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미국 선거와 미디어

2018-11-08 12:09
  • 글자크기 설정

[사진=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2004년 7월 미국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 당시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던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분 남짓한 연설을 통해 무명의 지방 정치인에서 일약 전국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존 케리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위한 지지 연설에서 오바마는 지금까지 회자되는 유명한 연설로 미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진보적인 미국은 없습니다. 보수적인 미국도 없습니다. 오직 미 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그는 호소했다. “흑인의 미국은 없습니다. 백인계 미국도, 라틴계 미국도, 아시아계 미국도 없습니다. 오직 미 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 그 당시 이념과 인종으로 갈라져 있던 미국 사회의 단결과 화합을 부르짖은 이 연설을 통해 오바마는 하루아침에 존 케리 후보만큼 유명한 사람이 되었고 결국 4년 후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4년이 지난 지금 미국 사회는 어떠한가? 오바마 대통령이 원했듯이 미국 사회는 이념과 인종의 갈등을 극복하고 단결된 사회가 되었는가? 이번 주 미국 중간선거 결과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갈라지고 분열된 미국의 모습을 보게 된다. 먼저 의회는 민주, 공화 양당이 나눠 갖게 되었다. 상원은 공화당의 지배가 계속되고, 하원은 8년 만에 민주당이 다수당 지위를 되찾게 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향후 2년간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정책에 있어 양당은 사사건건 대립할 것이고 어느 사안에 대해서도 쉽게 합의를 이루기는 어렵게 될 것이다. 국내나 외교 문제에 있어서 대립과 갈등은 증폭되어 일종의 교착 상태에 빠질 경우가 많을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미국민들의 대립 양상이다. 민주당은 예상대로 대도시의 젊은 유권자, 특히 유색인종이나 여성의 표를 쓸어담았다. 반면 공화당은 시골이나 농촌 지역의 중년층 백인 남성의 표를 대거 얻었다. 양측 모두 이번 선거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엄청나게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그 주된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 때문에 주로 결집했고, 공화당 지지자들은 그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으로 투표장에 몰려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이들의 상반된 의견을 텔레비전 뉴스 인터뷰를 통해 들어보면, 이들은 마치 전혀 다른 두 개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미국이라는 같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미국 사회가 갈라지고 분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보화와 세계화가 아마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정보화와 세계화 속에서 세상은 급변하는데, 여기에는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갈라진다. 예를 들어 정보통신과 서비스 산업의 발달로 실리콘밸리와 기술산업 의존 벨트는 크나큰 혜택을 누리는 반면, 자동차·철강 등 전통산업에 의존하던 러스트 벨트는 급격히 피폐해졌다. 국제 무역 및 금융 등 세계화를 통해 엄청난 이익을 누리는 분야가 있는가 하면, 국내 시장에만 의존하다 쇠락하는 분야도 있다. 일자리에 있어서도 증가하는 이민자들을 통해 혜택을 누리는 기업들이 있고 그 때문에 손해를 보는 기업들도 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미국 사회가 분열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고, 이런 현상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 등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과 대립을 더욱 부채질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미디어의 분열과 분화이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현대 미디어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분화되고 있다. 신문·방송·인터넷 등 매체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이들 매체는 더 이상 폭넓은 시청자나 독자들을 겨냥해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더 이상 광범위한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을 하기가 어렵고 좁지만 충성스런 시청자나 독자를 겨냥해서 내로캐스팅(narrowcasting)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진보적인 매체라면 진보성을 더욱 강화해서 충성스런 진보적 시청자와 독자를 계속 잡고 있어야 하고, 보수적인 매체라면 그 반대를 겨냥해야 한다. 중도를 표방하고 어중간하게 가운데 있다가는 양쪽의 고객을 모두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뉴욕타임스·CNN·MSNBC와 같은 진보적인 미디어는 더욱 선명한 진보 색채를 갖게 되고, 브라이트바트(Breitbart)·폭스뉴스·월스트리트저널 같은 보수 매체는 더욱 보수적인 논조로 향하고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현상을 더욱 가속화한 면이 있다. 트럼프가 CNN 등 진보 매체를 ‘가짜 뉴스’로 규정하고 공공의 적으로 몰고 가는 상황에서 트럼프를 싫어하는 미국민들은 오히려 이들 매체의 더욱 충성스런 시청자가 되고 있다. 반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애청하고 독점 인터뷰 기회를 수시로 제공하는 폭스뉴스를 더욱 시청하게 된다. 시청률과 구독률에 목을 매는 언론사로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쉽게 자신의 정파성을 바꿀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한국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오히려 더하면 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층을 대변하는 주요 중앙 일간지와 진보층을 대변하는 공중파 방송 및 인터넷 매체의 대결은 벌써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물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중파 방송의 논조는 수시로 바뀌어 왔지만 현 진보 정권에서 공중파 방송의 진보적인 색채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미디어의 대립이 한국 사회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처럼 인종 갈등도 없지만 이념에 있어서는 미국보다 더욱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이다. 이렇게 갈가리 갈라진 한국 사회를 화합과 통합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진정한 불편부당한 언론의 출현을 기대한다는 것은 과연 지나친 욕심일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