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요동치는 '65년 체제'…韓·日관계 살얼음판

2018-10-3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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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책임 부인한 日 판결 국내효력 없다"…한·일 관계 중대 분수령

30일 오후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린 서울 서초구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


예상한 결과였다. 하지만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가 30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심 판결을 확정함에 따라, 한·일 관계는 새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핵심은 양국 과거사의 한가운데를 관통했던 '65년 체제'의 변화다. 이는 1965년 식민지 배상 문제를 정치적으로 타결한 한·일 청구권협정을 말한다. 일본 정부는 이미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등 강경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위안부에 이어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한·일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뇌관으로 부상한 셈이다.
외치만이 아니다. 한·일 청구권협정은 박정희 정권 때 체결했다. 한국사회 보·혁 갈등의 화약고인 '박정희 공과 논쟁'으로 확산할 수도 있다. 특히 이 문제는 박근혜 정부 때의 재판 거래 의혹의 정점에 서 있다. 외교부 등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개인청구권 소멸 입장을 취해온 그간의 정부 입장과 다르지 않다는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日, '先 외교협상-後 ICJ 제소' 가나

이번 대법원 판결의 쟁점은 △개인청구권 △소멸시효 △한·일 외교관계 등 세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대법원은 한·일 청구권협정에도 불구,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자에 대한 일본 회사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이들이 낸 손해배상청구 및 미지급 임금 청구권을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논리적 근거는 '국가권력이 통제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다. 식민지와 직결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또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대한민국 법원에 소를 제기하기 전까지는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신일본제철주식회사 등은 권리남용 주체로 규정했다.

이를 모두 불인정한 일본의 확정판결이 일본의 한반도 지배와 강제동원을 불법으로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 가치와 정면 배치된다고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법원이 판단한 동일한 쟁점에 대해 우리나라 헌법과 법률이 독자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사법부의 주권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관전 포인트는 일본 정부의 대응 수위다. 일본 정부는 '선 외교협상-후 ICJ 제소' 카드를 꺼낼 것으로 보인다. 일단 한·일 청구권에 정해진 분쟁절차를 따른 뒤, 협의가 불발되면 제3국위원이 포함된 중재위원회와 ICJ 제소 수순을 밟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의 일시 귀국 등 전방위적인 정치적 압박 카드를 쓸 것으로 보인다. 한·일 양국의 외교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日 ICJ 제소는 정치적 카드"··· 장기전 불가피

문제는 장기전이다. 일본 정부의 최후 수단인 ICJ 제소는 우리 측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강신업 변호사(법무법인 하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ICJ는 양국이 합의해서 제소할 때 이뤄지는 것"이라며 "일본이 원한다고 ICJ 재판권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국은 ICJ의 강제관할권 관련 선택의정서에 미가입한 상태다. 일본 정부의 ICJ 제소 운운이 '여론조성용의 정치적 카드'일 가능성이 큰 이유다.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 배상을 받을 실익이 없다는 점도 장기전으로 흐를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대법원의 법정 관할권은 국내에 한정된다. 일본 법원은 이미 정반대 판결을 내렸다. 신일본제철주식회사 역시 일본 정부와 법원 입장을 앞세워 판결 이행을 거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제적으로 배상을 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정부의 고민은 깊다. 외교부는 이날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직후 "한·일 관계의 부정적 영향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간의 정부 입장과의 불일치를 해소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앞서 정부는 '강제진용 피해자의 청구권이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외교문서를 전면 공개하는 과정에서 결론 내린 것이다.

당시 민·관합동위원회의 위원장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노무현 정부 이후에도 자국민을 위한 반박 논리, 새로운 논리 개발에 소극적이었던 셈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한·일 관계의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파장을 최소화하는 '단기적 묘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본 정부 측에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다루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선 어느 때보다도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는 점을 전달해야 한다"고 전했다. 과거사와 한반도 비핵화 등을 분리 대응하는 '투 트랙' 기조를 분명히 하라는 의미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은 "정부가 행정부와 사법부 사이의 견해차를 조절하는 '완충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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