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시정부를 새기는 이는 독립유공자들 후손?
국가는 마치 판관(判官)인양 앉아, 이것저것 따져가며 힘있는 쪽의 티를 낸다. 지금 명찰이라도 차고 있는 이 나라가, 어디서 생겨났는지, 이 나라의 권세 위에 스스로가 왜 앉아있을 수 있게 됐는지 따위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는 것 같다. 관청은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거의 '탁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임시정부 100년을 새긴다는 내년, 이 나라가 스스로 얼마나 1919년의 기적에 대해 진심으로 고개 숙이며 기려왔는지를 가슴에 손 얹고 되돌아보라.
# 자력으로 해방한 게 아니기에, 임시정부는 가치 없다?
죽음을 불사하는 국민의 의기(義氣)로 3.1운동이 일어났고, 빼앗긴 나라를 찾아야겠다는 공감대가 임시정부를 밀어올렸다. 그 임시정부는 26년간 일제라는 절대강자와 목숨을 건 무모한 싸움으로 '존엄국가의 존재증명'을 해오다가, 미국의 원자폭탄에 항복한 일제의 퇴각이라는 뜻밖의 상황을 맞아 해방 국가로 돌아왔다. 임시정부 측에서는 우리의 투쟁으로 그들을 물리쳤어야 했는데...라며 분노를 터뜨렸지만, 사실 그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자력으로 광복했다면 역사인식의 왜곡이 지금보다는 덜 했을 것이라는 개탄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하이 임시정부에 대한 정당한 응분의 평가가 내려지지 못했던 것은, 이 국가가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해방공간에서 사실상 일제의 굴레를 벗겨준 전승국 미국이, 국내에서 정치적 실력행사를 하기 위해 이승만 세력을 앞세워 '미국 주도의 안정화'를 꾀하려 했던 상황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그들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역사를 70년이 넘도록 새롭게 재해석하지 않은 것은, 이 국가의 책임 방기에 가깝다.
백번 물러서서, 그간 전쟁과 쿠데타를 비롯한 숨가쁜 역사적 곡절이 있었고, 세계에서 보기 드문 국가경제의 약진에 매진하다 보니, 해방 초기에 끼운 단추에 대해 굳이 왈가왈부할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고 하자. 그러나, 이제 임시정부 증언자가 2세를 넘어 3세로까지 내려와 있고, 기억의 멸실이 심각해가는 지금, 국가가 임시정부 100년을 그저 '자존심' 한번 외치는 이벤트로만 여긴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할 이 나라의 가치는 대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 것인가.
# 대한민국 국부는 누구인지 대답해보라
국가를 이룬 '가치있는 행위'에 대한 의미 부여는, 국가 정체성을 위해 더없이 중요한 기틀이다. 독립운동 유가족들이 먹고 살 것이 궁해서, 조상들의 업적을 팔아먹으려고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 명망에 기대어 스스로의 생을 돋우려고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건 모두 국가가 해야할 일을 기본부터 하고있지 않기에, 민간이 나서서 이 나라의 뿌리를 새기고 피로 이뤄낸 '가치'들을 기록으로 남겨, 이 나라를 후세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임시정부 100년의 해엔, 국가가 진짜 무엇을 해야할지 자기혁신을 해야하는 기회이다. 정권 때마다 역사교과서를 뒤집어, 정치적 기반이나 책략에 유리한 '가치 폭력'을 행사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선 다양한 역사적 견해들을 기탄없이 공론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고 상식적인 의문. 그토록 험난한 길을 걸으며 우리의 자존을 지켰던 임시정부 김구주석이 개별 입국으로 공항에 내렸을 때 미군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귀국의 의미가 무엇인지, 국가는 고민해야 한다. 김구선생이 우리 국가에 해준 것에 비하여 국가가 김구선생에게 해준 것이 무엇인가. 그가 그토록 원하던 나라의 '독립'을 우린 제대로 이뤘는가.
하나만 더 묻자. 절망의 날들 속에서 한 나라가 살아났다. 그 씨앗을 일군 대한민국의 국부(國父)는 대체 누구인가.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