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잘 안쓰는 말 중에 홍진(紅塵)이란 말이 있다. 시끄럽고 속된 세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홍진은 원래 마차가 지나가면서 일으키는 붉은 먼지를 말한다. 대로의 번잡함과 그것에 맞춰사는 삶의 괴로움을 얘기한 것이다. 사실 홍진이란 말을 뜯어보면 요즘의 황사나 미세먼지와 진배없다. 마차 대신 자동차나 공장, 혹은 인간이 지은 시설들의 열기와 매연이 만들어낸 것이니 말이다. 다른 점도 있다. 홍진은 관복을 벗고 훌쩍 떠나 시골로 들어가 은세(隱世)하면 해결되는 문제였지만, 황사나 미세먼지는 촌구석으로 도망쳐도 고스란히 따라온다. 더 지독한 홍진인 셈이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광범위한 감염이다.
동진(同塵)이란 말도 있다. 먼지와 함께 한다는 말로, 그냥 속세에 눌러산다는 얘기다. 노자가 말한 화광동진(和光同塵)은 권력자에 아부하고 민중에게도 같은 편인 것처럼 시늉하는, 요즘의 정치가들 같은 처세가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 빛을 달갑게 받지만, 그래도 먼지와 함께 살갑게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인생을 함께 긍정하는 담담한 말에 더 가깝다. 지금은 굳이 동진하려 애쓰지 않아도, 나날의 출퇴근이 그것이다. 굳이 수양하려는 마음이 아니어도, 마스크를 끼고 세상이 먼지임을 실감하며 삶이 먼지임을 실감하며 우리가 먼지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예감하며 먼지묻은 세상을 걸어간다. 흩어진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먼 어머니들의 먼지를 마시고 밟으며... [빈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