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의 독서(1)]전직 정보기관 간부가 '소설'로 경고한, 김정은 답방과 그 적들

2018-11-2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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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과 이웃국가의 '분단체제 기득권자'들이 한반도 평화의 길에 겨눈 총구...섬뜩한 묵시록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그러나 소설은 현실의 거울이며 상상의 변주이다. 개연성을 지닌 리얼리티이기도 하고 진실이기도 하며, 경험과 꿈과 예측이기도 하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간부가, 정색하고 말하기 어려운 '향후 한반도 정국의 불편한 시나리오'를 소설로 써서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했다면, 그것은 소설 이상의 묵직한 발언일지 모른다. 기자는 여기에 주목했다. 
 

[연합뉴스]



# 김정은 연내답방과 남북의 속내
26일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는 블로그에 이런 글을 썼다.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을 방문하는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처럼 환영 인파가 모여 김정은을 환영하는 장면을 만들어 균형을 보장해야 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북한 지도부 내에서도 고민이 깊을 것이다. 리설주(김정은 부인)도 한번 가보자고 조를 것이고 김여정도 한번 가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위 간부들은 '원수님, 내려가시면 안 됩니다. 남조선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라며 충성 경쟁을 벌일 것이다."

27일 탈북민 1호박사로 불리는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소장은 한 언론(뉴스핌)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 가능성은 50% 이상이다.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일종의 투트랙이나 쌍끌이 작전으로 끌고가기를 원한다. 북미관계가 진전이 잘 안될 경우, 남북관계라도 진전시켜야 미국에 자극이 된다. 연내 답방이 이뤄지면 미국도 내년 1월에 다시 2차 북미정상회담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김 위원장은 가시적 답방성과를 고민하고 있겠지만 일부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북정서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최근 김 위원장의 답방과 관련해 백두칭송위원회 같은 단체도 등장했는데, 이것이 우리 국민정서와 맞느냐는 부정적 여론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지금껏 상당한 의외성을 보여왔으며 김 위원장의 답방도 가능성이 크다. 결국 김 위원장의 용기에 달려있다."

이런 진단과 예측이 최근 쏟아지는 까닭은, 김정은 연내 답방이 상당히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이 길어지고 남북간 대화에도 이상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돌파구가 마련된 남북철도 연결 공동조사나, 평양예술단 서울공연,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등 주요 안건에 대해 북측이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연내 서울답방의 실현을 위해 공을 들여왔으나 26일 청와대가 직접 답방이 올해를 넘길 수도 있다는 언급을 했다. 북한은 이날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 채택에 참여한 한국과 미국에 대해 "함부로 경거망동하다가는 모든 것이 수포가 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분별있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았다. 
 

[연합뉴스]



# 답방, 그 모험을 위한 세 개의 안전핀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답방을 다룬 송승엽 소설 '답방'(2018년 10월 20일 출간)은 생생한 현실을 기반으로 한 '가상현실'로 읽힌다. 작가 송승엽은 누구인가. 한·중이 미수교상태였던 1991년, 한국대사관의 전신인 코트라(KOTRA) 주 베이징 대표부에서 근무를 시작했고 이후 10년간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일하며 정무공사를 역임했다. 이후 20년은 국가정보원 등 주요 공직에서 중국 및 북한 분야 업무를 맡았다. 이런 경력의 소유자가, 자신의 전문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 관련 이야기를 해박한 식견과 생생한 경험을 함께 녹여 스토리로 써나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진다면, 그것은 분단 이후 한국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는 대사건이다. 그가 남한을 방문하는 일은, 세 가지의 강력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첫째는 방문지에서의 ‘절대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고, 둘째는 그가 부재한 상태의 북한 내부가 ‘절대 안정’을 유지해주는 일이며, 셋째 이와 관련해 주변4강을 비롯한 이웃국가가 답방 기간을 악용하지 않는다는 보증 또한 필요하다. 세계에 남은 희소한 ‘은둔의 독재권력’이 분단 상황의 적지(敵地)인 남쪽으로 발을 내딛는 일은, 어쨌든 피마르는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김 위원장의 신변안전 보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답방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과나 효과일 것이다. 비핵화와 대북제재의 딜레마를 양손에 쥐고 있는 그는, 답방이란 이슈를 북미 협상의 윤활유로 활용하고 싶을 것이다. 이 정치적 저울질에 따라, 그가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 김정은이 2박3일 일정으로 서울을 방문하다

소설 ‘답방’은, 놀랍게도 이 예민한 상황을 창작이라는 가상공간 속에서 플레이버튼을 눌러 보여준다. 물론 그 장면은 소설의 극적인 일부일 뿐이며, 남북 간에 흐르는 인간애(人間愛)가 스토리의 주류다. 영토 분단과 이념적 분단은 인간 신뢰와 민족 동질성을 영원히 갈라놓을 수 없다고 소설은 말없이 웅변한다.

주중 한국대사관 정무공사, 그리고 정보기관 고위직을 지낸 필자는 그를 빼닮아 있는 주인공 송지윤(소설 속에서 베이징대 초빙교수, 북한담당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맡는다. 그리고 국정원장과 친구 관계로 나온다.)이란 '아바타'를 움직여 상황들을 이끌기도 하고 묘사하기도 한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 있는 사건들이 꼬리를 물면서 소설과 현실이 넘나드는 긴장감을 높여놓고 있다. 이제 답방 장면을 묘사한 대목으로 가보자.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이 사상 최초로 2박3일 일정으로 서울을 방문하였다. 일행으로는 부인 이설주, 비서실장 김여정, 국장으로 갓 승진한 김희망(김정은의 딸로 나오는 극중 인물), 호위총국장, 인민무력상, 기타 경제부문 수장 등 수십 명이었다···. 성남 서울공항이었다. 문이 열리는 전용기에서 김 위원장 부부가 천천히 트랩을 내려오자 아래서 기다리던 대통령 부부가 반갑게 맞이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손수 나오셔서 환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위원장님의 방문을 환영하는 듯 오늘 날씨도 화창합니다.”
“남쪽의 날씨가 정말 좋습니다.”

마치 실제 기사 같은 느낌을 주는 생생한 장면이다.
 

[연합뉴스]



# 남북 정상을 향한 5발의 총성과 미사일 공격

두 정상은 회담을 가진 뒤 3개항의 합의를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마지막 날 일정은 아침 10시경 김정은 위원장 일행이 대통령과 함께 삼성동 코엑스를 참관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총격사건이 일어난다. 총알 5발이 날아왔는데, 양 정상은 무사했고 우리측 대통령 송 특보만 사망했다. 이분은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곤욕을 치른 뒤 김정은 위원장 일행은 성남 서울공항으로 달려간다. 김 위원장 전용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3시간 늦게 이륙해 북쪽을 향해 날아갔다. 전용기가 막 휴전선을 넘어 황해남도 해주 4군단 지역 영공으로 진입했을 때, 미사일 한 방이 날아와 기체(機體)를 명중시킨다. 전용기가 공중에서 산산조각 나는 모습이 전세계에 방영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러나 무사했다. 이날 한국 측이 별도로 제공한 방탄 차량으로 비밀리에 육로를 통해 평양으로 들어간 것이다.

# 남북한 평화통일과 그 적들

소설이지만 충격적인 ‘답방 피격’은 누구의 소행이었을까. 이 사건 일주일 뒤 국정원이 발표한 긴급 대국민 담화문을 직접 들어보자.

“지난 5월 3일 남북한 정상을 저격하려 한 범인은 북한 국가 대표 사격선수 출신 김백강으로서, 3년 전 북한에서 공금횡령 혐의로 수배를 받던 중 중국으로 도망쳤다가 한국으로 잠입한 자였습니다. 한국의 이대로당 대표 김우극에게 포섭된 그는, 2천만원의 착수금을 받고 이번 암살 음모에 가담한 것입니다. 김우극은 북한 10군단장 최종만과 모의한 쿠데타가 좌절되자 최종만을 배후에서 조종하였던 김철 보위상을 직접 접촉, 이번 정상회담을 기회로 저격수를 고용하여 남북 두 정상을 함께 암살키로 하였습니다······한편 김철은 자신에게 충성하는 인민무력상이 수행요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을 이용해 김백강이 김 위원장을 조준사격할 때 옆에서 권총으로 김 위원장을 재차 확인사살토록 함과 동시에···”

# 고위급 안보전문가가 경고를 숨겨놓은 ‘소설 속의 묵시록’

이 소설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적들이 누구인지를 섬뜩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남북한에 각각 존재하는 이들의 정체는, ‘분단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이며 그 막대한 이익을 갑작스런 상황 변화로 상실하고 싶지 않은 세력이다.

북한의 군부는 통일 이후 자신들의 입지가 사라질 것을 불안해 하고 있고, 남한 내 기득권 또한 비슷한 걱정을 가지고 있었다. 분단 이익을 챙기려는 세력은 한반도를 둘러싼 이웃국가들 속에도 없지 않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한반도 기류의 흐름과 남북 정세를 보아온 작가가 시나리오 속에 버무려놓은 통찰과 경고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답방’ 현실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포인트일지 모른다. 안보전문가가 정색하고 ‘기사’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의외로 이런 창작 공간 속에 생생하게 꿈틀거리는 것은 아닌가.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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