의) 인간의 어진 도리를 이루고 옳음을 얻었나니 
猶與安公傳靑史(유여안공전청사) 안중근 의사와 함께 역사에 전해지리라
副車誤中(부거오중) 수레를 맞히는 바람에 적중은 하지 못하였지만
除暴救亡(제폭구망) 폭도를 없애고 망국을 구하려 했도다
還期博浪留令名(환기박랑유영명) 오히려 (진시황을 죽이려했던) 박랑사(博浪沙)의
장량(張良)을 보는 것 같구나 


                       「輓詞: 姜義士에게(만사:강우규 의사에게)」 중에서

한의사이자 성리학자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강우규선생은 1905년 만주 북간도와 요동 랴오허현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이후 국내로 잠입한 60세의 그는 1919년 서울역(당시 남대문역)에서 신임 조선총독인 사이토 마코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부거오중'(사람 대신 수레를 빗맞혔다)의 애석함이야 있지만 그 뜻만은 10년전 안중근의사와 다르지 않으며, 진시황을 죽이려한 장량과도 닮았다고 예찬하고 있다. 이듬해 서대문 감옥에서 교수형을 받을 때까지 그토록 당당했던 강의사는, 이 시 한 편 속에 쩌렁쩌렁한 기개로 남아있지 않은가.

今日腐心潛水客(금일부심잠수객) 오늘은 절치부심하며 숨어다니는 사람이지만
昔年臥薪嘗膽人(석년와신상담인) 지난날엔 와신상담 눈물로 벼르는 사람이었지
此行已決平生志(차행이결평생지) 이번에 가는 길은 내 평생의 뜻으로 이미 결심한 것이니
不向關門更問津(불향관문갱문진) 관문으로 가지 않으면 다시 뜻 이룰 방도를 묻겠네


                    「舟中(주중, 배를 타고가며)」 중에서

이 시는 의열단 일원인 김지섭이 일본 궁성의 입구인 니주바시(二重橋)에 폭탄을 던지기 전에 신문사로 보낸 것이다.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쓴 글이다. 관문은 일본 천황이 있는 궁성의 문이며 문진(問津)은 공자가 깨달음을 구하는 것처럼 방도를 찾겠다는 것이다. 죽음을 각오한 거사의 비장함이 언어에서 뚝뚝 묻어난다.

지금껏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시집, '피로 묵 삼아 기록한 꽃송이'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기관지 '독립신문'에 실렸던 시 177수가 실렸다.동오 안태국 선생의 추모시에 참여한 김구, 이동녕, 이시영, 신규식, 조완규 선생 등 16인이 등장하기도 한다. 순국한 의사에 대한 애도와 경신참변을 당한 간도 동포들에 대한 실상고발과 비분강개 또한 시가 되어 혈루를 뚝뚝 흘린다. 


# 임시정부기념사업회는 오는 11월30일(금) 오후5시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1층에서 '피로 묵 삼아 기록한 꽃송이' 출간 기념 북 콘서트를 가질 계획이다. '독립신문' 게재 시들의 시대 배경과 문학적 의미 해설을 곁들여 음악회 형식으로 열린다. 배우 이대연이 시 낭송을, 바리톤 김지욱, 아코디언 김경호, CTS 강북소년소녀합창단 등이 노래와 연주를 한다.
 

[임시정부기념사업회에서 펴낸 '독립신문'게재 시 모음 '피로 묵삼아 기록한 꽃송이'시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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