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4 지방선거를 열흘 앞둔 대만에서 ‘한류(韓流) 열풍'이 불고 있다. 우리나라 대중문화 열풍이 아니다. 대만 남부 가오슝(高雄) 시장 후보에 출마한 국민당 후보 '한궈위(韩国瑜) 열풍'이다.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이 최신호에서 “한류가 대만 지방선거 판세를 뒤집었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한 후보의 개인적 매력에 여당인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정권의 외교·경제·사회 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더해져 '한류'를 만들어 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한궈위 후보가 2020년 차기 대만 총통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까지 내놓고 있다.
넉 달 전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오슝 시장 선거에 출마한 민진당 천치마이(陳其邁) 후보에 크게 뒤져 있었던 한 후보는 지난달 지지율을 역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대만 방송 TVBS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달 들어 한 후보 지지율이 48%로, 천 후보(38%)와 격차를 10% 포인트까지 벌린 상황이다.
게다가 '한류'는 비단 가오슝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타 지역에까지 퍼지고 있다. 판스핑(范世平) 대만사범대 정치연구소 교수가 "한궈위가 '국민당 구세주'로, 활력을 잃은 국민당을 기사회생시켰다"고 표현한 이유다.
실제로 한궈위 열풍은 타오위안(桃園), 타이중(臺中), 타이난(臺南) 등 주요도시 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그동안 뒤져 있던 국민당 후보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심지어 차기 대권주자로 이름을 올리는 무소속 출신 커원저(柯文哲) 시장이 장악한 타이베이(臺北)에서도 국민당 딩서우중(丁守中) 후보가 커 시장의 지지율을 바짝 뒤쫓는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차이잉원 정권 집정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도 어느 정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대만 경제가 악화하고 있는 것은 물론, 차이 정권이 '하나의 중국'을 제창하면서 양안(兩岸·중국 대륙과 대만) 관계까지 악화돼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외교적 고립까지 초래하고 있기 때문.
여기에 '대머리 아저씨', '야채가게 아저씨'로 불리는 털털한 한 후보의 개인적인 매력도 한몫했다. 한 후보는 스스로를 '생수'에 비유한다. 투명하고 청량해 대만인들의 정치적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다는 것. 1957년생인 한 후보는 한때 대만 입법위원(국회의원) 등으로 활동하다가 2012년부터는 타이베이 농산품운수판매공사 총경리를 맡아왔다. 정치인과 기업인 경력을 모두 다 갖고 있어 유권자에게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온 데다가 직설적이고 솔직한 성격, 재치있는 입담, 서민적이고 탈권위적 모습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흑백선전이나 비방·인신공격은 하지 않고, 진영 싸움도 하지 않으며, 오로지 가오슝 지역 경제 살리기에만 집중하는 한 후보에 유권자들이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한 후보는 1인당 평균 소득 감소, 인구 유출, 신흥기업 부재, 부채 문제 등 가오슝이 직면한 경제 문제를 들춰내며 경제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가오슝 최대 운하 아이허(愛河) 대관람차 건설, 타이핑다오(太平島) 광산 개발, 카지노 합법화, 10년 내 500만 인구 증가 등 구체적인 공약도 내세웠다.
한궈위 효과로 2020년 대만 총통 선거 구도에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까지 나온다. 현재 국민당에서는 주리룬(朱立倫) 신베이(新北) 시장이 유력한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한궈위 돌풍이 이어질 경우 국민당 내 치열한 경선을 통해 한 후보가 차기 국민당 대권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