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 부양을 위해 미국을 향하는 원유 수송량을 줄이는 한편 감산을 고려하고 있다. 고유가에 반대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CNBC는 원유시장 분석업체인 클리퍼데이터의 분석을 인용, 사우디가 대미 원유 수출 물량을 줄이고 있다고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대로라면 사우디의 대미 원유 수출량이 조만간 사상 최저치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사우디는 최근 감산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12일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과 회의를 갖고 감산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즉각 트럼프 대통령은 유가가 여전히 너무 높다면서 발끈했지만 사우디는 OPEC 차원에서 감산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외신들은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 원유 관계자를 인용, 사우디가 내달 6일로 예정된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례회의에서 산유량을 일일 약 140만 배럴 줄이는 안을 지지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유가를 둘러싸고 사우디와 미국의 갈등을 신호하는 대목이다.
애널리스트들은 올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원유 수출을 차단하는 대이란 제재를 예고하면서 산유국들로 하여금 생산량을 늘리도록 부추겼다고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에 대이란 제재에 면제는 없을 것이라면서, 만약 이란산 원유 감축분만큼 공급을 늘리지 않을 경우 OPEC에 반독점 조치를 가하는 외희 법안을 지지할 것이라고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은 11월 5일 이란의 원유 제재에서 한국을 포함, 8개국에 일시 면제를 결정했다. 미국 정부는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로(0)로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하지만, 면제 효력이 유지되는 내년 4월까지는 이란산 원유가 일일 90만 배럴 규모로 계속 공급될 전망이다. 제재 전에 비해서는 40% 가량 줄어든 것이다.
WSJ는 사우디 관리들이 트럼프 행정부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으며 독립적으로 원유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글로벌 경제 둔화 우려와 함께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예상만큼 날카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제 원유 시장은 과잉공급을 우려하는 상황에 처했다. 16일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10월 고점 대비 약 20% 떨어진 배럴당 67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사우디가 재정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요한 유가인 배럴당 80달러를 대폭 하회하는 수준이다.
예맨과 전쟁을 치르고 중동 패권을 두고 이란과 경쟁하는 사우디에게 강한 경제력은 필수다. 게다가 최근에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배후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지목되면서 사우디 정권이 전례없는 위기에 처한 만큼 경기 부양은 더 중요해졌다고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아딜 하마이지아 연구원은 WSJ를 통해 지적했다.
하마이지아 연구원은 “카슈끄지를 둘러싼 최근의 상황은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사우디의 경제 개혁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 “사우디는 개혁을 당분간 미루고 경제 살리기에 치중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