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완벽한 타인’은 우리의 삶 그리고 인간관계를 축약해놓은 작품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영화배우 겸 감독 찰리 채플린)이라 했던가. 완벽해 보이는 커플 모임에서 한정된 시간 동안 핸드폰으로 오는 전화, 문자, 카톡을 강제로 공개해야 하는 게임 때문에 벌어지는 예측불허 이야기는 때로는 우습고 때로는 오싹하게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한바탕 시원하게 웃고 보면 어딘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은 영화 ‘완벽한 타인’이 우리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014년 개봉했던 영화 ‘역린’ 이후 4년 만에 스크린 복귀한 이재규(48) 감독은 보다 더 정교하고 예리해진 작품으로 관객 앞에 섰다. 이탈리아 감독 파올로 제노베제의 ‘퍼펙트 스트레인저스’(2016)를 원작으로 한국적 정서와 공감을 담아낸 ‘완벽한 타인’은 많은 세대를 아우르며 극장가 순항 중. 개봉 9일 만에 230만 관객을 동원했고 내내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키는 등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 개봉 직전 아주경제는 4년 만에 스크린 복귀한 이재규 감독과 만났다. 영화 ‘완벽한 타인’이 완성되기 전까지의 모든 과정을 들어볼 수 있었다.
영화 ‘역린’을 마친 뒤, ‘완벽한 타인’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이탈리아 영화를 원작으로 했다. 원작의 첫인상은 어땠나?
- 재밌었다. 한국적이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더라. 그러나 ‘이 영화가 범용성이 큰 작품일까? 폭이 좁게 느껴지지 않을까?’에 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각색하면서 단점을 없애려고 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한정적 공간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야기가 탄탄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 각자 독립적인 이야기부터 큰 사건으로 얽혀야 하는데 병렬식이라면 패턴화될 수 있으니 이야기를 꽉 맞물리도록 만들려 했다. 모든 관계의 특정 부분을 생략했고 템포감과 완급조절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전체 흐름을 잘 따라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제일 중요한 건 사람들은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특히 타인이 싸우는 걸 몰래 보는 걸 재밌어하지 않나. 그런 건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장감과 사실감을 살리되 캐릭터가 돋보여 이른바 ‘난리’가 나는 과정을 잘 살려야한다고 생각했다.
연출적으로도 신경을 많이 써야했을 텐데. 동선이 적은 대신 리듬감 넘치는 게 인상 깊었다
- 인물에 집중하면 지루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작위적으로 미장센을 만들려 하면 인물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될 거 같았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대화하는 걸 자연스레 잡아내면 덜 지루할 거로 생각했고 특별한 기교는 필요치 않다고 여겼다.
음식도 영화의 한 구성이었다. 메뉴 선정부터 배치까지도 고민이 많았을 텐데
- 영화에 푸드 팀이 따로 있었다. 속초라는 배경 속 토속적인 음식을 잘 배열해서 극적 흐름에 맞도록 했다. 본래 영화 팀에 음식을 담당하는 팀은 없는데 우리는 너무 중요한 부분이라 음식 담당이 따로 있었다. 장면이나 상황 등 감정에 맞게 적당한 음식이 나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내내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와서 배우들이 쉽지 않았다고 하던데
- 처음에 뭘 집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처음부터 순대, 닭강정을 집으면 곤란해진다. 하하하. 나중에는 물려야 할 정도로 많이 먹으니까. 유심히 보시면 영화 말미에 가면 배우들이 게딱지만 훑거나 견과류만 먹는다. 견과류는 예정에도 없던 메뉴였는데.
인물 관계가 구구절절 나오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롭다. 관계를 상상하고 유추할 수 있으니까
- 우리 영화가 처음 볼 때랑 두 번째 볼 때가 다른 이유기도 하다. 관계성을 알고 보면 다른 점들이 눈에 들어오니까. 모든 관계에 따라 포인트를 심어놓았으니까.
제일 마음 쓰였던 인물은 누구인가?
- 석호(조진웅 분)다. 저와 석호는 닮은 게 많다. 그가 겪는 딜레마는 제가 가진 고민이기도 하다. 저도 우울증을 겪고 3년간 고생을 했었다. 그때 아내와 많이 다투기도 했고 그 모습이 투영되어 석호를 보면 짠하다. 제 생각도 나고 집사람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개인적으로는 태수와 수현 쪽에 마음이 쏠리더라
- 굳이 꼽자면 그 두 사람이 영화의 중심이니까. 우리 부모세대는 다소 과장되고 극단적이더라도 그렇게 살아가는 부부가 많으니까. 책임감이 있고 가정을 지키고 싶지만 무뚝뚝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권태’라고 부를 수도 없는 관계. 태수·수현은 바람이라는 생각보다는 맛이 없고 재미가 없다고 보면 된다.
결말에 관한 이야기도 많았다. 확실한 관계 개선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조짐이 보이기도 하고 어긋날 거라는 예감이 들기도 하고
- 석호가 예진에게 ‘귀걸이 새로 샀어? 예쁘네’라고 말하고 난 뒤 두 사람이 한 침대에 눕는다. 준모와 예진이 서로 등지고 하루를 복기하고 있는데 예진에게서 준모(이서진 분)와의 관계를 정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태수와 수현도 오랜만에 부부로 한 침대에서 자지만 명확한 결말은 아니었다. 다만 이 두 사람이 해소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이는 행동하기 때문이다. 다들 문제가 있지만 덮고 살아가는 게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두 커플에게서 희망을 보았다면 준모·세경은 헤어질 것 같은 느낌인데
- 영화 속에 암시되어있다. 준모의 벨소리인 두 사람이 차를 몰고 가는데 준모의 벨소리인 ‘아이 윌 서바이브(I Will Survive)’가 흘러나온다. 준모는 휴대폰을 집어던지지만 그 너머로 ‘난 깨달았어. 너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라는 가사가 들려온다. 그 가사를 두 사람의 관계에 빗댄다면 결말을 유추할 수 있을 거다. 본래 세경이 노래 가사를 읊조리는 장면이 더 있었는데 삭제했다. 너무 직접적인 묘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엔딩을 보여주는 건 태수와 수현 커플만으로도 충분했다.
실컷 웃다가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공감이 들어서 재밌기도, 찝찝하기도 한 기분
- 어처구니가 없고 심각한 상황인데 구경꾼의 입장에서는 그저 재밌지 않나. 그러다가 뒤집어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하고.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들여다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딱 그런 상황인 거다. 구경꾼이니까 심각한데도 웃음이 나고 실컷 웃다 보면 서늘해지는 것이다. 극 중 인물이나 관객들 모두 비슷한데 신영철 문학평론가가 말하기를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딱 우리 이야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