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달 4일 미국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에서 한 연설은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정책을 처음 천명한 것으로 주목받았다.
메시지는 단호했다. "중국의 침략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펜스 부통령은 전방위로 중국을 맹비난했다. 불공정무역, 지식재산권 침해, 검열, 인권탄압, 남중국해 도발,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한 채무외교, 대만 문제 등을 도마에 올렸다. 중국의 미국 중간선거(지난 6일 실시) 개입 의혹도 제기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핵전력을 현대화하고 있으며, 중국산 제품에 폭탄관세를 매기고 있고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과 강력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들도 미국과 중국이 펜스의 연설을 통해 신냉전 국면에 돌입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이번 연설로 중국을 국제사회의 책임감 있는 주주로 불러들이기 위해 손을 내밀던 시대가 끝났음을 분명히 했다는 지적이다.
주목할 것은 냉전의 속성이다. 냉전은 화력을 쓰는 열전과 대비된다. 화포를 동원하지는 않지만, 한쪽이 파국을 맞아야 끝나는 장기전이다. 2차 대전 이후 냉전은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수십년 만에야 종식됐다. 그 사이 열전 못지않게 큰 희생을 치렀다.
구냉전과 신냉전은 또 다르다. 과거 냉전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양극 이데올리기의 대립 아래 주로 정치·외교·군사 부문에서 벌어졌지만, 신냉전은 미국과 중국, 더 나아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다극체제에서 경제가 중심축이 되는 다중전선의 싸움이다. 미국과 중국이 최근 벌이고 있는 무역·기술 갈등은 신냉전의 일부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신냉전도 장기화할 것으로 본다. 케빈 워시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는 최근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와 한 회견에서 요즘 미·중 관계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40여년 전 중국과 수교를 맺기 전보다 더 나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향후 5~10년간 중국 중심의 세계와 미국 중심 세계가 양극을 이룰 것이라며, 미·중 경제 냉전이 10~2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워시 전 이사의 전망은 그나마 낙관적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중 반무역 공세가 중국엔 더 이상 경쟁의 문제가 아닌, 잠재적인 실존위협이 됐다고 지적한다. 특히 미국이 중국의 첨단기술 육성책인 '중국제조2025'를 정조준하고 있는 게 중국의 미래 위상을 위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으로서는 경제정책을 뜯어고치라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미·중 갈등이 수십년 지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을 비롯해 두 나라 사이에 낀 다른 나라들도 이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냉전이 결국 3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관계 전문가인 마이클 클레어 미국 햄프셔대 명예교수는 최근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인포커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가 갈등을 빚고 있는 현 상황이 핵전쟁, 3차 대전 위기가 절정에 달한 쿠바 미사일 위기(1962년)를 방불케 한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1987년 당시 소련과 맺은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한창인 무역전쟁, 기술전쟁, 사이버전쟁이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냉전시대를 관통한 인물이다. 그는 최근 자선적 다큐멘터리 영화 '미팅 고르바초프' 시사회가 열린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극장에서 "(신냉전을) 멈춰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대립으로 회귀하고, 새로운 군비경쟁을 시작하는 게 가장 위험하다"며 "사람들이 이미 그럴 수 있다는 듯이 핵전쟁을 이야기한다. 핵전쟁이 준비되고 있고 시나리오가 논의되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