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개봉한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감독 데이빗 예이츠, 이하 ‘신비한 동물사전2’)는 그의 똑부러지는 성격은 물론 작품에 대한 이해와 소화 능력까지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이어 또 한 번 미국 프랜차이즈 영화에 출연하게 된 그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스핀오프작으로 전 세계적 관심을 얻고 있는 ‘신비한 동물사전2’로 영화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얻고 있다.
영화는 파리를 배경으로 전 세계의 미래가 걸린 마법 대결을 그린 작품. 전작에 이어 데이비드 예이츠가 연출을 맡고 해리포터 시리즈의 J.K롤링이 각본을 썼다. 극 중 수현은 ‘해리포터’의 절대 악 볼드모트의 호크룩스 내기니 역을 맡았다. 피의 저주를 받아 뱀으로 변하는 여성 서커스 단원이다.
“내기니의 첫인상이요? 캐릭터를 처음 봤을 때 할 말을 잃었죠. ‘내가 내기니라고?’ 제 기억 속 ‘해리포터’ 안에서 내기니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뱀에 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으나 내기니는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신기하고 또 기분 좋았어요. 거기에 내기니는 ‘반전’을 가진 캐릭터라서 더 욕심이 났죠. 그가 악한 캐릭터라 볼 수도 있겠지만 조앤 K. 롤링이 그에게 사연을 부여해주었으니까요.”
“때마다 감독님께서 제가 오디션에서 보여드린 뱀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좋았다며 직감적으로 연기한 것에 대해 많은 칭찬을 해주셨어요. 그 덕에 더욱 즐겁게 자신감을 가지고 연기할 수 있었죠. 데이빗 예이츠 감독님께서도 갑자기 이 작품을 연출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해리포터’ 시리즈를 꿰고 계신 분이라서 (감독의) 디렉션을 믿고 가려고 했어요.”
그는 감독뿐 아니라 ‘해리포터’ 시리즈의 원작자이자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의 각본을 맡은 조앤 K. 롤링에게도 내기니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 말했다.
“작가님을 처음 뵙고 너무 깜짝 놀랐어요. ‘해리포터 시리즈를 창조한 조앤 K. 롤링 작가가 맞나요?’ 되물어볼 정도였죠. 먼저 다가가서 말도 못 걸고 있었는데 우연히 화장실에서 만나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었어요. 정말 겸손하고 노멀한 분이셨죠. 사회적 이슈, 인종 차별, 여성 이슈 등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고 그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기도 하셨고요. 작가님께서 제게 내기니에 대해 말씀 주신 건 그는 여리고 상처받은 영혼이지만 약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파워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셨죠. 가끔 파티가 있거나 할 때면 작가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조앤 K. 롤링이) ‘아, 여기까지 말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힌트를 흘려주시고 저는 귀 기울여 듣곤 했어요.”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왔던 수현이었지만 그에게도 ‘뱀’인 내기니 역은 쉽지 않았다. 감독은 수현에게 “지금 모습에 뱀 2%를 가미해!”, “5% 정도 더 뱀을 보여줘!” 식의 디렉션을 주었다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어요. 퍼포먼스 안에 뱀의 모습을 넣는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디렉션도 낯설었어요. 아주 기본적인 걷는 것부터 물건을 만질 때의 모습 등등에 의식적으로 뱀의 느낌을 살리려고 했죠. 상대 배우였던 에즈라 밀러 덕에 잘 이겨낼 수 있었어요. 감독님의 디렉션이나 요구에 관해 자기도 ‘뭐야?’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고. ‘너는 감독님이 말한 대로 하고 있더라’고 격려도 해주더라고요. 상대 배우와 친해지려고 많이 노력해주었고 ‘해리포터’ 시리즈에 관해서는 엄청난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거의 백과사전 같았어요.”
에즈라 밀러와의 차진 호흡은 케미스트리로 이어졌다. 데이빗 예이츠 감독은 “알아서 마무리해 보라”며 두 사람의 호흡을 믿고 여지를 주었고 자연스럽게 신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저는 애드리브가 무섭거든요. 김수현 선생님 작품할 때도 그랬지만 유명한 작가님들의 글은 감히 애드리브를 해도 되는 걸까? 걱정돼요. 조앤 K. 롤링 작가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신경을 많이 쓰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감독님도 작가님도 배우들과 상의를 많이 하고 과감하게 신을 바꾸기도 해요. 감독님께서도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셔서요. 자기 캐릭터에 대한 책임감도 있고 완성도도 있으니까요.”
작품의 중요한 상징이었지만 처음 내기니 역에 동양인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에 일각에서는 “인종차별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었다. 내기니가 저주를 받아 뱀이 되는 크레덴스 베어본(에즈라 밀러)의 친구인데다가 강력한 어둠의 마법사 볼트모트의 애완 뱀이자 그를 죽이기 위해 파괴해야 하는 호크룩스로, 볼드모트에게 순종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인종차별 논란에 관해서는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어요. 내기니 캐릭터의 비중을 생각했을 때 이 캐릭터를 제가 맡은 건 행운이고 뿌듯하다고만 생각했었거든요. 백인 배우가 많은 해외 프랜차이즈 영화에서 어쨌든 아시아인으로 함께한다는 것에 의미가 깊다고 생각해 이렇게까지 반응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인지하고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건 긍정적인 움직임이라고 봐요.”
수현은 이 외에도 젠더 문제·인종차별 등 영화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 관해 관심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할리우드에서도 ‘서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흥행을 거두면서 아시아인 인권에 관해 관심을 가지려고 해요. 이러한 움직임들이 피부로 와닿고요. 다만 아시아인들은 나라 별로 관심도가 나뉘는 것 같아요. 예컨대 ‘블랙팬서’가 개봉했을 때에는 나라와 관계없이 흑인들이 단단하게 뭉쳤는데 아시아인들은 우리나라가 아니거나 친숙한 배우가 아니면 ‘왜 서포트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이에요. 물론 그럴 수 있지만 중요한 움직임이고 (동양인들이 단단하게 뭉쳐야) 역할이 백인으로 교체되거나 영화당 한 명의 아시아인이 캐스팅되는 룰이 깨지지 않을까요? 외국에서 활동하다 보면 그런 일에 관해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수현은 젠더 문제에 관해서도 말을 보탰다.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운을 뗀 그는 “결국 모든 여자는 페미니즘에 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 역시 영향력 있는 여성들을 보고 존경하며 커왔기 때문에 젠더 문제, 차별에 관해서도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영화계 젠더 문제에 관해 이야기가 많은데 한국 영화계도 외국처럼 적극적으로 변화를 가져오도록 해야 하고 남성에게 의지하지 않는 영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수현은 글로벌한 활동도 좋지만 한국 활동에 대한 열의도 가지고 있다며 “오해해 대한 답답함이 있다”고 거들기도 했다.
“많은 분이 제가 한국에 살지 않는다고 오해하세요. 여러분 저는 한국에 살고 있답니다. 하하하. 미국드라마 ‘마르코폴로’도 두 시즌이나 하게 됐고 ‘신비한 동물사전’도 영국에서 촬영하면서 스케줄이 안 맞아 한국 작품을 하지 못했던 거예요. ‘다크 타워’를 찍을 때 한국 드라마 ‘몬스터’를 찍은 건 순전히 제 욕심이었죠. 한 달에 남아공을 4번씩 가면서요. 그만큼 한국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커요. 외국에서도 한국영화 칭찬이 자자하거든요. 영화 드라마 모두 가리지 않고 매력적 역할이나 색다른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면 얼마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신비한 동물사전’에 관한 ‘팁’은 무엇일까? 수현에게 “힌트를 줄 수 있는 선에서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와 내기니에 대해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팁이요? 정말 저도 아무것도 몰라요. 하하하! 제가 몇 편까지 나올지도 모르는걸요. 대신 제가 궁금하고 기대가 되는 부분들을 말하자면 5편의 시리즈로 제작된다는 것이나 내기니에 관한 여러 가지 의견 중 그의 역사가 어떻게 그려질지, 내기니가 ‘해리포터’ 세계관과 어떻게 만날지가 정말 궁금해요! 기대하는 분들에게도 염려하고 계신 분들에게도 만족할 만한 좋은 스토리가 나올 거로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